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현대시조에 출품한 작품중 하나인 시입니다. 박병윤 시인은 서구의 에코 페미니즘을 한국의 남자시인이 썼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그것은 한의 정서와 은유의 상징성으로 나타납니다. 한의 정서는 우리나라 사람이나 누구나 잘 아는 정서입니다. 은유의 상징성은 박 시인이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고단하고 박복한 삶을 구체화하지 않고 오히려 상추에 빗대어 고도의 은유로 "백혈"이라는 단어로 여성의 희생을 드러냅니다. 순수한 희생,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희생.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뱉어낸 희생. 그 희생의 순결함은 상추를 '똑'하고 땄을 때 흰 물(백혈)이 나오는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식물이라서 울음보를 터뜨리지 못하고 그냥 그 흰 물을 '뚝뚝' 떨어뜨릴 뿐이지요.
행과 연 단위로 시를 분석해보면 그 강렬함이 마지막 연까지 계속됩니다. 첫 연의 1-2행에서 보쌈당하듯이 시집 온 "내"라는 주체가 "당신"이라는 결혼배우자에게 상추처럼 젊어서 단물 쓴물 다 빼내줍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나니 남는 것 뼈대밖에 없었는데 3행에서 주체가 바뀌면서 글이 긴장감이 생깁니다. "내"였던 주체는 새 파란 내 몸뚱이를 맥없이 잘려지는 피조물이 된다. 이 순간 사람이었던 "내"는 상추로 변한다.
2연에서는 상추가 된 "내"는 그 동안 가난하게 살아온 집안에 유일한 푸성귀로서 집안에 봉사해온 자신을 표현한다. 상추가 무성한 밭에 난 키가 큰 상추처럼 자신이 집안식구들의 그늘도 되어 주기도 한다. 또한 "내"는 상추 자신의 차가운 성질로 몸을 쓰는 일로 힘든 가족들에게 몸을 식혀주는 마법같은 일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의 순수한 희생을 먹고 자란 "내" 가족들은 상추가 흰 물을 뚝뚝 흘리는 것처럼, 그녀가 마음 속으로 힘들게 살아온 것이 툭 터져 서럽게 "내"를 휘감아 오지만 울음을 삼킵니다.
뚝! 뚝! 뚝!
절대로 서러워도 절대로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는 울음!
그 순결한 속울음은 "내" 가족을 위한 상추의 희생으로 표현되었지만, "내"의 한평생의 희생을 닮아 3연을 한 줄 씩 표현함으로써 독자의 마음에 더 강폎하게 파고 들어옵니다.
한편 이 면에는 "상추보쌈"이라는 제목이 가진 저항성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누군가 상추를 따거나 찢어서 "뚝뚝" 흘리는 수동적인 하얀 액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흘리는 상추의 피입니다. 그래서 피는 비록 하얗지만 마치 유치환의 깃발에 나온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붉디 붉은 피보다 더 붉은 어머니의 한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얀 피가 의미가 더 있는 것은 상추가 다른 음식물에 쌓여지는 것에 저항하고 오히려 자신이 다른 음식물을 싸서 새로운 맛을 제공하는데 있습니다. 그냥 따로 먹으면 밋밋할 수 있는 그 상추쌈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 기막힌 맛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상추쌈이란 단어 대신 "상추보쌈"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내" 자신의 보쌈당해온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능동적이고, 모든 것과 철저하게 싸워왔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피가 양성모음으로 구성된 "똑똑똑"이나 음성모음으로 이루어진 "뚝뚝뚝"이 아닌, 느낌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뚝! 뚝! 뚝!"을 사용함으로서 음성모음으로도 강한 저항성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음성모음이 주는 둔탁함과 수동성을 파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내"는 비록 상춧대만 남아 비리비리 하지만 한평생 '꼿꼿하게' 살아온 인생장인인 것입니다. 보쌈으로 가부장적 사회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으나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장인으로 살아낸 "내"는 힘든 세파와 편견에 꺾이지 않고 강인하게 삶을 이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