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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바로가 Oct 28. 2024

오교정 시인의 "넙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희망고문일까?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희망일까?


그(녀)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계속 살아봐야 알 일이다.

지금은 "화장실 가는 횟수 허락받는 비정규직"이다.

항상 "죽은 듯" 낮추고 낮춰서 "바닥에 붙어 지내야 한다.

"경계를 넘지 못해 덜컥" 눈물만 짓는 그(녀)가 원하는 정규직이 될 날까지

그 주변에는 어느 하나 살얼음이다.

비정규직중에 자신이 튀어 미리 상사에게 찍히는 일이 없어야 하며

상사에게 괜히 말대꾸하거나 싹싹하게 굴지 않아

딱딱한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웃는 얼굴, 깔끔한 모습, 정돈된 자리, 완벽한 일처리로

상사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눈은 하회탈 눈처럼 혹은 넙치 눈처럼

시선의 방향이 길쭉해지면서 동그랗게 변한다.

길쭉해지는 것은 시야의 범위를 넓혀

혹시 자신이 놓친 것이 있을까 염려함이다.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생겼을 때 잘 대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비록 길쭉하고 동그란 눈은 아래로 깔려있다.

흥미로운 것은 넙치는 그 눈으로 먹이 활동을 하려는 찰나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약간이라도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 넙치처럼, 자신에게 기회가 생길때,

그(녀)의 존재는 저 너머에 존재하는 높은 꿈을 향해 달려가려 한다.

그렇게 그 심해에서 빛도 들어오지 않지만 봄이면 바뀌는 조류의 흐름에

기대하면서 내년 봄을 기다리는 넙치처럼,

그(녀)는 비정규직 일자리의 계약이 정규직 일자리로 안정화되길 바라며

걱정으로 하루를 허비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내일을 위해

오늘 하루의 일분일초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뮤지컬 체어(musical chair)라고 했던가? 음악이 나오는 동안 움직였다가 음악이 멈추면 빨리 의자에 앉아야 하는 놀이가 있다. 이 놀이에서 매 놀이마다 의자가 하나씩 빠져나간다. 마치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규직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과 닮아 있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에 항상 위를 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포장해야 한다. 자신이 자신이기 보다는 남들이 원하는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점에서 넙치 눈의 쏠림과 연결될 만한 범죄 심리 프로파일러의 말에 따르자면 창의적인 우뇌를 사용하는 눈은 왼쪽눈이라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넙치의 눈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넙치로 표현된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자기가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의 먹이는 물고기이기 때눈에 삶의 방향은 언제나 위쪽을 향할 수밖애 없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가 탄로날 까 숨을 쉬는 기본 활동조차 어려운 넙치에게 생활관련활동이 어렵고 오로지 먹이가 산란하는 시기에만 도약을 할 수 있다. 이런 겹쳐보이는 설정으로 넙치와 비정규직 종사자가 관련지어 있다.

  그래서 과연 먹이가 풍부해질 수 있는 시기인 가을 철과 인사평가로 자신의 위치가 결정되는 시기의 갭을 살아남는 것은 희망고문인지 새로운 희망이 될지는 기다린 자의 복이 될 것이다.


참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 길은 멀고 사회구조에 의해 설정된 것이나 삶을 살아가야하기에 참고 버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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