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다쳐서 느릿느릿 걸을 수밖에 없던 시간 동안 새롭게 보인 것들이 많다. 이전에 잘 걸을 수 있을 때는 튼튼한 두 다리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 어릴 때 이후로 정말 걷고 뛰는 것은 당연히 여겼고 국내에서, 해외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아왔다.
그런데 다친 지 몇 개월이 지나도 절뚝절뚝 걸을 수밖에 없었다. 회복이 더딘 것 같아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치고 맨 처음 들른 동네 병원에서는 회복까지 2주 정도 걸린다는 진단서를 받았는데 실제 회복까지 그 몇 배의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재활운동을 배우면서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아픔을 참고 정말 단순한 동작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보던 순간들. 아이처럼 걷기부터 다시 배웠다. 처음에는 발가락 까딱하기부터 시작했다. 쉬워야 하는데 다 어려웠다. 발목 돌리기도 어려운데 발목에 좋다는 까치발 들기는 거의 고난도 동작에 해당했다.
동네 마트조차 힘겹게 다녀오던 시간들이었다. 매번 배달을 시키기에는 부담이 되었고 바깥 산책도 나가고 싶었다. 대부분은 남편이나 누가 같이 있어야 걸을 때 도와주고 안심이 되기는 했다.
그래도 느려도 혼자 걷는 연습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사실 언덕길이 많은 동네라 한 번씩 짧은 거리나마 큰맘 먹고 혼자 다녀온 것에 가깝다. 언덕이나 계단은 아직 정말 느릿느릿 가야 했고 힘이 들었기에 중간에 놀이터 벤치나 정자를 발견하면 쉬어가야만 했다.
그리고 제일 하이라이트는 너무 빨리 끝나는 횡단보도. 매일 다니던 같은 길이 맞는지 끝없어 보이는 하얀 선들... 원래는 달리기로 짧은 시간에 건너곤 하던 길인데 너무나 길어 보였다. 파란 불이 켜진 동안 다 건널 자신이 없어 그냥 차례를 보내기를 여러 번 했다. 열심히 다리를 움직여 걸어보았지만 매번 힘에 부쳤다. 파란 불이 처음 시작한 때부터 깜박깜박해질 때까지 시간을 온전히 다 써도 길 건너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게 느껴졌다.
아.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옆을 보면 할머님들이 있었다. 열심히 길을 건너시는 할머니들과 같은 속도로 걷는 나였다. 다른 사람들이 저 멀리 앞서 걷고 뛰어갈 때 나와 할머니들은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걸어갔다. 골골한 청년이 된 나는 서글프면서도 같이 걷는 사람이 있는 느낌에 왠지 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을 다친 후 회복하는 동안 여러 번 겪었다.
사실 직업 때문에 예전부터 노인의 건강에 대해서, 신체적 특성에 대해서 배워왔다. 하지만 내가 다친 후에 어르신들의 느린 생활에 대해 조금은 실감하게 된 것 같다.
느려도 동네 산책은 하고 싶은 내 마음과 같겠지? 선선한 바람도 쐬고 동네 구경도 하고 나면 답답했던 날도 마음이 풀린다. 조금 느리다고 못 걷는 것은 아니니까.
그 후로는 길에서 어르신들의 천천히 걷는 걸음이 눈에 잘 들어온다. 왠지 모르게 느릿느릿 꾸준히 걷는 그 걸음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