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21세기 시선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는 조선시대와 요리를 다룬 폭군의 셰프다. 이미 팬들의 인정을 받은 만화가 원작이고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스토리가 더 빛난다. 시대적 배경은 당파가 극심했던 조선 연산군 장녹수 시대이고, 미래에서 온 셰프의 시선으로 풀어낸 로코 요리 드라마다. 주제 자체가 입체적이고 흥미 진진하다.
놀라운 것은 500년 후의 유명 셰프가 타임슬립으로 도착해서 겪어 나가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간 관계가,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적인 요소를 배재할 수는 없지만,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는 어쩔 수 없나보다. 5세기 전 사람인 셰익스피어의 스토리텔링이 지금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니까.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2600년 전 투퀴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서문이다.
" 나의 저술은 당대의 독자들에게 일시적인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기기 위해 쓴 것이다.
역사에 낭만적 요소가 없어서 듣기에는 덜 매혹적일 수 있으나, 나는 그것이 과거의 사건을 분명히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인간 본성이 그러한 만큼 앞으로도 반복될 사건을 대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하다면 만족할 것이다. 이것은 순간의 경연용 작품이 아니라, 후세를 위한 영원한 소유물이다.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의 전쟁과 갈등은 형태만 조금 달라질 뿐 반복된다. 그렇기에 내가 쓴 기록은 후세가 미래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by 투퀴디데스
"My work is not a piece of writing designed to meet the taste of an immediate public, but was done to last forever. It may well be that the lack of a romantic element in my history will make it less attractive to the ear; but it will be enough for me if it is judged useful by those who will want to have a clear understanding of the events which happened in the past and which (human nature being what it is) will, at some time or other and in much the same ways, be repeated in the future. It is composed as a possession for all time and not as a prize composition to be heard for the moment." Thucydides,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Book I, 22)
처음에 이 서문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2600년 전이나 500년 전이나 2025년 지금이나, 인간의 찌질한 본성은 변하지 않고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구절을 읽고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인간 진화의 본질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의 지적인 진화는 인간 본성을 변화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지식을 갖춘 지적인 진화와 인간 본성의 도덕적인 진화가 전혀 별개의 것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우주 기지를 만들고 AI를 만들어 다룰 정도의 최고 지식을 갖춘 인간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아직까지 찌질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멋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아직도 인간의 본성에 변화가 없다면, 그럼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뭘 한 것일까.
찌질하고 이기적이고 못된 본성인 원죄라는 것을 탕감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윤회를 수없이 거듭하고 있는데, 아직도 아무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인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전세계의 수많은 예언가들이,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고 가리키고 있는 2025년이 벌써 9월에 접어들었다. 나는 오늘도 어떻게든 나의 원죄에서 벗어나 보려고 아둥바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그럴 것이다.
바램이 있다면, 2600년 전 투퀴디데스의 서문이, 더이상은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셰익스피어 글 속의 쓰레기같은 인간 군상의 스토리들이 더이상은 우리들의 얘기가 아닌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타임슬립으로 과거에 가게 되더라도, 2025년 이후를 사는 미래 후손들은 당당히 인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피와 눈물로 희생의 역사를 써 오신 수많은 인류의 선조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듬뿍 담아 멋진 결과를 보여드리고 싶다.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