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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모 Aug 29. 2023

우리 집으로 와

“때르르릉”

전화가 울리고 엄마는 대뜸 나를 부른다.

엄마 아빠한테 영어로 전화할 사람이 없으니, 나한테 오는 전화라고 금방 결론이 난 모양이다.

97년 여름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잠시 통성명을 하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벨기에 남자한테서 온 전화인데, 가만있어봐 지금 10월이니 마주친 지 세 달은 족히 지났다.


-    잘 지냈어요?

-    네, 그쪽도? 지금 어디예요?

-    지금 호주 출장 와 있어요. 내년 2월에 한국출장 가는데 만나요. *월 *일 *시에 시청역  6번 출구에서 볼까요?


아 이 사람 참 신기하네. 잠깐 지나치듯 만난 것도 그렇지만, 무슨 약속을 네 달 전에 잡나? 네 달 안에  사람일에 무슨 변수가 있을 줄 알고? 어쨌거나 날짜와 시간을 보아하니 나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이 다니는 길이다.

-    아…. 그래요. 그럼 퇴근시간즈음 되니까 그때 거기서 봐요.


여름에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15분만 같이 커피 마시자고 해서 잠깐 얘기했었는데, 얼굴은 그다지 확실히 기억이 안 난다. 웃는 모습이 아주 선하고 어질게 보여 인상이 좋았던 것은 확실하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에, 냅킨에다가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그리고는 자기가 벨기에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자기 지갑에 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예쁜 여자 아이 둘이 있는데 금발머리에 웃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자기는 이 년여 전에 이혼을 했는데 해외 출장이 너무 많아 양육권을 뺏길 뻔했으나, 다시 부모님 네로 들어가서 같이 살면서 출장 중에도 부모님이 아이들을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을 해서 반반 양육권을 지켜냈다고, 너무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고 싶다고 했다. 수원 가는 출퇴근용 급행지하철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통성명 후 집 전화번호를 교환한 게 전부다. 이때는 핸드폰도 없고 이메일 주소도 없었다.


새내기 외신기자 수습생의 삶은 신기하고 피곤하다. 오늘은 두 날개 시누크 헬기를 타고 DMZ와 용산을 20분 만에 날아다니며 미국 국방장관 수행 취재를 하고, 내일은 땡볕에 길고 긴 줄을 기다리며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 인터뷰를 따 내느라 열일하고 있다. 국내뉴스와는 완전히 다르게, 대통령 이외의 한국 정치인들은 국제뉴스에서 웬만해서는 커버하지 않는다. 오늘 만난 사람은 십중팔구 다시는 못 만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꾸 나왔던 사람이 다시 나오면 News가 아니다.


어느덧 2월이 되어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이 사람이 약속을 잊어버렸을 수도, 다른 출장 스케줄에 변수가 생겼을 수도 있으나, 사무실에서 좀 기다렸다가 시간 맞춰서 약속장소 앞으로 지나가 주는 정도의 노력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시청역 6번 출구를 내려가는데 가슴이 조금 쿵쾅거리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사람을 만날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이 사람이 과연 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데 대한 설렘인지는 잘 모르겠다. 층계를 다 내려왔을 때 한 서양사람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기억난다 이 얼굴.


시청 근처 일식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근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지난 7개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람은 출장 다니면서 하는 일 얘기, 두 딸들과 농장의 부모님 얘기. 나는 최근에 있었던 취재 뒷얘기, 그리운 오빠 얘기,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들 얘기. 소소한 얘기를 환하게 웃으며 들어주고는 가끔 전화를 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한 달 정도 후, 전화가 왔다. 세 달 있다가 한국에 가니 만나자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2년을 멀리 살면서 펜팔 하는 친구처럼 지냈다.  전화해서 안부 묻고 몇 달 후 만나자 약속하고, 만나서 저녁 먹고 헤어지는 것이 일 년에 두세 번. 만나서 또는 통화상으로 대화거리로는, 이전에는 소개팅 얘기를 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맞선으로 들어와 만난 남자들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 남자는 이건 좋은데 저건 뭐 좀 별로, 저 남자는 이러쿵저러쿵 등등의 얘기를 하면 기분 좋게 들어주는 좋은 친구였다.


사실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게 고등학교 때 밖에 없었는 데다, 그때도 새끼손가락 잡아 본 게 다여서 연애를 몰랐다. 사람을 보면 장점먼저, 게다가 장점'' 크게 보는 나로서는 심히 판단이 어려웠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만난 소개팅과 선본 남자들하고는 왜 더 오래 만나지 않았는가를 생각하면 지금도 혼자 웃는다.


연애경험 전무로 밀당의 개념도 없고, 왜 여자가 과녁이 되어 남자가 화살을 쏘아주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내가 좋으면 내가 용감하게 화살을 쏘리라 하는 주체적 사고방식을 너무 솔직히 실행에 옮겨 “참 멋지시네요. 우리 진지하게 만나 볼까요?” 하면, 분위기 새 하면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 대책 없는 여인으로부터 휭 하니 도망을 갔다.


1999년 초에 우리 고모가 아는 분을 통해서 수원에 있는 큰 교회 부목사님을 소개했다. 수요예배 끝나고 차를 가지고 우리 집에 나를 데리러 와서, 같이 저녁 먹고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이제 세 달 정도 만났는데, 참 좋은 사람인 것 같고, 목소리도 좋고 (아주 중요함), 딱히 싫은 점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이 사람이 남자로 좋은 것인지, 그냥 사람으로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엄마에게 조언을 구해 본다.


-    엄마, 이 목사님이 도통 사람으로 좋은 것인지, 남자로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어. 확 덮쳐볼까?  

-    (활짝 웃으며) 에이~ 소문날라 ㅋㅋㅋ!!!

순진하기 그지없는 친구 같은 우리 모녀. 결국 나는 덮쳐보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마음을 그대로 둔 채 계속 이 목사님을 만나고 있었다.


 1999년 8월에 이 사람에게 전화가 왔을 때 이전에 하던 대로 최근 소식 업데이트를 하다가, 세 달 전에 선 본 목사님과 결혼을 해야 할까 보다 하고 얘기를 했더니, 전화가 끊겼는지 아주 조용하다.

-    여보세요? Hello?

한 5초 지나도록 소리가 없어 아무래도 끊겼나 싶어 끊으려고 하는데,

-    I’m coming.

온다고? 언제, 어떻게? ……  왜??


몇 달 전에 미리 잡히는 출장 스케줄은 어떻게 조정을 하고 온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열흘 뒤 이 사람이 진짜로 한국에 왔다. 항상 만나던 그 자리에 와 있다.

-    그 사람이랑 결혼하지 마. 나랑 결혼해.


이 사람을 한 번도 남자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참 좋은 아빠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더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좋은 친구였던, 그리고 멀리 살아서 더 안전하게 느껴졌던 이 사람이 갑자기 심각하게 훅 치고 들어오는데, 이제껏 생각해 보지 않은 미래의 그림을 그려 보자니 쉬운 그림은 아니다. 나는 이제 만 스물다섯인데, 이 사람은 서른아홉에 애가 둘이나 딸린 이혼남이다.  


-    모르겠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    벨기에에 2주 정도 휴가내서 한번 와봐. 우리 집에 와서 부모님도 보고, 애들도 보고.

당황한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이 사람은 벨기에로 돌아갔다.


한 달 후 9월에 나는 벨기에를 방문했다.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새로운 기기를 내놓았던 삼성핸드폰의 전 세계 배포용 영문기술자료 홍보물을 제작하는 홍보회사에 Account manger로 일하고 있었는데, 보통 3일 휴가인 회사에 2주의 휴가를 내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승낙을 해 주었다.


바로 옆동네도 아니고, 현장실사를 하려면 시간을 가지고 해야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혼상대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단칼에 내 인생을 반쪽 내지 않으려면 혹시나 모를 만의 하나의 위험스러운 시나리오도 배재하면 안 된다. 해외 출장이 많은 사람인데, 수많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름 모를 여인들에게 대시를 하는 Playboy일 수도 있지 않나?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브뤼셀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토요일 밤 열한 시 정도였고, 짐을 찾아 도착장을 나오니 이 사람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그날밤 고속도로에서 나와 Braine-le-compte 시집 농장에 가는 길의 오렌지색 가로등빛을 잊을 수가 없다. 항상 도시에서 자란 나는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았던가 놀라웠고,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아파트가 전혀 안 보이는 것도 신기하다. 이번주는 딸들이 전 부인인 애들 엄마네 가 있었고 일요일이 내일 저녁에 집에 온다고 한다. 부모님 내외가 1층에 살고, 2층은 막내 동생 내외와 조카딸 둘이 살고, 첫째 아들인 이 사람은 8살, 6살 두 딸들과 3층에 산다는 얘기들을 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자기는 애들 방에서 지낼 테니 편하게 지내라고 자기 방에 내 짐을 갖다 놓는다. 긴 여행에 피곤했지만, 약간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하게 누워 있었다.


무슨 소리지?

톱질도 아니고, 뭔가 확 뜯는 소리인데 동시 다발적이고, 가끔 개 짖는 소리도 난다. 눈을 떠 보니 천정에 붙어있는 지붕 창문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거실에서 내다보니 멀리는 지평선까지 닿을 듯한 평평한 녹지. 소들이 이 초장 한가운데 있는 집 앞까지 와서 풀을 뜯어먹고 있다. 우리도 아침 먹자며 간단히 빵과 커피로 조식을 마치고,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1층으로 내려갔다.


이사람의 부모님은 완전 만화 플란더스의 개에 나올 것 같은 인자한 부부다. 이 사람은 불어를 하시는 부모님과 영어를 하는 나 사이에 통역을 했고, 한국사람이고 2주간 휴가를 내어 벨기에에 왔다는 얘기를 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대 환영의 웃음을 선사하시면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소개했는지도 알리가 없고. 아침에 농장을 둘러보고 부모님과 점심을 같이 먹고나서 우리는 차를 가지고 근처의 숲에서 산책을 했다.


그전에도 이 사람이 왜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는 간단히 들었다. 이 사람은 다국적기업의 해외영업을 맡고 있어 출장이 많았는데, 전 아내가 이 사람 친구랑 바람이 났다. 이혼 과정이 아주 힘들었고, 그래서 더 일을 많이 했다고 자신이 워커홀릭임을 고백한다.


저녁에 두 딸들이 왔다. 전 부인과 지금 동거하는 사람이 함께 타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전 부인과 동거하는 사람은 이혼을 초래한 바람난 친구 이후의 연인이란다. 내가 앞으로 여기서 산다고 하면, 전부인, 동거남, 아 이 사람들이랑 계속 일주일에 한 번은 이렇게 마주치고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 싶으니, 왠지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아이들은 자기 엄마에게 잘 가라고 인사인 볼뽀뽀를 하고 활짝 웃으며 이 사람한테 와서 안긴다. 불어로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첫딸 셀린이 온 우주의 따뜻한 빛은 다 뿜어내는 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웃으며 다가와 볼뽀뽀를 하고 안아준다. 둘째 딸 주스틴은 경계심이 서린 무서워하는 표정으로 와서는 볼뽀뽀는 하고 얼른 떨어져 가방을 내려놓는다.


저녁에 이사람은 내일 학교 갈 준비를 위해 알림장을 꼼꼼히 챙기고 아이들하고 불어로 뭐라고 얘기하고 숙제를 확인한다. 다음날 아침 애들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이 사람이 다 싸서 가방에 넣는다.

진짜 좋은 아빠가 맞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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