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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전쟁의 기적

항상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by 독자J

p.59~67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속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인 오월(吳越) 전쟁은 손자의 전쟁론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좋은 사례이다. 약소국이었던 월나라의 왕 구천은 오나라 왕 부차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죽음까지 내몰렸으나 부차를 진심으로 섬기기로 약속하고 목숨을 부지하여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뒤 월나라를 10년 만에 재건하고 오나라를 침공하여 태자를 죽이고 수도를 점령하여 오나라에게 당했던 치욕을 갚았다. 이렇게 강대국인 오나라가 약소국인 월나라에게 패배한 것은 두 나라가 1차 전쟁 이후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월(越) 왕 구천은 겨우 목숨을 부지한 후 자신의 과오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일련의 개혁들을 단행한다. 우선 문종과 범려라는 인재를 등용했고,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민생을 챙기고 경제력을 안정시키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10년 만에 세금을 거두지 않고, 백성들은 3년 치 식량을 비축할 수 있을 정도로 국가 경제력이 튼튼해졌다. 한편으로 오나라에 대해서는 자신의 복수심을 숨긴 채 철저하고 일관된 복종을 연기하는 가운데 부차의 참모인 오자서와 백비를 이간질하고, 백비에게 뇌물 공세도 적극적으로 하면서 부차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이에 따라 오나라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교만해져 월나라의 성장을 무시했고, 왕 부차는 사치와 향락과 잦은 패권 다툼으로 국력을 소진했으며, 능력은 있었지만 야심가에 사리사욕이 강한 백비라는 인물을 계속 주요 자리에 등용하는 실수를 범했다. 월나라는 오나라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 백비를 적극 이용했다. 또한 부차는 자신의 패권사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전령들을 모두 죽여 월나라가 수도를 점령하고 태자를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은폐했다. 한편, 월나라는 오나라의 전쟁 전 엄한 상벌 제도와 군령을 실시하고, 군사 훈련을 크게 강화하는 한편,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나라와의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전쟁에 국민들을 지나치게 동원하지 않았으며, 후방 지역에서의 생산 활동을 독려했다.


이와 같은 복합적 요인들로 인해 약소국이었던 월나라는 자신보다 훨씬 갇힌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는 월나라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오나라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한쪽은 도(道)를 지켰지만, 다른 쪽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월나라는 재건 후에도 백성들에게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 반면 오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이 외에도 손자가 「계(計)」 편에서 언급한 상대방을 속이는 원리인 궤도(詭道), 철저한 계산과 분석을 바탕으로 한 충분한 사전 준비도 월나라가 오나라를 이기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듯,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능력(道)이 가장 중요하며, 백비의 사례를 통해 어떤 사람을 쓰느냐가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부차가 백비의 인성을 간파하고 그를 내쳤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하고 타인의 마음을 얻을 줄 알아야 한다. 언젠가 셀트리온의 회장 서정진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도 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을 봤다. 인생이 알 수 없고 복잡한 이유는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때문이고, 그 사람들이 알 수 없고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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