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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국을 떴다.

by 캐나다 부자엄마

서른, 한국을 떠났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을 기억한다. 난 캐나다로 도망을 친 건가? 아니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캐나다까지 온 건지 모르겠다. 나이 마흔이 되면 인생의 정답을 어느 정도 알거라 믿었다. 아니 모르겠다. 사실 정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정해진 답이 없으면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답이 없다고 망한 인생은 아니니까.


영어는 못했다. 사실 지금도 영어 to부정사니 동명사니는 모른다. 중학교 때 영어선생님이 빨간 뿔테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너 절대 미국은 가지 마라. 넌 안 되겠다. 맞다. 그래서 미국이 아닌 캐나다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 말덕분에.


안 되는 영어로 없는 돈으로 캐나다에서 살아남으려 무던히도 용을 썼다. 살아남자, 버티자. 여기서 꼭 성공하자. 혼자 구시렁거렸다. 사실 한국으로 되돌아갈 비행기표가 없었다. 목표는 단순할수록 좋다. 돈이 없었고 비행기표 살 돈이 없었고 그래서 캐나다에 남기로 했다.


이왕 남는 거면 잘 살아보자 맘을 먹었다. 삐딱하게 앉은 자세를 고쳐 앉듯 안되면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을 몇 번이고 고쳐 앉았다. 아니 잘 될 거야 잘 돼야지 내가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캐나다에 산지 이제 16년 아니 17년이 되어간다. 영어 문법은 몰라도 누가 새치기를 하면 나 지금 줄 서있으니까 뒤로 가서 서요.라고 영어로 말할 수는 있다. 영어로 말하고 쓰고 읽고 전화받아서 돈을 번다. 집도 하나 샀고 아이도 낳았다. 이 정도면 그래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일까? 난 평생 목표가 집이었잖아. 집을 두 번이나 샀잖아. 아니 집이 목표가 되면 안 되는 것 같아. 돈이 목표가 되면 소중한 걸 잃게 되더라. 난 집보다 소중한 게 많으니까.


시도했다. 접시만 닦고 내 영어는 구려서 아무도 못 알아듣고 킥킥 비웃어도 해 봤잖아. 캐나다 와서 취직하고 돈 모으고 여기서 사는 캐나디안처럼 나도 걔네가 하는 거 다 해보려고 했잖아. 그게 벌써 시간이 십 년 넘게 흐른 거야.


난 한국에서 이방인이었어. 가난하다는 게 10평 조금 넘는 영구임대에서 산다는 게 생김새가 비슷하고 한국말을 쓰는데도 무리에 낄 수가 없더라. 안 끼워줘. 내가 분당에 살았거든. 아빠가 망하고 용인으로 이사를 갔지. 분당 사는 애가 나보고 소똥 냄새난다고 경운기 타고 왔냐고 비아냥 거리더라. 거지새끼라고.


가끔 난 킁킁거리고 내 냄새를 맡아. 정말 소똥냄새 같은 게 날까 하고 누가 그러던데 가난에는 냄새가 난다고 아니 그건 땀냄새야. 내가 알바를 하루에 3탕 4탕 뛸 때 냄새가 났거든. 수건 덜 마른. 장마의 비릿한 냄새.


후회는 없어. 캐나다에 오지 않았다면 한국에 남았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한국이 더 좋고 캐나다가 더 좋고 비교도 하지 않아. 내가 선택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면 돼. 캐나다는 내 선택이었으니까.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하며 살겠다고.


서른, 한국을 떠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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