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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 Apr 10. 2024

할머니는 제사를 없애라고 하셨다

우리 친가에서는 예전부터 제사를 많이 지냈다. 외가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에 제사와 관련된 것들은 친가에서 배웠다. 그런데 크면서 보니 우리 집이 꽤 제사를 자주 지내는 편이었다. 명절 때만 지내는 것이 아니고 기일을 챙기다 보면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은 모이게 되는 것이다.


할머니는 증조할머니를 모시면서 시집살이를 호되게 하셨다고 들었다. 증조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셨기에 거의 희미하다. 그런데도 증조할머니는 조금은 엄한 표정으로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들어보면 증조할머님은 시집살이를 하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 할머니에게는 엄하셨다.


시집살이라는 것은 우리 시어머님도 말씀하셨던 것이고 나이대가 있는 분들께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경험이다. 출가외인이라 결혼하면 부모님과 원래 가족과는 교류가 정말 적어졌다니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된다. 상상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런데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같은 여자라 삶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텐데도 왜 그렇게 힘들게 한 걸까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유교문화란 뭐길래 가족 간에 소통이 그렇게 안 된 걸까. 우리 집도 엄마가 처음 결혼하셨을 때는 명절에 남자들과 여자들 상을 따로 차려서 따로 밥을 먹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남녀 같이 먹었는데 어른들의 생각이 현대화(?)되었을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공간도 부족해졌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보면 남편이나 집안 어른들과는 소통이 안 되고 그나마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게 며느리밖에 없었던 걸까 싶기는 하다. 편하다고 막 대해도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할머니는 때마다 제사도 성실하게 모셨다. 증조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고조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 모셨다고 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할머니는 계속 제사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을 해오신 것 같다. 시집살이를 하던 힘든 시절을 몸소 겪으면서 이것을 며느리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목소리를 내며 주장하지는 못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어느 날 며느리들이 있는 앞에서 진지하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제사를 없애라고. 내가 떠나고 나면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유언처럼 남기셨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사를 자주 지내다 보니 집안 어른들끼리 점점 간소하게 지내기로 하신 것 같다. 나중에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까지만 모시게 되었고 음식 가짓수도 조금은 줄인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간소화가 아니라 아예 없애라고 하신 것이다. 며느리들은 내심 기뻐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도 처음에는 그러자고 하셨다고 한다. 사실 집안에 기독교, 불교, 천주교 신자들이 다 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는 것에 한 번씩은 논란 아닌 논란이 오갔었다. 굳이 제사를 지내기보다 기독교식, 천주교식으로 하자는 말도 나왔다. 이 부분도 나에게는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제사를 계속 해온 건 종교를 이긴 전통문화 계승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는 와중에 종교 갈등(?)을 서로 이해해 나가는 과정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도 제사를 없애자는 건 파격 제안인데 받아들이시나 했는데 점점 흐지부지되었다. 역시 제사를 없애면 안 된다고 하셨다. 아마 가족들이 만날 기회가 필요하다고도 하셨고 조상님을 모시는 제사만큼은 필요하다고도 하셨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는 대신 명절에는 꼭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면 안 되냐는 이야기도 나왔었지만 제사는 결국 유지되었다.


이토록 강력한 전통문화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든다. 제사의 의미는 좋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기념하고 함께 애도하며 음식을 나누는 것.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명절은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없애자고 하실 정도로 예전부터 우리네 어머니들을 아프고 힘들게 한 것도 사실이다. 이 정도면 본래 의미가 퇴색될 정도가 아닐까.


아마 제사 자체보다는 오만가지 음식과 제사 과정을 여자들이 다 완벽히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에, 그걸 당연시하는 서러움이 있기에 더 힘든 것 아닐까 싶다. 당연시한다는 것은 고맙다는 말 하나 듣기 어렵고 조금이라도 잘 못되면 비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 집은 남자들도 설거지는 같이 하고 상차림이나 정리를 같이 하긴 했지만 뭔가 ‘여자의 일이지만 도와준다’는 식인 것도 같다. 원래 같이 하는 걸로 하고 조금은 즐겁게 행사처럼 하면 안 되었던 걸까.    


나의 남편의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지금도 제사를 챙기러 가신다. 한국인에게 제사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남녀 내외를 왜 이럴 때 하는 걸까. 나에겐 아직도 흥미롭고도 마음 아픈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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