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는 긴급출동을 목적으로 한다. 긴급 상황실을 갖추어 놓고 연락을 받으면 즉시 출동을 한다. 빨리 출동을 하려고 출동할 모든 준비를 갖추고 대기한다. 차는 타기만 하면 곧 출발이다. 옷은 이미 차 안에 마련해 둔다. 동선을 줄이려고 2층에 있다가 계단으로 내려오지 않고 바닥에 구멍을 뚫어 봉을 타고 수직으로 내려온다. 도로를 달릴 때는 비상 싸이렌을 울리면 앞에 있던 차들이 비켜주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 정도다.
병원도 응급실을 마련해 주도 환자를 기다린다. 갑자기 아픈 사람이나 사고를 당한 사람이 한밤중에도 언제든지 찾아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의사와 간호사도 필요한 만큼 당직으로 대기를 한다. 요즘은 의사들이 의과대학생 입학정원에 반대하느라고 6개월 째 파업을 벌여 의사가 부족하다고, 응급실에 비응급환자가 가면 치료비를 많이 물리겠다고, 응급하지 않은 환자는 가급적이면 응급실을 찾지 말란다.
하루는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사장님이 보잔다. 무슨 일로 아침부터 찾으시나 했다.
“어제 저녁에 전화를 왜 안 받으세요?”
“예? 전화하셨어요? 몰랐습니다.... 두 번이나 하셨네요? 무슨 일로....”
“우리도 비상시 연락을 하면 곧바로 전화를 받아야 합니다. 만일 관리하는 수용가에서 변압기가 터졌다고 연락을 하면 어쩔 뻔 했습니까? 곧바로 대처를 해야 하는데....”
우리도 드물기는 하지만 비상시 연락은 되어야 한다. 비상출동이 있기 때문이다. 비상출동을 위해 일정표부터 잘 짜야 한다.
한 달에 점검할 장소를 일정표에 따라 정해 놓고 방문한다. 한 달에 네 번 방문하는 곳이 두 군데, 3번을 방문하는 곳이 8군데, 두 번을 방문하는 곳이 14군데가 된다. 나머지 100여 곳은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한다. 일정표는 새 달이 되기 전에 미리 짠다. 한 군데도 빠지지 않도록, 여러 번 들르는 곳은 그 간격이 너무 가깝거나 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해야 한다.
여기에 주의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월요일에는 비교적 바쁘지 않게 짜야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휴무일 때 전기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그래도 휴일이라고 참았다가 월요일에 긴급출동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가까운 곳을 주로 가고, 그것도 일정을 조금 여유 있게 짜서, 만약에 있을 긴급출동에 대비한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월초보다 월말을 조금 더 헐렁하게 짠다. 긴급출동이 있어서 그날 계획한 곳을 들르지 못했다면, 얼마든지 뒤로 미룰 수 있다. 미루는 것도 월초에서 중순이나 하순으로 미루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음 달로 미뤄서는 안 된다. 달 단위로 점검을 하도록 계약을 했으니, 어쨌든 그 달에 점검할 곳은 그달에는 가야한다. 월말에 방문하도록 계획을 했는데, 긴급출동이 있어서 방문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어나지 않도록, 월말에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긴급출동은 대게 사무실로 전화가 간다. 점검기록표에 회사전화번호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명함도 돌리기는 했지만, 이것은 세월이 가면 쉽게 잃어버리는 모양이다. 내 번호를 저장한 사람도 있다. 나와 자주 만나면서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이야기를 하기는 한다. 하지만 긴급한 일이 생기면 사장님을 먼저 찾는다.
지난 금요일 오후다. 점심을 먹고 다음 점검할 곳으로 달려가는데,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김부장님, 대성빌딩을 점검하지요? 이천에....”
“예.”
“거기가 화장실에 불이 나갔는데, 차단기에 어떤 것이 떨어졌는지 모르겠답니다. 거기 좀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 주세요. 판넬을 열어서 떨어진 차단기 하나 찾아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하루 점검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 들렀다. 여기는 오래 된 건물이라, 수변전실은 지하에 있고, 1층은 편의점과 김밥집 같은 상점이 있고, 2층부터는 원룸이 있는 4층 건물이다. 화장실에 불이 나갔는데, 어느 판넬에 있는 차단기가 떨어져서 불이 들어오지 않는지 모르겠단다. 내가 들어도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고개가 갸웃 거려지는 문제다. 점검을 하고 싸인을 받는 편의점에 먼저 들어갔다.
“어디에 화장실이 있고, 어떻게 불이 안 들어온다는 말씀입니까?”
“예, 따라 오세요. 보여 드릴게요.
“여긴데요, 천장에서 물이 샜어요. 그래서 천장을 헤쳐 놨는데, 지금 여기에 들어오는 불은 선을 따로 빼서 전등을 달아 놓은 겁니다. 천장에 붙은 전등에서 불이 왜 안 들어오는지 좀 봐주세요.”
화장실은 천장 마감재가 다 헤쳐져 있다. 2층 콘크리트 바닥이 다 드러나 보인다. 전선이 끊어진 것이 흩어져 있다. 옆 칸에 보일러실에는 아주 전등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화장실 바로 앞에 전기 분전반이 하나 있다. 손전등을 비춰가면서 살펴보았다. 활선테스터기를 여기 저기 대 보았다. 전등을 바꿔보기도 한다. 콘크리트에 박힌 사각 철재박스에서 늘어진 선을 해쳐보았다. 화장실에 불이 안 들어오니까 임시로 선을 끌어 설치한 전등도 때가 새까맣게 쌓였다.
하루 이틀, 한두 달 묵은 문제가 아니다. 벌써 해를 넘겼을 법한 문제인데,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이제야 사장님에게 전화를 한 걸까?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할 때 이야기했으면 긴급출동을 하지 않고 찬찬히 봐 줄 수도 있는데, 왜 나한테 이야기를 하지 않고 회사로 전화를 했을까?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점검을 해 봤는데요. 분전반은 거기가 맞아요. 옛날에 물이 샐 때, 전등에 물이 닿아 누전이 되니까 아주 전선을 잘랐는가 봐요. 화장실뿐만 아니라, 그 옆 칸에 보일러실에도 천장 마감이 아주 없어요. 물이 세니까 썩어서 다 내려앉았어요. 거기도 전선을 다 잘라놔서 불도 안 들어와요. 지금 켜 놓은 화장실에 불은 오른쪽 두 번째 차단기에 물려 있어요. 옛날 전등은 안 들어와도 차단기는 내려간 것이 없어요. 그건 선을 잘랐다는 뜻입니다. 차단기에 연결되어있지 않아요. 그래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걸 정상화시키려면 먼저 물 새는 것부터 잡고, 전기공사를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럼, 안전관리자님은 공사는 안 하시는군요.”
“예, 우리는 여기가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안전한가 아닌가만 살핍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긴급히 출동할 곳이 아닌데, 사장님에게 전화를 하니까 긴급하게 와야 했다. 점검 때 오면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볼 텐데, 일부러 들렀는데도 별 성과 없이 끝내고 말았다. 이럴 때는 허탈감마저 든다. 소방서에 불이 났다고 거짓신고를 하면 벌금을 물린다. 긴급하지 않은 것을 긴급하다고 응급실에 오면 응급정도에 따라 치료비를 차등 적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도도 못한다. 그냥,
“이런 것은 내가 올 때 이야기해 주시면 찬찬히 봐 드릴 수 있어요.”
까지만 할 수 있다. 빈정 상하게 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
금요일 오후 일과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 마감 준비를 했다. 이제 30분만 있으면 퇴근이다. 오늘이 불금이니까, 이틀을 쉴 수 있다. 그때 사장님이 나를 찾는다.
“성박사인생고기 점검하시지요? 식기세척기에 전원이 안 들어온답니다. 내일 세척기 판매점에서 들른다는데, 내일 방문하느니 지금 가셔서 점검 좀 해 주세요.”
“지금요? 퇴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예. 그래도 휴일인 내일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지금 퇴근하시고, 집에 가기 전에 한번 들러서 점검해 주세요.”
집에서 5분 정도 더 가는 곳이니까, 잠깐 들러서 보기위해 성박사 인생고기에 들렀다.
성박사인생고기는 처음에 인수인계를 받을 때 기록되어 있기는 ‘성박사생고기’였다. ‘성씨 성을 가진 분이 경영하는 푸줏간’이라는 말 아닌가? 몇 번 드나들면서 간판을 봤더니, ‘성박사인생고기’다. ‘성씨라는 분이 자기 인생을 걸고 고기를 고깃집을 운영한다’는, 그래도 처음보다는 좀 더 진정성을 있는 간판을 내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주인이라는 분이 점잖게 전화를 내게 직접 걸어왔다.
“안전관리자님, 성박사인생고기인데요, 여기 언제 들르십니까? 들르시면 부탁이 하나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기를 가서 점검을 하고 사인을 받고 올 때도 주인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내게 직접 전화를 했다.
“예, 다음 주 목요일에 들르기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죠?”
“예, 주방에 전등을 바꿔 달아야 하는데, 저 혼자서 하려니까 엄두가 안 납니다. 전기에 대해서 전혀 몰라서요. 다음에 오시면 좀 도와주십사 하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이정도면 양반이다. 이 성박사님이 고기만 인생을 걸고 파는 것이 아니라, 어디다 내다 놔도 빠지지 않을 심성도 가지셨다.
다음 점검일에 가서는 주방에 전등을 두 개 갈았다. 내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풀고, 갈아 끼우고, 다시 나사를 돌려 박았다. 주인장 성박사님은 정말 성씨성을 가졌는지, 여기 점장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요구하는 대로 드릴 집어 주고, 드라이버 받아 주도, 전등 올려 주고, 또 받아 주고, 사다리도 잘 잡아 주었다. 일이 끝나고 설렁탕도 한 그릇 들고 가란다.
“감사합니다. 내 식사 한 끼 대접해 드릴 테니, 맛있게 잡숫고 가십시오.
“얘들아 여기, 한 상 차려 드려....”
설렁탕 한 그릇이지만, 전치집에 간 것처럼 대접을 받았었다. 인생을 걸고 하는 장사라서 그런지 설렁탕에 고기도 제법 실했다.
“그럼, 인생고기인데....”
이번에는 가니까 성박사님은 없다. 대신 새로 왔다는 점장이 맞는다. 그 때 그 양반도 점장이었던 모양이다.
“예, 여기 새로 온 점장입니다. 제가 회사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식기세척기를 토요일과 일요일에 많이 써야 하는데, 전기가 안 들어옵니다. 이거 안 들어오면 바빠서 장사 못합니다. 왜 안 들어오는지 좀 봐 주세요.”
장사를 못 한다는데, 퇴근시간이 다 되었어도 그냥 갈 수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척기를 돌리도록 해 주어야 한다.
먼저 식기세척기를 점검했다. 메가가 잘 나온다. 절연상태가 무한대급이다.
“식기세척기는 이상이 없습니다.”
꽂았단 콘센트를 점검했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콘센트를 분리해 절연을 측정했다. 여기가 마지막 콘센트인지 선이 세 개다. 하나는 핫라인(Hot Line)일 테고, 하나는 뉴트럴라인(Neutral Line)일 테고, 또 하나는 접지선이다. 선이 모두 메가의 바늘을 반대편으로 ‘확 확’ 보내는 누전이다.
“여길 보세요. 선이 모두 누전입니다. 그러니까 차단기가 떨어 졌을 테지요.”
“여기 콘센트는 안 쓴지 오래 됐어요. 이걸 새로 설치해서 썼는데 지금은 이것도 안 들어 와요. 그래서 전화했어요.”
“새로 설치했어요? 언제요?”
“벌써 오래 됐어요.”
분전반을 찾아보니, 3번방에 설치된 분전반에 차단기를 신설해서 썼는데, 이 차단기가 내려가 있다. 차단기를 올렸더니, 전기가 들어온다. 그런데 달려 있던 콘센트가 이번에는 망가졌다. 그래서 차단기가 내려갔는데, 찾지 못해서 올리지 못한 것이다.
벌써 오후 6시가 지나 철물점이나 전기상에는 문을 닫을 시간이다. 식당에는 손님이 저녁을 먹으러 몰려 올 시간이다. 새 콘센트를 사러 갈 사람이 없단다. 막 문을 닫고 퇴근을 하려는 동네 철물점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가장 한가한 사람을 태우고, 내가 동네 철물점으로 운전을 해 갔다. 콘센트를 갈았다. 보통은 간단한 작업은 해 주어도 재료를 내가 사지는 않는데, 여기는 하도 급하고 사람도 없어서 내가 사다가 설치해 주었다.
“얼마예요, 얼마를 드려야 해요. 가격을 얘기하셔야지요.”
“이것 보세요. 공짭니다. 저는 안전관리자이지, 공사나 수리업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돈을 받지 않습니다.”
“예? 그런 사람도 있어요?”
“‘어디에 이상이 있다’, ‘안전하지 않다’, ‘안전하다’만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여기서 고쳐 드린 건, 당장 다른 사람을 불러 고치라고 할레도 사정이 그리 못 되니까, 내가 임시로 고쳐 드린 겁니다. 콘센트는 공사 업자 불러서 고치셔야 해요.”
“아, 예,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만하면 다행이다. 서로 일하는 중에 인격을 존중해 주면서, 일 할만큼 해 주고, 일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면 된다. 홍박사가 인생을 걸고 고기 장사한다더니, 성박사가 고용한 새 점장도 거기다가 잠시나마 인생을 걸만하다.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쉰다. 기껏 가 봐야 일요일 오후 늦게 설봉산을 한 바퀴 돌 뿐이다. 그렇게 쉬어도 월요일에 출근을 하려면 피곤이 덜 풀린 채로 간다. 하루는 일요일 오후에 양정빌딩 이건주 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장님, 여기 영정빌딩인데요, 7층 헬스장에서 스위치가 녹아내리고 탄내가 난다고 직원들이 소방서에 신고하겠다고 해요. 내가 와 봤더니, 5구짜리 스위치 중에 하나가 녹았어요. 빨리좀 와 주실 수 있어요?”
“스위치가 녹아도 차단기가 내려가면 됩니다. 녹아서 불이 붙는데 차단기가 내려가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데, 일단 차단기가 내려가면, 그 스위치를 안 켜면 됩니다.”
“차단기 내려 간 것이 없습니다.”
“그래요? 내가 가 볼게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다행이다. 차로 5분이면 된다. 옷을 입고 길을 나서는 것 차체가 벌써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복날 한 가운데다. 우선 정상적이지 않은 경우니까 가 봐야 한다.
차단기가 둔감한지, ‘실내1’에서 ‘실내4’까지 누전차단기 옆에 견출지가 붙어 있어도, 차단기가 내려간 것은 없다. 다른 내용이 쓰여 붙여진 차단기도 내려 간 것이 없다. 대신 등이 꺼져있다. 헬스장 가운데 한 줄이 모두 커져있다. 스위치는 녹아서 망가져 있다. 일단 전류가 흐르지 않으니 더 이상 사고가 확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소장에게 공사한 업체에게 재공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소장님, 스위치 불량이네요. 스위치 접점이 딱 닿지 않고 간격이 조금 있으면 거기에서 열이 나요. 조금씩 열이 나도 시간이 많이 지나면 열이 축적이 되잖아요. 그래서 스위치가 녹아 내린 겁니다. 이거 오래 두면 불도 붙어요.”
“그런데 왜 타다가 말았지요? 탄내가 아래층까지 나더라고요.”
“스위치가 열에 녹다가 간격이 벌어졌어요. 더 이상 전류가 건너갈 수 없을 만큼 되니까 저절로 열이 나지 않게 되었고, 그러니까 누전차단기도 떨어지지 않았고, 전등은 나갔어요. 공사를 한 업체에게 하라고 하세요.”
“예, 내일 바로 온다고 했습니다.”
긴급출동을 해도 이정도면 괜찮다. 오죽하면 쉬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겠나 싶어서 될 수 있는 대로 가려고는 한다. 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로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가도록 하는 것은 좀 지양했으면 한다. 이정도면 거짓신고라고 벌금도 안 물리고, 비응급 환자 취급도 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내가 점검을 한지 얼마 안 되어서다. 강남농협유통센터에서 전화가 왔다고 사무실에서 연락을 받고 경리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농협에 전화를 걸었다. 비가 조금 내리는데 누전이 되어서 과일 선별기를 사용할 수 없단다. 지금 당장 작업을 못하고, 작업자들이 일손을 놓고 있단다.
“부장님 빨리 좀 와 주세요. 일꾼들 하루 일당을 날리게 생겼어요.”
급한 소리를 하기에 다음 일정을 미루고, 40분을 달려서 갔다. 평상시에 콘센트 하나를 밖에다 끌어 내 놓고 썼는데, 작은 비가 왔는데 들여 놓지 않아서 차단기가 내려간 것이었다.
“여기 차단기가 내려갔네요. 콘센트가 물에 젖으면 됩니까? .... 이런 일로 멀리 있는 나를 부르면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콘센트는 말려서 쓰면 되고, 내려간 차단기는 올리면 되잖아요.”
“아, 미안합니다.”
하면서도 눈에 힘이 여전히 들어간 것을 보니, ‘더 했다가는 안 좋을 줄 알라’는 말이 담겨 있었다.
공자님이 길을 가다가 길 가에 볼일을 보는 사람을 크게 나무랐다. 조금 더 가다니까 길 가운데 볼일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 따르던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길 가에서 보던 사람을 그렇게 나무랐는데, 가운데서 봤으니, 넌 이제 죽었다’ 싶었단다. 그런데 공자님은 아무 소리도 안하고 지나가더란다.
“아니, 스승님. 저 사람은 길 가운데 볼일을 봤어요. 그러면 앞에 사람보다 더 크게 꾸짖어야하지 않습니까?”
“가르쳐도 안 될 놈은 그냥 가만 두는 게 상책이다.”
나도 눈빛을 보고는 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했다.
“나를 독해지게 하지 말아라.”
처음이었으니까, 여기를 살피고, 저기를 보라는 말도 못할 때였다.
우리는 서로 돕는 관계다. 뭐 어느 관곈들 일방적인 관계가 있는가? 긴급출동을 예상하고 한 달 업무 스케줄을 잡는다. 영정빌딩과 성박사인생고기 같이 긴급한 것만 당장에 전화를 하고, 긴급하지 않은 것은 정기점검 때 이야기를 하면 된다. 상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은 스스로 해결하고, 말이다. 뭐, 출동 한다고 돈도 받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서로 합리적으로 풀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