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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29. 2022

비움의 행복

옷 정리, 마음 정리

 가끔 이유 없이 마음이 꿀꿀할 때가 있다. 별 이유 없이 그럴 때도 있지만 대개는 걱정되는 일이 있을 때인 것 같다. 아니면 어떤 결정을 했는데 맘에 들지 않을 때다. 의욕도 없고 식욕도 없다. 마음을 비울 때가 된 거다.


 오늘은 모처럼 주말에 일이 있어서 둥이(쌍둥이 손자)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늘어지는 것 같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가 싫다. 그냥 누워서 TV 시청이나 할까 하다가 안 되겠다 싶었다. 얼른 기운 차리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일어났다. 먼저 구피 밥을 주려고 어항 근처로 갔다. 구피가 처음에는 어항 근처에 사람이 가면 밥 주는 줄 알고 물 위로 모여들었는데 요즘 사람이 가까이 가면 풀 속으로 자꾸 숨는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둥이가 장난이 발동하여 어항을 주먹으로 꽝꽝 친 이후로는 사람을 피하는 것 같다. 구피도 자기를 예뻐하는지 해치려는지를 아는 게 너무 신기하다. 요즘 내가 어항 근처에 가서

 “구피야 밥 먹자.”

 하며 혀를 차며 소리 내기를 반복하며 말을 걸어 주었더니 요즘은 경계심을 풀고 조금씩 모여들었다. 다행이다.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고 뭘 할까 생각해 보았다. 먼저 겨울에 덥던 이불을 빨고, 그다음에는 옷 정리를 하기로 했다. 침대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세탁되는 동안에 옷 정리를 하였다. 옷장에는 봄옷과 겨울옷, 여름옷이 섞여 있었다. 봄옷과 겨울옷 중에서 세탁소에 맡겨야 할 옷, 빨아야 할 옷 등을 구별하였다. 이미 세탁한 옷은 보관하는 옷장으로 이동하고 아직 꺼내지 않은 여름옷과 바꾸어 걸었다. 1년 동안 입지 않은 옷은 과감하게 교회 아나바다에 가져가려고 한쪽으로 정리하였더니 안 입은 옷이 꽤 많았다. 그리고 퇴직하면 안 입게 될 딱 맞는 정장 등도 내놓았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꽉 찼던 옷장에 여유가 생겼다. 옷장의 여유만큼 내 마음도 밝아졌다. 마음이 시원하다. 진작 버릴 걸 후회하며 그래도 이제라도 정리해서 좋다.      


 세탁된 이불은 건조기에 넣어 건조시키고 다른 이불을 세탁기에 넣었다. 오늘 이런 과정을 여러 번 해야 할 것 같다. 아침에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안 좋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큰아들이 장가갈 때 집을 구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아파트를 계약한 거다. 지금은 걸어서 다닐 수 있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많이 불편할 것 같아 이사를 권유했었다. 집을 내놓았는데 출산할 때까지 안 나가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그랬던 것 같다. 남편과 기도하며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후에 며느리가 전화해서 집을 계약하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사 날짜가 출산이 가까운 때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의논하려고 연락드렸다고 한다. 얼른 계약하라고 했다. 임자가 있을 때 계약해야 지 안 그러면 언제 계약이 성사될지 모르는 일이다. 출산한 후에 조리원에 있을 거니까 우리가 알아서 이사하고 정리도 다 해 준다고 했다. 너무 감사했다. 이제 이사 갈 좋은 집도 빨리 구해지길 기도한다.     



 점심에 오랜만에 골뱅이 비빔국수를 해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이다. 비빔냉면이 생각날 때 집에서 간단히 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요즘은 마트에 가면 비빔장이 있어서 만들기가 아주 쉽다. 국수를 삶아 찬물에 여러 번 치대어 씻은 후 오이, 당근, 상추 등 야채와 골뱅이를 먹기 좋게 자른 후 비빔장과 매실청, 레몬즙, 약간의 고춧가루를 넣으면 정말 맛있는 골뱅이 비빔국수가 된다. 물론 마지막에 통깨를 솔솔 부리는 것도 잊지 말아야 더 맛있다.    


 점심을 먹고 내친김에 베란다 화분도 정리하기로 했다. 내가 화분을 좋아해서 베란다에 화분이 너무 많다. 평소에는 화분을 보면 뿌듯하였는데 마음이 답답해서인지 화분이 너무 많아 답답하게 느껴졌다. 줄이고 싶었다. 같은 단지에 사는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집 화분 좀 가져가라고 했다. 고모부와 함께 와서 화분 몇 개를 골라갔다. 베란다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 좋았다. 왠지 가슴도 뻥 뚫리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물건에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비우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다. 


 오늘 집도 정리하고 마음까지 비우니 날아갈 것 같다. 주말마다 조금씩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여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20년을 넘게 살은 집이라 정리가 더 안 된 것 같다. 늘 보이는 곳만 정리하여 거실과 주방은 늘 깨끗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몇 주 후에 우리 집이 펜션처럼 슬림해 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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