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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모 Aug 29. 2023

나의 선택

큰딸 셀린은 구김살이 전혀 없이 밝고 착하고, 둘째 쥬스틴은 어딘가 모르게 경계심이 많다. 큰딸은 자신의 엄마 아빠가 같이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둘째의 경우는 아이가 너무 어렸을 때 이혼을 했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함께 생활했던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이 태어났기 때문에 이혼하게 되었다고 죄책감을 느낄 정도여서 아동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이혼 이후에 남자친구를 몇 번 바꾼 전 부인과 다르게, 여자 친구가 없는 아빠를 보며 “아빠는 어떤 스타일에 여자가 좋아?, 저기 저런 여자가 좋아 아님 이쪽에 있는 여자가 좋아?”라고 아이들이 물어본다 하길래 이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


갑자기 ‘아, 둘째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간에 헤어지게 된 이유야 어쨌건, 이혼을 하고도 아이들을 책임지는 부모가 장해 보였고, 따로지만 엄마 아빠의 사랑을 계속 받으면서 지내는 아이들이라 다행이었다. 아이들한테는 엄마가 있으니, 해도 안 되는 엄마 역할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아이들의 믿을 수 있는 어른친구 정도로 지내면서 시간을 준다면 좋겠다는 자신감이 솟았다.  


토요일에는 두 딸들과 함께 브뤼셀 Atomium도 가고 바로 옆에 미니 유럽이라는 유럽 각 나라의 대표 명소를 미니어처로 만든 놀이공원에도 다녀왔다. 일요일 저녁에 아이들을 전 부인집에 데려다주고 월요일 아침 우리는 파리로 여행을 갔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샹젤리제, 에펠탑, 까르티에 라땅, 루브르 박물관을 모두 걸어 다녔는데  내 생전에 하루 도보량이 제일 많았던 3박 4일이었다.


파리에서 벨기에 집으로 돌아와서 3일 지내면서 집 근처의 성과 명소들을 둘러보고 이 사람이 좋아하는 승마를 하러 갔다. 이 사람은 어릴 때 승마를 꽤 오래 했는데, 왼쪽 종아리뼈 수술을 받아 지금은 승마를 못하니, 나보고 타보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고삐를 잡아 주고 승마장 안을 두 바퀴 돌았는데, 이제는 나더러 잡으라고 고삐를 건넨다. 겁도 없이 받아서 들긴 했는데 말이 착해서인지 아무것도 안 해도 자동시운전을 잘한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이 입으로 무슨 소리를 내니 말이 조금 빠르게 간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트롯 (trotter)이라고 하는 것으로, 걷기 (marcher)와 달리기 (galloper) 사이의 단계란다.


고삐를 좀 더 타이트하게 잡으라고 하더니 또 무슨 명령을 내린다. 갑자기 말이 달리기 시작한다. 순간 정신이 번쩍 나는데 속도감이 시원하고 말과 내가 하나가 되어 한 리듬을 타는 게 참 묘하게 신났다. 무엇보다 내가 말에서 떨어질까 걱정스러웠던 것인지, 아님 내가 이 사람 눈에 유독 이쁘게 보였던 것인 것인지, 말 타러 가자고 해놓고, 정작 자기는 안 타고 말 타는 나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이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음날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벨기에 북쪽의 브뤼헤에 다녀왔다. 고풍스러운 중세 운하 도시에 햇볕 가득한 날씨까지 더해 참 아름다웠다. 골목골목 거닐고, 운하를 지르는 배를 타면서 어느새 우리 둘은 손을 꼭 잡고 있다.  


휴가 받은 2주는 쏜살같이 지나가고 이틀 후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내가 있었던 2주 동안 이 사람도 휴가를 냈다. 얼마 되지 않아 이 사람은 중동으로 출장을 떠난다. 내게 아무런 연고가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외국땅에서, 출장 많은 이 사람만을 보고 여기 와서 살 수 있을까. 자신의 부재로 이혼의 소지를 제공했다고 자책하는 이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면 안 되는데. 쉬운 결정은 아니다.


한국에 돌아와 부모님과 한 달간 매일 저녁 토론의 시간을 갖었다. 아빠는 무조건 딸을 믿는다고 했지만, 엄마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오빠도 천국 가고 없는데, 나마저 너무 먼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게다가 잘 키웠다고 자부하는 딸을 아이가 둘 딸린 이혼남에게 보내는 것을 반가워할 리 없었다. 일부러 겪으려고 하지 않아도 결혼생활에 어려움이 많은데, 미리 눈에 훤히 보이는 몸과 마음의 고생은 제발 피해기를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리라.


매일 엄마는 새로운 반대 의견을 내놓았고, 아빠는 묵묵히 듣고 있었고, 나는 이러 저런 이유로 극복할 수 있다는 대답을 했다. 변호사 변론시험 보듯, 논리 정연한 우리 엄마는 하나하나 반대의 내용과 이유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하지만 가 진심으로 충분히 대답을 했을 때, 여느 부모님들이 내놓을 카드가 떨어지면 한 번은 내놓을법한 “하여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돼”라고는 다행히 말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의 새로운 반대소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토론의 나날들을 지내고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아?

-    응. 나는 그저 그런 새 바이올린보다, 중고지만 소리 좋은 스트라디바리우스 가 더 좋아.

-    그 사람이 너한테 스트라디바리우스 야?

-    네, 참 좋은 사람이에요.

-    .................(10초의 침묵)............. 그래 그럼. 행복하게 잘 살아.

엄마랑 나는 그날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펑펑 울었다.    


다음날, 이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드디어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고, 1월 안에 벨기에로 가겠다고 했다. 회사에는 본 출간건을 마치고 12월 말 부로 사직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날 저녁, 미지의 삶으로의 선택이 맞는 것이라고 응원하는 듯, 아주 오래간 만에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어릴때 유난히 경계심이 많던 남편의 둘째 쥬스틴, 2주후 첫아이 출산을 앞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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