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는 유연함에서 나온다.
p.45-p.58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전쟁 중에 고려해야 할 5가지 원칙(五事)에 이어, 손자는 이 오사(五事)를 토대로 7가지 비교 기준(七計)을 제시했다. 크게 보면 오사(五事)와 군사력, 병력의 훈련상태, 상벌체계의 7가지이다. 이 중에서도 군대의 유지뿐만 아니라 전쟁의 지속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자 전쟁의 토대가 되는 것이 역시 제1계(計)인 ‘도(道)’이다. 이는 윗사람의 자질과 도덕성으로, 아랫사람의 존경과 복종을 이끌어내는 능력임과 동시에 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의 존중과 배려를 같이 의미한다. 즉 도(道)가 확립된 군대와 국가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이 저신뢰 사회라는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에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다. 손자는 이미 이때부터 신뢰를 기반으로 한 제도와 정치가 아주 중요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좋은 조직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각자의 역할과 본분에 충실하고, 상호 존중과 신뢰가 튼튼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손자는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일사불란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손자는 합리적인 신상필벌을 말한다. 이는 역자가 덧붙인 「손자오기열전」에서 손자가 오나라 왕 합려가 궁녀들이 자신의 군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왕이 총애하는 궁녀 2명을 죽임으로써 엄격한 군령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과 『한비자』의 「내저설 상」 편에서 “자애로움이 많으면 법령이 서지 못하고, 위엄이 적으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침해하게 된다. 이 때문에 형벌을 확실히 시행하지 못하면 금령이 시행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으로부터도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엄벌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병에 담긴 물을 가끔씩 흔들어줘야 썩지 않듯 어느 정도의 신상필벌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군대에서의 경험에서도 생각해 보면 후임들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것이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조금 더 기강을 잡았어야 했을까? 물론 나도 잘 못하는데 누구에게 뭐라 하느냐는 생각 때문이긴 했지만 조금 악역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와 같이 손자는 거시적·미시적 측면, 물질적·정신적 측면, 정량적·정성적 측면을 모두 고려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보여주는데, 군대를 통솔하는 법에도 도(道)와 형벌을 모두 강조한 데서 이를 다시 알 수 있다.
오늘도 손자의 이런 실용주의적 면모를 알 수 있었는데, “세(勢)란 유리함에 따라 권변(權變)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쟁이란 속이는 도[궤도(詭道)]이다.”, “묘책이 많으면 (전쟁에서) 승리한다.”라고 말한 것을 통해서였다. 돌아가는 상황과 형세에 따라 유연하게 변통(變通)할 줄 알아야 하며, 전쟁에서는 무조건 적을 속이고 방심시키는 것이 첫 번째이고,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면 승률을 높일 수 있다는 당연하면서도 합리적인 의견이다. 특히 유연함과 다각적으로 사고하며 충분히 준비하는 태도는 리더의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멀리 내다보되 미세하게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는 자를 리더로 뽑아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눈앞의 이익만 보느라 거시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 고조 유방의 책사 장량이 유방에게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공신에게 가장 먼저 작위와 봉토를 하사하여 논공행상에 대한 부하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도록 조언한 것이 크게 와닿았다. 가장 싫어하거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은 내 옆에 두고 잘해주면서 내 편으로 만들 뿐 아니라 내 눈에서 지켜본다는, 그 사람에 대한 싫어하는 감정만 앞세운다면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묘책일 것이다. 사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거나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오히려 더 잘해주고 싫은 티를 더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후환은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유연한 사고와 태도가 나에게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