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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모 Aug 04. 2023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 사람

오늘저녁은  CNN에 한국뉴스 위성송신이 없어 YTN까지 뛰어가지 않아도 된다. 여유롭게 퇴근하는 중 14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서양남자 하나가 서 있다. 1층 버튼을 누르려고 봤더니, 이미 불이 들어와 있다. 가벼운 예의정도로 미소를 지어주고 뒤 돌아 문쪽으로 얼굴을 향하는데 이 사람이 말을 건다.


-    Hi~

-    Hi.

-    Will you go out in this pouring rain?

-    It’s OK. I have an umbrella.


나는 전쟁준비가 되었다는 듯 방어무기인 우산을 들어 보여주었고, 이에 내게 인상 좋게 웃는 이 아저씨는 어째 영어가 미국산도 영국산도 아닌 듯싶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지나가는 생각도 잠시, 어느새 1층에 다 내려와 문이 열린다.  앞쪽에 있는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와 로비를 걸어 출구를 향한다.


-    Excuse me?

-    Yes?

-    Would you like a cup of coffee?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 사람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석한다. 키는 172센티, 몸무게는....... 무거워 보인다. 연 갈색 머리에 정수리 부분이 숱이 이미 많이 빠진 것으로 보아 40대? 차림새는 슈트인데, 정장소매 끝에 나온 하얀 셔츠를 보아 하니 이 한 여름에 긴팔 셔츠를 갖추어 입고 있다.

           

‘일단, 길에서 말 거는 젊은 몰몬교 선교사는 아니고, 또 위험한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    I have a long way to go home.

-    Just 15 minutes over there will do. Would you?

        

로비 한 편의 커피숍을 가리킨다. 시청역에서 수원 가는 급행지하철을 타야 하니 시계를 한번 확인한다.


물음표가 내 앞에 던져질 때, 나는 거의 Yes라고 대답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대하여 의사표시를 했을 때, 그것이 나에게 큰 문제가 없다면 OK라는 뜻이다. 새로운 일은 일단 해보고 본다. 내가 그 일에 부적합이라고 판명되면 두 번째는 안 부를 테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를 발견하기 전 까지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같이 보이는데, 지나치게 첫인상이 좋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나? 이런 사람이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바람둥이일지도 모르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젊은 여성의 방어기제를 발동시키지 않고, 전 세계 어디를 가던 이렇게 가볍게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하여, 현지에서 즐길 여자를 유혹하기 딱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증거는 없다.

        

모르겠을 땐 일단 Yes.

-    OK. 15 minutes will be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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