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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인 Oct 30. 2022

춤바람 말자씨 1


나이를 고려하더라도 작은 신장, 머리는 딱 붙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아줌마 파마머리를 한 사람이 있다. 무릎과 어깨는 날마다 점점 더 쑤셔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기우뚱하게 한쪽 무릎으로만 힘을 줘 걷는 버릇이 생긴, 7남매의 둘째로 세상에 태어나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4살 때부터 동생을 돌보고 쉬지 않고 배가 불렀던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막내로 태어난 남동생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그 시대에는 어쩌면 흔한 사정을 가진 말자씨가 기억하는 좋은 기억은 결혼 전 여공으로 일할 때 들었던 분위기 좋은 팝송과 또래 여공들과 웃고 잡담하던 것뿐이었다.


20살에 아무것도 모른 채 선을 보러 온 상대 남자 집안에 산이 있고, 그 산을 물려받는다는 말 하나 믿고 결혼해 4남매를 낳고 남편의 술주정, 폭력, 바람, 사망을 견뎌내며 남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을 악착같은 생활력, 잠잘 때도 깊게 파인 미간의 주름과 심술궂게 내려간 입매였다. 말자씨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결혼 전 시절의 사진과 현재의 인상을 놓고 본다면 얼마나 많은 삶의 고통을 견뎌왔을지 감히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말자씨는 최소 20년은 된 듯 보이는 낡은 복도식 아파트의 청소 일을 하고 있는데, 워낙 성실하고 요령 피우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근로자 중 가장 오랜 시간 청소했고, 가장 깔끔한 청소를 했다. 그것이 말자씨에겐 스스로 나름의 긍지를 가지게 하는 사실이었다. 주 5일. 공무원처럼 주말과 공휴일은 다 쉰다. 이런 하루하루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지금 말자씨의 전부이다.


15층 꼭대기부터 복도를 쓸고, 닦고 계단을 청소하며 14층으로 내려간다. 고개를 잠시 들어 해를 즐기는 여유는 없다. 요령도 없는 데다가 깔끔한 성격에 바닥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지저분한 곳을 집중적으로 힘을 주어 닦는다. 그렇게 1층까지 내려와 말자씨는 허리를 잠시 구부정한 상태에서 천천히 위로 펴며 짧은 휴식을 즐긴다. 더러워진 걸레와 낡은 빗자루, 쓰레받기를 정리해 지하에 쾌쾌한 냄새가 나는 아파트 청소부의 쉼터로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말자씨 뒤에서 3살 어린 K씨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특유의 걸걸하지만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언니! 오늘 또 요령 없이 했구만? 하루는 홀수층, 하루는 짝수층 청소하면 된다니까? 아무도 모른다니까 맨날 이런다.”


“…”


특별히 대꾸하는 말도 없이 말자씨는 묵묵히 절뚝거리며 걸을 뿐이었다. K씨는 나이에 비해 무척 큰 키에 약간의 과장을 보태 나이에 비해 20살은 어려 보이는 군살 하나 없는 체형을 가지고 있었고 늘씬한 다리를 자랑하듯 짧은 치마를 입고 출퇴근하곤 했다. 늘 손톱에는 반짝이는 싸구려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는데, 말자씨는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 K씨가 가지고 다니는 화장품과 매니큐어를 힐끗거리다 퇴근길에 몰래 비슷한 색의 매니큐어와 립스틱을 사서 말자씨만 쓰는 낡은 나무 서랍 구석에 넣어 놓았다. 말자씨는 속으로 K씨 같은 사람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K씨가 지닌 쾌활하고 당당한 성격이 내심 맘에 들어 K씨의 수다를 묵묵히 들어주곤 했다.


“언니, 반장 있잖아. 글쎄. 나한테 다 늙어빠진 게 무슨 화장이냐고 그렇게 쿠사리 주더니.”


“…”


“나랑 똑같은 립스틱 사서 바르고 온 거 있지? 진짜 웃기다니까.”


말자씨는 가만히 생각만 할 뿐이었다. ‘반장도 요령이 없구만.’


“그래서 내가 은근히 쳐다봤거든?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줄 아나, 한마디 중얼거렸더니 찔렸나 봐. 막 둘러대는 거 있지.”


“뭘 또 그렇게 티를 내구.”


쉼터 옆에 청소도구를 모아두는 곳에 도착할 때 즈음 말자씨가 입을 떼었다. 허리가 아파 마대걸레를 내려놓는 것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옆에서 보다 못한 K씨가 거의 뺏다시피 잡아들고는 ‘어이구’ 소리와 함께 마대걸레와 빗자루 같은 청소도구를 빠르고 야무지게 정리했다. 쉼터에 가까이 오자 K씨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말자씨의 소매를 잡아끌고 몸을 살짝 숙여 말자씨 귀에 빨간 립스틱을 다소 오버해서 바른 입술을 바짝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새로운 관리소장 왔잖아. 분명 그 사람 때문에 그러는 거라니까. 반장도 과부잖아.”


남사스러운 K씨의 말에 요령 없는 말자씨가 K씨의 어깨를 밀어내고 손으로 아직 숨결이 남은 듯 간지러운 귀를 털어대며 ‘아유, 징그러.’라고 인상을 살짝 찌푸릴 뿐이었다. K씨는 말자씨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이렇게 남을 욕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지는 몰라도 살짝 신이 난 듯이 다시 바짝 붙어 속삭였다.


“이참에 언니도 함 들이대 봐. 같은 과부 처지에 우리 다 같이 덤벼볼까?”


내심 K씨의 말이 재밌어 웃음이 비죽 흘러나왔지만 금세 다시 꾹 다문 입매로 돌아온 말자씨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못하는 말이 없어. 징그러워. 이 나이에 무슨.”


“우리 나이가 연애하기 제일 좋다 뭐. 자식들 다 자기 인생 산다고 부모한테 신경도 안 쓰지, 속만 썩이는 남편 놈도 콱 죽고… 우리가 어디서 죽던 난장을 까던 누가 신경 쓸 거야.”


말자씨는 그만하라는 뜻으로 대꾸 없이 쉼터의 문을 열었다. K씨의 말이 틀린 건 없다. 말자씨의 마음에 잔잔하지만 확실한 작은 파동이 일었다. 사실 말자씨는 앞에서 서술한 것 같이 7남매 중 둘째로 맏이인 말숙씨 못지않게 고생하여 막내 남동생을 지원했고, 당시에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일 저일 전전하다 기숙사형 공장에 취업해 여공으로 몇 년 근무하던 중 생각도 못한 선을 보게 되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결혼을 약속하고 설렘도, 사랑도 없이 그저 “산”이 있다는 말에, 말자씨의 아버지가 전하는 무언의 압박에 순순히 순종하며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해보니 남편은 마을에 소문난 난봉꾼이었고, 신혼 첫날부터 술에 취에 신방 문을 걷어차고 나가서는 며칠을 돌아오지 않았다. 말자씨가 철석같이 믿고 결혼한 가장 큰 이유인 물려받을 “산”은 이미 남편의 큰형이 도박빚을 갚느라 팔아버린 상황이었고, 말자씨는 그 사실을 지옥 같은 결혼 생활 3년 차, 첫 아이가 2살일 때 알게 되었다. 난봉꾼이면서도 큰형의 빈자리에 늘 우울해하는 부모에게는 각별했던 이중적인 남편 덕에 시부모 부양은 말자씨의 몫이었고 시부모는 나중에라도 “산”이 없다는 사실에 혹시라도 말자씨가 마음이 변할까 봐 어서 애를 가지라고 성화를 부리곤 했다. 그래야 네 남편이 밖으로 안 나돈다. 많이 낳을수록 좋다니까. 그래야 네 남편도 맘을 잡을 거 아니냐. 시어머니는 말버릇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 중얼거리곤 했다. 시부모님에게 단 한 가지 고마운 점이라면 병시중까지 들게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둘이 나란히 1년 차이로 자면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혹독한 결혼 생활이었다. 남편은 막내가 겨우 말을 뗄 때 즈음 술 먹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말자씨에게 했던 패악질에 비해 허무하게 사고로 사망하고 촌마을이었기에 보험에 대한 개념도 아무것도 없었기에 말자씨는 4명의 아이를 혼자 키우며 그저 이 아이들과 자신의 입에 풀칠할 생각만 하며 일하고 자고만을 반복해왔다.


“…”


쉼터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말자씨의 뒤에서 K씨가 속삭였다. ‘가뜩이나 과부는 장수한다는데, 연애는 하고 살아야지.’ 말자씨가 잠시 빠졌던 상념에서 벗어나 K씨의 말에 다시 비죽 웃었다. 그 둘의 모습을 보고 작달막한 키에 한눈에 보기에도 단단하고 똥똥한 체형을 가진 반장이 쉼터 평상에 누워있다가 후다닥 일어나서 물었다.


“둘이 뭐가 그렇게 재밌어?”


입술엔 K씨처럼 살짝 오버해서 칠한 빨간 립스틱이 번들거렸다. 반장은 눈이 뾰족해져서는 말자씨 뒤의 K씨를 노려보았다. 분명 자신의 얘기를 했을 거라고 짐작하는 듯했다. K씨가 짐짓 딴청을 부리며 ‘힘들다. 힘들어.’ 웅얼거리며 평상 끝자락에 엉덩이만 살짝 걸쳐 앉았다.


“응? 뭐냐니까.”


K씨가 대꾸하지 않자 말자씨 쪽으로 몸을 틀어 재차 묻던 반장은 둘의 무심한 반응에 이내 제 풀에 지친 듯 다시 돌아 누웠다. 관심 없는 척 손톱 옆 거스러미를 정리하던 K씨가 반장이 돌아눕자 다시 말자씨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언니, 오늘 끝나고 뭐해?”


“뭐하긴.”


“손녀딸 데리러?”


“그거 말고 또 뭐가 있나.”


“지겹지도 않어? 언니도 이제 언니 삶 살아야지.”


“…”


말자씨는 잠시 ‘나의 삶’이라는 단어에 ‘그게 뭐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금세 그 생각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애들이 ‘엄마. 애 좀 봐주세요.’ 하자마자 달에 2백만 원씩 달라고 했다니까?”


말자씨의 입장에선 K씨가 정말로 그랬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K씨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K씨는 말자씨가 보기엔 엄마, 할머니라는 가족 구성원이기 이전에 한 여자로서 ‘자신의 삶’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첨에는 ‘엄마, 우리 힘든 거 알면서 어떻게 그래요?’라면서 아주 바락바락 따지고 들더니 내가 배 째라고 하면서 끝까지 돈 달라니까 이제 맡아달라고 안 해.”


“…”


“그게 맞는 거 아냐? 우리가 왜 저들 자식까지 봐줘?”


K씨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말자씨의 표정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언니도 참, 답답하게 산다.’ 중얼거리고는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말자씨라고 답답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4남매를 홀로 키우며 잘 키웠다는 말은 자신 있게 할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다들 사회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이제야 숨통이 틔이나 싶었는데 손녀, 손주라는 변수가 생겼던 것이다.


물론 말자씨도 처음엔 거절하는 입장이었지만 자영업을 하는 큰 아이 부부의 여러 힘든 사정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은 몹시 죄책감이 들었고 ‘엄마, 나 힘들어. 알잖아. 엄마가 되어서 손녀 하나 봐주는 게 어려워?’라는 말이 말자씨의 마음을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4시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회의를 가장한 수다시간을 가진 후 5시에 퇴근한다. 올해 5살이 된 손녀 지희는 원래라면 종일반 마지막 시간인 5시에 집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며느리가 어찌나 사정했는지 말자씨의 퇴근시간에 맞춰 데려갈 수 있도록 배려받고 있었다. 그 말인 즉 말자씨는 퇴근 후 숨 돌릴 틈 하나 없이 손녀인 지희를 데리러 곧장 어린이집으로 향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퇴근하며 K씨가 나이에 다소 맞지 않는 복장에 구두를 신고 매니큐어가 발린 오른손을 경쾌하게 흔들며 멀어졌다.


말자씨는 낡은 운동화를 신고 절뚝이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발을 옮겼다. 말자씨는 어린이집에 도착해 항상 자신을 묘하게 안쓰럽게 보는 듯한, 그러면서도 피곤함과 짜증이 언뜻 스치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인사를 받으며 급하게 지희를 데리고 나왔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리 한 번 제대로 필 시간 없이 배고프다고 보채는 지희의 입에 뭐라도 물려준 후 저녁을 차리고 지희를 씻기고 지희가 좋아하는 만화 비디오를 몇 번이고 같이 보며 놀아준다. 큰 아이 부부는 10시에 가게를 마치면 10시 반 정도에 말자씨의 집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큰 아이는 말자씨에게 화풀이하듯 말한다.


“엄마, 지희 또 과자 같은 거 준거 아니지? 얘 피부병 때문에 함부로 뭐 먹으면 안 된다니까.”


“주긴 뭘 줬다고.”


“근데 얘 왜 여기가 빨개?”


며느리 품에서 졸려 보이는 눈을 꿈벅거리는 지희의 손목을 요리조리 돌려보며 큰 아이가 물었다. 말자씨가 흘리듯 답했다.


“안 주면 울고 떼쓰니까…”


“아, 엄마!”


큰 아이가 답답하다는 듯 큰 소리를 내자 지희가 며느리의 품을 더 파고들었다. 며느리가 그만하라는 뜻으로 남편을 툭툭 치자 큰 아이가 크게 한숨 쉬며 다시 덧붙였다.


“진짜… 조심 좀 해요. 어릴 때 관리해줘야 한다니까… 몇 번을 말해두…”


“그만하라니까.”


며느리가 지희의 등을 토닥이며 빨리 가자는 듯 남편의 말을 끊으며 현관 앞에서 갈 채비를 하자 큰 아이는 그제야 인사도 없이 현관을 나선다. 며느리가 면목이 없다는 듯 작게 ‘들어가 볼게요.’하고는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해야지.’라고 지희에게 말을 건다. 이미 반쯤 잠이 든 아이는 엄마의 말에 반응이 없고 말자씨는 며느리를 향해 어서 가라는 듯 손을 흔든다. 말자씨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아니 어쩌면 엄마이기에 하고 싶은 말을 참고 힘들었을 아들 내외를 쓸쓸히 배웅한다. 그제야 말자씨는 ‘자신만의 시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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