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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금평 Oct 24. 2021

재수 없다는 말은 부처님도 못 당한다

인도인의 가정에는 마음의 정화는 물론 건강과 복과 재운을 가져다줄 다양한 신들이 모셔져 있다. 불상은 지적인 면모를 더해서 그런지 불교도는 물론 힌두교도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힌두교에서 부처님을 비슈누(우주의 유지 관리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힌두교 3대 신)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리라.

    

불상은 인도 사람들의 외국인 대상 선물 목록 중 가장 보편화된 품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교신자 여부를 떠나 불상을 선물로 받고자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들의 집에는 십자가나 성모상이 모셔져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인데 반해 왜 불교신자들의 집에는 부처상이 없을까? 집에 불상 모시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외국을 떠도느라 절에 갈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평소 불상과 마주하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납득이 잘 안 되는 일이었다.           


인도에서 수십 년째 명상학교를 운영하고 계시는 붓다 빨라 스님께 우리나라 불교신자들 집에 불상이 없는 이유를 여쭈었다. 토착화된 민중불교를 무력화시키는 방편으로 조선 초기 유림들이 “집에 불상을 두면 재수가 없어진다”는 말을 퍼뜨린 데서 연유했다고 알려주셨다. 옛날에도 ‘재수 다’는 말의 힘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나 보다. ‘재물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있을 운수’가 ‘없어진다’는 말에는 주술적인, 미신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서 웬만해서는 당해내기가 어렵다. 욕이 아니면서도 어떤 부정적인 말보다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불교를 백성들로부터 밀어내는데 유림들은 정말 신통한 가짜 뉴스를 창작한 셈이다.


석가모니는 열반에 들면서 제자들에게 “나의 육신이 아니라 내가 설한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自燈明 法燈明)”했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상을 만드는 것은 불제자들에게 있어 스승의 유지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석가모니 열반 후 제자들은 한동안 연꽃이나 발자국 등으로 스승을 기억하고 연상했다. 조선시대 유림이 석가모니 형상에 대고 복을 비는 중생들에게 따끔하게 석가모니의 본래 가르침을 되새겨 준 셈이다. 어쨌든 인도에서는 재수가 좋던 불상이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재수가 없어졌다.  

    

인도 근무하는 동한 인도 정부 관계자나 자매 중고등학교 교장, 친구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불상이 적지 않다. 인도를 방문하는 한국 손님들에게 가끔 내가 받은 불상을 선물로 권해보곤 했는데 다들 머뭇거리기 일쑤여서 사무실이나 집에 모셔진 불상의 숫자는 점차 늘어만 갔다. 나는 재수가 좋아지더라며 굳이 손님들을 설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귀임을 앞두고 짐을 줄이는 과정에서 불상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사람들이 반기지도 않는 선물을 하기 위해 국내로 모셔갈 수도, 인도인들에게 다시 되돌려 줄 수도,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폐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심전심이었는지 불자 후배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왔다. 자기가 불상 인수자들을 물색해볼 터이니 혹시 불상 있으면 다 모셔오라고.


아...... 드디어 500년 묵은 가짜 뉴스가 점차 퇴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요! 단언컨대 집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재수 좋은’ 일입니다! 불상의 고향에서 살다온 제가 보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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