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굽어있던 허리를 잠시 펴고 숨을 돌린다. 그리곤 지희가 어지르고 간 장난감을 대충 한 곳에 치워 놓고 낡은 접이식 화장대 서랍 앞에 앉는다. 평상시엔 옷가지들을 올려놓아 그것이 서랍인지, 화장대인지, 아니면 그냥 거기에 놓여있는 낡아빠진 무언가 인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그것은 확실한 화장대였다.
말자 씨는 그 위에 올려져 있던 낡은 옷들을 잠시 치워놓고 뚜껑을 열어 거울이 보이게 세워두었다. 그 화장대는 3단 서랍인데 말자씨는 첫 번째 서랍을 열어 보았다. 남들이 보기엔 온갖 약봉지 밖에 보이지 않았겠지만 말자씨는 약봉투들 사이에 은밀하게 감춰 놓았던 립스틱을 꺼내 보았다. 평상시엔 사놓는 것만으로도 만족이 되어 꺼내 보지 않았지만 오늘 K씨의 말에 묘한 감정을 느꼈던 터라 몹시 발라보고 싶어졌다. 그리곤 작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를 흥얼거리며 립스틱을 발라 보았다. 내친김에 매니큐어도 발라볼까 싶었지만 집에 아세톤이 없어 ‘내일 오는 길에 사 와야지.’라고 생각했다.
말자씨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살펴보았다. 피부는 쳐졌고 눈 옆에 검버섯은 곳곳에 올라와있다. 원래 얇은 눈썹은 나이가 들면서 숱이 더 없어져 눈썹 눈앞머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진 상태였다. 말자씨는 역시나 주름지고 탄력 없는 자신의 손을 들어 눈 옆의 쳐진 주름을 살짝 위로 끌어올려보았다. ‘이 정도만 되어도 몇 년은 젊어 보이겠구만.’ 생각하다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두번째 서랍을 열었다. 언제 사둔 건지, 본인이 샀던 건지 출처도 알 수 없는 아이브로우 펜슬을 들어 반쯤 사라진 눈썹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엄마, 문 닫고 뭐ㅎ…”
막내인 소영이 닫혀 있던 말자씨의 문을 열었다. 말자씨는 놀란 나머지 등 뒤로 아이브로우 펜슬을 숨겼는데 왼쪽 눈썹은 반만 그려져 있고 입술은 빨갛게 칠한 엄마의 모습을 본 소영은 말을 채 잇지 못한 채 바라보았다.
“그, 그게…”
괜히 찔린 말자씨가 먼저 말을 꺼내려했으나 소영은 잠시 놀란 모습 그대로 서있다가 그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말자씨는 변색된 벽지 위에 위태롭게 달려있는 낡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11시 30분. 늦깎이 대학생인 소영이 도서관에 갔다가 오는 시간이었다. 말자씨는 어쩐지 자신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 앞에서 화장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꺼려지고 부끄러웠다.
말자씨가 다시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목까지 벌게진 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늙고 볼품없는 누군가가 거울 속에 있었다. 말자씨는 몸을 일으켜 휴지를 찾아 입술부터 지웠다. 반쪽만 그렸던 눈썹도 지우고 나니 이제야 말자씨는 ‘자신 같은’ 모습이 된 것 같았다. 말자씨는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오른손으로는 허리를 짚은 채 천천히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분명 돈 아낀다고 저녁도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고 말았을 막내딸의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서였다. 주방으로 가는 길에 소영의 방이 위치해 있어 말자씨는 살짝 열린 틈으로 소영의 동태를 살폈다.
소영이 말도 없이 문을 닫고 나간 것이 몹시 신경 쓰였다. 기척을 느꼈는지 소영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방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말자씨를 보고는 다시 말없이 뒤돌아 무언가를 찾는 듯 서랍을 뒤졌다. 말자씨는 그대로 지나쳐 주방으로 가 조용히 밥을 푸고 국을 뜨고 냉장고에 랩으로 씌워놓은 반찬들을 꺼내놓았다. 그때 소영이 방에서 나오며 두 손에 무언가 잔뜩 들고 왔다.
“엄마, 이거.”
말자씨가 기운 없이 쳐다본 소영의 손에는 립스틱, 선크림, 각종 화장품 샘플이 들려있었다.
“뭐야.”
“나 안 쓰는 건데 엄마 쓰라구.”
‘기다려봐.’라고 말하더니 소영은 안 쓰는 명품 화장품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들고 와 건넸다. 안에는 물론 싸구려 화장품 샘플과 잡다한 화장품뿐이었지만 말자씨는 내심 크게 안도했다. 소영이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그 짧은 시간 동안 몹시 마음을 졸였던 터였다. 마음을 졸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엄마로서’ 보이면 안 될 모습 보였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심한 듯 쇼핑백을 건넨 후 소영은 ‘나 배 안고픈데…’하면서도 말자씨의 성의를 생각해 싫다는 말 없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립스틱 바르니까 몇 년은 젊어 보이던데. 앞으로 계속 발라봐. 이쁘더라.”
말자씨는 ‘무슨…’이라고 웅얼거렸지만 명치가 둥둥 울렸다. 비록 자식에게 들은 말이었지만 ‘이쁘다.’는 말은 적어도 몇십 년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소영이 다 먹기를 기다린 후 설거지를 하고 구멍 나고 낡은 행주로 식탁을 닦으면서도 그 울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불을 덮고 누워서는 울림이 곧 떨림이 되었다. ‘나도 아직은…’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침이 되고 다시 말자씨는 씻고 방을 치우고 편한 옷을 걸치고 낡은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15층부터 미련할 정도로 꼼꼼히 그리고 깨끗이 닦으며 내려온다. 그리고 K씨와 대화한다. 하지만 말자씨에게 오늘은 조금은 다른 날이었다. 가족 동반 모임이 있어 지희를 본인이 데려간다는 며느리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말자씨는 갑작스레 주어진 퇴근 후 자유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오히려 고민에 빠졌다. 옆에서 며느리와의 통화를 듣고 있던 K씨가 이때다 싶게 통화가 끝난 말자 씨를 구석으로 잡아끌었다.
“왜 이래.”
말자씨가 검은색 구형 폴더폰 액정을 거친 엄지로 몇 번 닦은 후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K씨가 말했다.
“언니 저녁에 시간 비는 거지?”
“뭐…”
“할 거 있어?”
“딱히…”
“그러면 나랑 같이 좀 가자.”
“어딜…”
“거참, 한 번 와보면 언니 푹 빠질걸. 사는 맛이 느껴진다니까?”
“뭐길래…”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말자씨는 대충 K씨가 같이 가자고 하는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K씨는 시내 구석에 아주 낡은 건물의 4층에 위치한 성인 전용 콜라텍 단골손님이었다. 간판은 콜라텍이지만 그곳은 중년, 노년의 여성, 남성이 모여 춤추고 커피, 맥주도 한 잔 하는 무도회장이었다. 말자씨는 젊어서도 술이나 유흥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고 흥미조차 없었지만 소영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쩌면 나도 아직은…’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가서 그냥 구경이나 해보래도. 나중엔 언니가 오히려 같이 가자고 조를걸?”
말자씨는 화장품의 유분기로 번들거리는 K씨의 피부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신의 행색이 생각나 다시 한번 거절을 표했다.
“됐어. 난… 어디 갈 옷차림도 아니고.”
K씨가 답답하다는 듯 말자씨의 소매를 더 잡아끌며 말했다.
“나 아무한테나 같이 가자고 안 한다니까? 언니니까 말한 거야. 언니 정도면 동안이고 괜찮대도 그러네.”
말자씨는 결국 K씨에게 못 이기는 척하며 같이 쉼터를 나섰다. 그 모습을 청소반장이 눈여겨보았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시장에 가는 것, 병원에 가는 것, 일하러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이렇게 버스를 타고 나온 게 얼마만이더라. 말자씨는 창밖을 바라보며 다시 짧은 상념에 젖었다. K씨는 뭐가 신나는지 옆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말자씨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으응.’ 짧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말자씨의 명치가 점점 더 크게 울렸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을 따라 따라 들어간 건물은 내부도 몹시 낡아 꿉꿉하고 습한 오래된 건물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말자씨의 팔을 잡아끌며 K씨가 발길을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담배냄새와 더불어 알 수 없는 묘한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늙은 사람들에게서 으레 나는 쾌쾌한 냄새와 술, 담배, 땀 냄새가 섞인 냄새였다. 말자씨는 엘리베이터에 붙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는 K씨를 멍하게 보다가 옆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K씨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지만 기가 죽지는 않았다. 여전히 마음속에선 또 다른 말자 씨가 속삭이고 있었다.
‘나도 아직은 '여자'로 보일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왼편에서 작게 쿵짝쿵짝 거리는 음악이 들려왔다. K씨는 자연스럽게 앞장서 걸어갔고, 뒤를 따르며 말자씨는 점점 더 커져오는 음악을 들었다. 그제야 말자씨는 본인이 어디에 와있는건지 실감 난 듯 점점 더 몸이 움츠러들었다. 분명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 자신의 모습이 다시금 초라하고 볼품없이 느껴질 때 낡은 유리문에 초록색 스티커로 ‘성인 콜라텍’이라고 붙여진 곳 앞에 도착했고 말자씨가 K씨의 뒤에서 작게 말했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는 게…”
“뭐라구?”
K씨가 문을 열며 잘 못 들었다는 듯이 되물으며 안으로 쏙 들어갔다. 말자씨는 그 앞에서 백치처럼 멍하게 서있었다.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할 때 다시 K씨가 문을 빼꼼 열고는 말했다.
“언니, 안 들어고 뭐해?”
내부는 어둡고, 어두운 와중에 자주색, 파란색, 초록색 같은 색색의 조명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유행하는 트로트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조명 아래에는 한 껏 멋 낸 말자씨 나잇대의 여자와 남자가 서로 짝을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처음 겪는 별천지에 말자씨가 어쩔 줄 모를 때 K씨가 말자씨의 뒤로 가 등을 살짝 밀며 말했다.
“저기에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소개?”
말자씨가 등 떠밀려 간 곳은 춤추는 공간과는 잠깐 떨어진 테이블 자리였다. 그곳엔 대머리에 배가 나온 남자와 중절모를 쓰고 반듯한 셔츠를 입은 -옆의 남자보다는 3-4살 어려 보이는- 남자가 앉아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K씨는 말자씨를 ‘같이 일하는 언니’라고 잠깐 소개한 후 자리에 앉았다. K씨가 익숙한 듯 대머리의 남자 옆에 앉아 ‘나도 커피 한잔 줘봐~’라고 콧소리를 냈고 그 모습에 남자가 일어나 자판기 쪽으로 향했다. K씨는 그 남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남자가 대충 박 씨이고 아웃도어 매장 점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냥 편하게 박 씨라고 해.” K씨가 말자씨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오빠는 최 씨. 중학교 교사였다가 퇴직했대.”
말자씨는 중절모의 남자를 보고 “최 씨…”라고 작게 말하며 고개만 까딱하고는 금세 눈을 피했다. 박씨가 말자씨의 커피까지 가져와 짧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대략 대화를 들어보니 박씨와 최씨, K씨는 모두 이곳에서 만났는데 최씨의 파트였던 이씨가 다리를 다치게 되었고 그 바람에 파트너가 없어진 최씨가 안타까워 K씨가 말자씨를 데려온 상황이었다. 말자씨는 어색한 분위기, 어색한 환경 속에서 내심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최씨의 곧은 자세에 비해 허리 통증으로 인해 구부정하게 있는 자신의 모습이 비교되어 말자씨는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K씨와 박씨는 둘이 대화하라며 다정히 팔짱을 끼고는 춤추러 나갔고 말자씨는 그만 일어나려고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그때 최씨가 말을 걸었다.
“처음 오셔서 정신이 없으시겠어요.”
몹시 부드러운 저음이었다. 중후한 인상에 깔끔한 복장에 어울리는 음성이었다. 말자씨는 그 음성에 잠시만 더 있다 가자는 생각에 자리에 앉았다.
“네…뭐…”
“저도 처음엔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니까요.”
허허 웃으며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퇴직하고 집에만 있기에도 좀이 쑤시던 차에 저도 얼떨결에 친구를 따라왔다가 그만 푹 빠져버렸네요.”
말자씨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꽤 오래 다니셨나 봐요.”
“가만 보자… 이번 달이… 딱 1년 차네요.”
손으로 기간을 가늠하는가 싶더니 최씨가 말했다.
“성함이 말자씨, 맞죠?”
“아, 네…”
말자씨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을 하자 최씨가 급하게 말했다.
“K씨가 얼마나 칭찬을 하던지요. 성실하고, 참하고, 가족들한테도 아주 잘하신다고요.”
“네…”
“혹시 다음에 오시게 되면 화, 수, 목 이렇게 오세요. 그때는 저도 이 시간에 있거든요.”
“아아…”
“그리고 춤은 제가 알려드릴게요. 저도 여기서 배웠거든요. 하나하나 배우시다 보면 아주 재밌으실 거예요. 운동도 되구요. 저희 나이대에는 할만한 운동도 수영 말고는 애매하잖아요.”
최씨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자 씨를 바라보았다. 말자 씨는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화요일까지 4일…’이라고 남은 일자를 가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