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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by 도토리


하루 종일 아홉 살 아이에게 쏟아 대는 잔소리가 수백 가지쯤 될 줄 알았다.
근데 세어 보니 딱 열 가지였다.

즉, 그 열 가지만 안 하면 나는 평화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열 가지를 하루에 스무 번씩 한다는 거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는 빨래통에 넣어두기 (자매품_겉 옷은 소파 위가 아니라 옷걸이에 걸어놓기)

양말 동글동글하게 벗지 않기

화장실에서 손 씻을 때는 팔꿈치까지 소매 걷기 (손 씻을 때마다 소매 다 젖어서 오지 않기)

양치할 때 책 보지 않기 (자매품_ 응가하러 가서 책 한 권 다 읽을 때까지 앉아있지 않기)

학교에서 점심 먹고 양치하기

잔소리하기 전에 스스로 양치 챙기기

아침에 일어나서 이부자리 정리하기

학교에서 물 좀 챙겨 마시기 (아침에 가져간 텀블러 그대로 가지고 오지 않기. 가방 무거우니 남은 물은 버리기)

젓가락질할 때 길이 맞춰서 하기 (숟가락으로만 밥 먹지 않기)

아침에 준비할 때 시계 보면서 움직이기 (뻐꾸기시계처럼 엄마가 몇 분 남았다 말하게 하지 않기



우리 집엔 ‘아기 공주’가 산다. (실제 애칭이다. 듣기엔 귀엽지만, 이 호칭이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공주는 옷을 아무 데나 벗어두고, 이불은 매일 추상화처럼 재창조하며, 젓가락질은 여전히 도전 과제다.

등굣길엔 시계 따윈 쳐다보지도 않는다.


"10분 남았다, 5분 남았다, 3분 남았다!"
혼자 시한폭탄 옆에서 카운트다운하는 건 늘 엄마다.


스무 살 때 기숙사에서 충격적인 룸메이트를 본 적이 있다.
인기도 많고 정말 예뻤던 친구가, 늘 속옷까지 허물처럼 벗어놓고 다녔다.

옷장은 우주 먼지 구름이 떠다니고, 침대는 전쟁터가 다름없었다. 도대체 이 여인과 결혼할 럭키남은 누구인지, 새삼 궁금해졌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도 아닌 내가, 그때 ‘와… 정말 세상은 넓구나’를 깨달았다.


그런데 내 딸이 그렇다. 스무 살 룸메가 내 뱃속에서 태어난 듯, 복붙 수준으로 그렇다.


아침에 학교 가고 나면 소파 위엔 내복이 누워 있고, 건조기 속엔 알 수 없는 구 형태의 양말이 굴러다닌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팔꿈치까지 젖어서 나오고, 새 학기가 시작할 때 가져간 3월의 칫솔은 10월 말일이 되어도 빳빳한 형태를 유지한다.

화장실에 한 번 들어가면 들고 간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남편도 한번 화캉스를 떠나면 함흥차사인데, 딸도 그렇다. 양쪽 화장실에 번갈아대며 소리를 질러대는 건 늘 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나를 피해서 화장실로 바캉스를 떠나는 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누가 입에 물을 부어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탈수 상태로 산다. 아침에 넣어준 텀블러의 무게가 저녁에도 그대로일 때, 나는 마치 ‘타임루프에 갇힌 물병’을 보는 기분이 든다.

주인 잘 못 만나 하루 종일 배부를 불쌍한 저 텀블러. 온종일 연가시 수준으로 물을 마셔대는 엄마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다.


먹는 건 또 왜 저리 무심한지. 밥은 귀찮고 간식엔 진심이다. 밥에도 진심, 간식에도 진심인 엄마는 자꾸만 세상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는데, 빼빼 마른 아기 공주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젤리만 씹어댄다.


젓가락질은 아직 장르물이고, 황해의 하정우는 저리 가라 싶을 정도로 숟가락으로 나물을 퍼먹는다.
이쯤 되면 밥상을 차린 나는 구경꾼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 세상 엄마들의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모든 엄마가 한 번씩은 꼭 해 본다는 마성의 그 말!


“너 이러다 나중에 엄마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언제까지 엄마가 다 해 줘!”

그런데 그녀는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엄마가 왜 없어? 나 결혼 안 하고 평생 같이 살 건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눈앞이 아득해진다.

나는 반드시 저놈을 사람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야한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외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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