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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경 Oct 22. 2023

그대 외로운가

  한 여배우가 죽은 지 2주 만에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주연으로 각광을 받았던 사람은 아니지만 길에서 만나면 아는 사람인 줄 알고 인사라도 할 법한 친숙한 얼굴이다. 57세, 고령화 사회에선 젊은 나이다.


  그녀를 마지막 본 것은 CCTV였다. 은막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화려한 삶을 누리던 여인이 맞아야 했던 쓸쓸한 죽음, 이른바 고독사다. 안타까운 죽음이었지만 가족과 지인들이 달려오고 성모병원에 빈소를 차린 것은 고독사의 뒷모습치곤 그나마 따뜻했다. 시신마저 주인이 없어 무연고사로 처리되는 죽음도 요즘은 낯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고독사의 현장을 알리는 조간에는 또 다른 부고도 실려 있었다. 한쪽 구석이지만 엽서 절반 크기의 지면에 실린 고인들의 면면은 나름 화려했다. ××대 교수, ××대표들이 호상이거나 상주였다. 수만 부가 발행되는 중앙지를 통해 전국적으로 부음을 알리고 애도를 받는 사람들. 그들의 부음과 고독사의 기사는 신문지 두어 장을 건너는 거리일 뿐이다. 


  죽음, 그다음은 아무도 모른다. 빈소가 쓸쓸하건 문상객으로 북적이건 시신으로 누운 이가 알까? 죽는 순간의 편안함과 외로움을 기억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데도 목구멍에 가시라도 걸린 듯 불편한 채 조간을 던져놓고 서둘러 나갔다. 


  난 일주일에 한 번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탄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곳을 비집고 들어가면 앉는 호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손잡이나 기둥을 편하게 잡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다. 어깨나 등이 맞닿는 것은 기본이고 자칫 흔들리기라도 하면 옆 사람의 코와 부딪칠 것 같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 지하철은 지옥철이라고도 한다.  


  지옥철이라는 말, 정말 그럴듯하다. 옆 사람의 입김이 닿을 만큼 빼곡히 들어찬 사람 중에 죄 없는 사람 있을까? 그러나 같은 지옥이라도 출근길은 퇴근길과는 확연히 다르다. 퇴근길은 피로와 나른함이 죄를 숙성시킨다면 출근길은 생기와 희망이 죄와 싸우며 하루를 열어간다, 비록 또 하나 죄를 낳을지라도.


  비비적거리며 간신히 손잡이 하나를 움켜쥐고 서니 앞자리에 천국이 펼쳐졌다.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눈감은 사람, 손가락이 휴대폰 위를 날아다니는 사람, 휴대폰 속에 빨려 들어가 무아지경인 사람. 단절된 저마다의 대양을 항해하는 그들은 모두 혼자다. 그들은 옆 사람이 누구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눈길 한 번 들지 않는 불온한 천국이다.


  CCTV 카메라에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떠난 여인이 생각났다. 그는 이 지하철의 천국과 지옥 어느 자리에 있고 싶을까. 어쩌면, 가끔 부딪쳐 오는 낯선 사람과 땀 냄새까지 비비는 아침의 지옥도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아니, 분명 그리워할 거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손잡이가 더없이 든든해 보였다. 어깨를 맞댄 젊은 여자의 핸드백이 쿡쿡 찔러오는 느낌에 목울대가 가벼워졌다.


  그대 외로운가? 그러면 출근길 지하철을 타라. 혹 빈자리가 나더라도 앉지 말고 서서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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