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래 Mar 31. 2023

온 세상이 노랑 마을, 분홍 마을


출근길이다. 퇴근할 땐 10분 걸리는 길이지만 출근할 땐 길이 밀려서 30분 정도 걸린다. 길이 밀리면 조바심이 나고 지루하다. 신호등이 왜 그리 많은 지 조금 가다 빨간불에 또 걸린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차에 그냥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핸드폰을 꺼냈다. 작가님 새 글을 읽어본다. 한 편을 다 읽을 때까지 앞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앞차가 출발하는지 띠웅~ 소리가 다. 화면에

'전방 차량이 출발하였습니다.'

가 표시되어 얼른 출발한다. 다행이다. 뒤차가 클락션을 울리기 전에 출발할 수 있어서.

또 빨간불이다. 차가 길게 늘어서다 보니 정차하는 시간도 길다. 핸드폰으로 글 하나를 또 읽는다. 도착할 때까지 글 몇 편을 읽다 보니 차가 막혀도 지루하지 않았다. 가끔 앞차를 놓쳐서 사이가 벌어지면 쏜살같이 따라가 앞차 뒤에 선다.


며칠 운전하며 글을 읽어보았다. 운전하며 핸드폰 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지. 운전하며 핸드폰을 보지 말자고 마음먹고 오늘은 창밖 풍경을 살폈다. 극동 방송을 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출발하였다.


아파트 건너편 삼거리에 멈추었는데 앞에 보이는 산이 노랑 마을이다. 개나리가 이렇게 많았던가. 도로 옆 길도 노랗다. 온 세상이 노랗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병아리처럼 뿅뿅뿅 걸어서 따라온다. 무채색 산과 길거리가 노랑으로 물드니 활기를 찾았다.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웠구나.


요즘 온 마을이 노랑과 분홍이다. 피기를 고대하던 아파트 벚꽃이 드디어 꽃망울을 터뜨려 주었다. 아파트가 분홍 마을이 되었다. 아파트 벚꽃은 이제 나이가 스물세 살이 되어 제법 크다. 그늘진 곳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양지는 제법 꽃이 많이 피었다. 우리 동네는 가로수도 벚나무다. 벚꽃 길이 길게 이어져서 벚꽃이 피면 온 마을이 분홍이다. 길 따라 늘어선 벚나무 길을 걸어가면 연분홍 꽃비가 내리기도 한다. 꽃비가 가끔 머리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떼어서 후 불어 본다. 아이들은 꽃비를 잡으려고 뛰어다닌다. 그 모습에 보는 사람도 즐겁다. 아직 활짝 피지 않았지만 꽃구경 할만하다.


작년 이맘때 허리가 조금 안 좋으신 친정엄마가 지팡이를 집고 내가 엄마 팔잡아 부축하며 아파트 벚꽃 길에서 꽃구경하던 일이 생각난다. 사진도 찍어 드리고 걸으며 옛날이야기도 하였다.

"벚꽃은 경포대 내려가는 길이 젤로 이쁜데~"

"이모네 집에서 이모와 경포대까지 걸어갔었어. 경포 호수도 한 바퀴 돌고 왔는데~"

"그땐 이모도 나도 참 젊었었는데~. 이모가 왜 그리 빨리 갔는지 모르겠어."


이모는 친정엄마 동생으로 폐가 나빠져서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성격도 좋고 늘 쾌활한 분이셨는데 음식점을 하다 보니 가스 때문인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런 이모를 늘 그리워하셨다. 벚꽃을 보니 이모 생각이 더 나셨던 것 같다.



작년 봄 엄마와 걷던 아파트 벚꽃 길을 걸어본다. 꽃은 아름다운데 마음은 그리움에 젖는다. 이제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셨지만 친정엄마와의 좋은 추억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꺼내볼 수 있다. 이제 추억 한 조각씩 꺼내보며 엄마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영원한 것은 없다. 누구든 헤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벚꽃도 영원하지 않다. 얼마동안은 예쁘지만 곧 떨어지고 초록잎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래 인생이 그렇지 뭐.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것. 자연에게 맡기고 우린 순응해야지.


아파트를 돌다가 엄마와 앉아 쉬던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하늘 어디에선가 환한 미소로 내려다보시며

"미래야, 올해도 벚꽃이 참 곱구나!"

그러시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헤드라잇에 첫 글을 올렸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