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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Apr 29. 2024

정취와 정동

감정의 큰 줄기인 정취와 정동

[1정취[情趣: feeling)

정취 실마리

정취의 뜻과 이름

필자는 각 의식의 체류처에 따라 정취를 생리적 정취인 [정후(情候)] • 심리적 정취인 [정서(情緖)] • 윤리적 정취인 [정의(情義)] • 성리적 정취인 [정견(情虔)]으로 구분했는데 각각의 정취에 관해 초들겠다.  

   

의미 반응 계열의 감정인 정념은 뒤에서 고찰하겠지만 정념은 생체에게 주는 동기적 특성 때문에 의식 단계에 따라서 각각 뚜렷한 특징을 발휘한다. 


이에 비해서 정취는 이를 촉발하는 의식이 어느 발전 단계에 있거나 외적 자극이 주는 생체에의 영향이 단순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끌어 낸 개념에 의해서 이를 구별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우리가 감지하는 바로는 거의 대동소이해서 개념 구분이 한갓 이론적 유희로 보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래서 필자는 필요한 경우에 대비하고자 생리적 정취를 [정후(情候)], 심리적 정취를 [정서(情緖)]*, 그리고 도덕적 정취를 [정의(情義)], 성리적 정취를 [정건(情虔)]이라고 구별하여 부르려고 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번거로울 때에는 단지 정취라는 한마디로 통칭하려 한다. 아마도 이편이 사용하기에도, 이해하기에도 편리한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앞에서 이미 초든 바와 같이 [정서(情緖)]는 학계에서 얼마 전부터 필자가 [정념(情念 emotion]이라고 부르려 하는 개념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일반인들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지만, 필자는 이를 받아드리지 않고 feeling의 뜻으로, 특히 위에서 적었다시피 정취[情趣]에서의 심리적 정취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하려 한다.      

정취의 특징 

칸트의 순수이성(純粹理性)이 경험이 섞여들지 않은 선험적[초월적] 이성이듯이 [순수심상(純粹心象)]은 의지의 개념적 성격이 전혀 섞여들지 않은 오롯한 심상이다. 

[정서와 예술] 예술이 추구하는 미감은 이러한 순수심상의 직관이 주는 만족[쾌감])이다.

미 = 순수 심상이 감성을 만족시키는 상태 =정서미 

이에 견주어 세속미인 정념미(情念美)는 순수 심상이 아니라 의지에 미치는 심상의 감정적 쾌감이다. 


●본능적인 긍효로움에 관계되는 감각 ⸺후각 미각 촉각⸺ 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미적인 대상의 상상만으로 정념적 미를 재구성하고 창조해 내는 활동을 필자는 [미예(美藝): 대중 예술] (정신의 구조: 이상에서 전재)이라고 부르려 한다. [미예(美藝)]는 그래도 아직은 감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취가 아니라 의식[개념]이나 의지에 바탕을 두고 있는 [미예]도 있는데 추리 소설이나 탐정소설 에로틱 예술들이 이러한 예술들이다.      

정취는 정동의 혼탁에서 벗어나 있는 청징(淸澄)한 감정이다. 

[철학개론/ 쇼펜하우어 제 38장 252쪽 이하 인용]     


맑다는 것은 의지의 적극적 활동인 욕망, 곧 식욕ㆍ성욕ㆍ명예욕ㆍ소유욕으로 물든 정동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욕망은 대체로 비도덕성에 물들어 있는데 견주어 정취는 욕망과는 떨어져 있어 깨끗하게 느껴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정취에 관계되는 감각은 순수히 대상을 관조하여 얻는 쾌적한 감성적 대상에 관한 감각으로써 미적(美的)인 감각인데 견주어 오감 가운데 생리적 욕망과 가장 깊은 관계를 지닌 촉각ㆍ미각ㆍ후각 등에 바탕을 둔 감각은 정취를 일으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바꿔 말해 정취미의 수용에 가장 적합한 감각은 시각과 청각이다. 


�직접적으로 시각과 청각[순수 이성의 감각?]이다. 시각에 의해 정취를 일으키는 예술 표현의 대표적인 장르는 미술이고, 그 밖에 서예와 사진 등이 있다. 청각에 의해 정취를 일으키는 예술 표현의 대표적인 장르는 음악이다.

�간접적으로 시각과 청각 한 가지나 두 가지 전부를 자극하는 예술에 의식을 동원해 시각적 정황과 청각적 정황으로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문학 연극 무용 등이 있다.     


다만 긍효를 비롯한 어떠한 사물이라도 예술의 소재일 수 있다. 곧 예술에 쓰이는 [소재]와 예술을 완상할 때 일어나는 반응으로서의 감정인 정취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예술]이란 정취를 일으킬 수 있는 감각인 시각과 청각 등 순수 이성적 감각에만 의지해 순수하게 대상의 상상만으로 정취적 아름다움을 재구성하고 창조해 내는 활동이다.   

   

정취적 대상의 표상은 아름답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특성을 갖춘 정서는 말고 깨끗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정갈한 미감을 준다.

이렇게 바뀌는 과정은 머지않아 생리학적, 생리 화학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학적 생리적 변환의 과학적 ┈바꿔 말하면 현상의 객관적, 경험적 파악┈ 과정일 뿐 생명체의 주관에 입각한 진정한 해명이 될 수 없다.      


의식 체류에 따른 정취

정후[情候생리적 정취

생리기적 감정에 속하는 정취, 곧 [정후(情候)]는 의지에 의해서 동기화된 욕망에 따라서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에 대한 생체의 반응에 의해서 곧바로 촉발되기 때문에 감각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정취가 신체적 촉발이라는 점에서 생리기적 정념과도 비슷하므로 [감각]ㆍ[정후]ㆍ[정초](情楚) 등 이 3가지 현상은 혼동되기 쉽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객체적 현상을 포착해서 촉발된 감각과 이 감각으로부터 감촉되어 일어나는 주관적 정후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의미에 따라서 엄밀히 구분하면 감각의 대상인 객체의 성질과, 감각의 결괴인 주관적 내용으로서의 정초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외기(外氣)의 온도에 대한 감각과 정초의 차이를 고려해 보자. 외기 온도에 대한 측정치 0℃라는 성질은 그 기준을 어디에 두었거나 간에 다만 객체에 관한 한 상태이고 감각은 이 상태를 감지한다. 그런데 0℃의 감각은 감각 주체인 생체의 상태에 따라서 “차다”거나 “미지근하다”, 또는 “시원하다”………등의 주관적 느낌을 줄 것이다. 이 느낌이 바로 정후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정후와 감각을 같은 것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감각을, 객체의 상태를 주체의 참여 없이 수동적으로 감촉하는 것만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0℃의 감득만을 감각으로 여기고 이에 대한 각자의 생체적 감득 내용은 감각과 분리하여 정후로 본다. 


아마도 온도에 지극히 예민하고도 냉정한 판단자라면 그 온도가 0℃라도 자기에게는 때에 따라 좀 차게, 또는 오싹하게 느껴진다는 주관적 정도의 차이를 충분히 구별함으로써 감각과 정후가 같은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정후와 정초는 또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앞의 예를 다시 사용한다면 외계의 상태에 관한 객관적 감각인 0℃가 아니라, 외계의 기온에 관한 주관적 감촉을 정세에 관한 의미 의식이 끼어들 틈이 없이 “차다”거나 “미지근하다” “오싹하다” 등과 같이 느끼는 정후에 견주어 정초는 이러한 외계의 상태가 주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로까지 심각하게 의식되므로서 유발되는 감정이다. 


곧 “오싹하다”는 느낌은 만약에 감기 환자라면 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만한 온도일 것이므로 그에게는 [정후]가 아니라 [정초]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감각[객체적 감각]과 정후[생리적 정취]와 정초를 구별할 수 있다. 대상이 감관에 주는 자극인 감각은 개체의 감관에 의해 수용되는 의식이기 때문에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개체의 주관이 대상의 성질을 임의로 독특하게 의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생리적 정취인 정후는 정초보다는 덜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상쾌하다.”는 감정은, 그것이, 추진하던 일이 여의치 않아 앙분되어 있던 긴장이 뜻밖에 해결되었을 때 촉발되는 긴장으로부터의 해방감으로서의 “상쾌함”이라면 정초이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들에 나가 신선한 대기를 접촉했을 때 감관에 닿는 단순한 기온의 느낌인 “상쾌함”이라면 이 기분은 정후이다.     


정서(情緖심리적 정취

심리적 정취인 정서(情緖 feeling)에 이르러서는 이 개념이 생리적 정취인 정후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같은 심리적 반응 계열인 심리적 정동인 정념과는 그 느낌과 의미에 있어서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정도로 차이가 뚜렷하다. 


앞에서도 예로 들어본 여름 하늘에 흘러가는 한가로운 흰 구름은 우리의 존망에 대해서나 자기를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들어내 보이려는 의지 ┈곧〘제시 본성〙┈ 에 대해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침이 없는 것으로 의식되기 때문에 그 고요함과 평화로운 느낌은 [정념]이 아니라 [정서(feeling)]임이 분명하다.  

    

천둥 번개와 함께 앞이 캄캄하도록 쏟아지는 폭우는 이 때문에 논밭이 떠내려가 버리거나 집이 물에 잠기는 등 생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걱정되는 농부에게는 정념[emotion]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지만 이 폭우에 피해를 입을 것도, 또는 자신과 관계된 어떤 사태를 유리하게 발전시키는 것도 아닐 것으로, 즉 유의미한 정세를 야기시키는 것임을 의식하지 않고 단순한 정세의 관조로만 의식하는 한, 역시 장엄하다거나 시원함 등의 순수{단순} 감정─곧 정서─을 촉발시킬 뿐 정념과는 무관하다. 


이처럼 전개되는 정세를, 의지의 관점에서의 유의미성에 따라 의식함이 없이 오직 순수한 느낌 그 자체의 의식만으로 형성시키는 정취적 분위기에는 예컨대 고졸(古拙) · 고아(高雅) · 골계(滑稽) · 그윽함 · 단아(端雅) · 몽환(夢幻) · 발랄(潑剌) · 비장(悲壯) · 비창(悲愴) · 소박(素朴) · 소쇄(瀟灑) · 쇠미(衰微) · 소슬(蕭瑟) · 숭고(崇高) · 수수함 · 쓸쓸함 · 신비(神祕) · 애절(哀絶) · 우수(憂愁) · 우아(優雅) · 웅장(雄壯) · 웅혼(雄渾) · 유현(幽玄) · 잔잔함 · 장려(壯麗) · 장엄(莊嚴) · 장중(莊重) · 장쾌(壯快) · 정적(靜寂) · 적막(寂寞) · 조촐함 · 찬연(燦然) · 창연(蒼然) · 청순(淸純) · 청아(淸雅) · 풍자(諷刺) · 해학(諧謔) · 현란(絢爛) · 화려(華麗) · 화사(華奢) · 화창(和暢) · 호쾌(爽快)……등등 수많은 형태가 있다.  

   

윤리적 정취인 정의(情義)

사전적 의미로서의 [정의(情義)]는 인정과 의리이다. 그러나 필자가 윤리적 정취에 붙인 이름으로서의 정의(情義)는 의식의 체류 단계로서의 〘윤리계〙에 해당하는 정취를 가리킨다. 우리가 흔히 [양심의 가책]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도덕적 정념인 [정륜(情倫)]에 속하는 반응으로 필자는 양심에 관계될 때에는〘양정(良情)〙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도덕적 정취인 정의(情義)는 가책과 같은 의지적 감정이 아니라 순수한 분위기의 정세를 접할 때 그 분위기 속에 내포되어 있는 도덕적 기품을 간취하고 느끼는 순수한 기분으로 준엄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 긍정적 정의(情義)

떳떳함{호연(浩然)}     


 부정적 정의(情義)

자기의 도덕성의 긍정과 부정에 관해 자기 자신이 느끼는 감정. 부끄러움. 뉘우침{후회}.

자기의 행위의 타당성과 부당성에 관한 감정. 바끄러움{미안함}. 회한.  

   

성리적(性理的)* 정취인 정건(情虔)

*성리(性理): 여기에서의 성리는 송나라 때의 유학적 이론에 따른 성리학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다만 필자의 의식의 발전 단계인 〘성리역(性理域)〙에 속하는 감정인 정조(情調)에 해당하는 정취를 가리키는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필자가 성리적 정취에 붙인 이름으로서의 정의(情義)는 의식의 체류 단계로서의 성리기에 해당하는 정취를 가리킨다. 이들 정의에는 다음과 같은 감정들이 딸려 있다. 아래의 감정들은 전형적인 정건이다.

경건하다

신비롭다

성스럽다. 

엄숙하다

숭고하다.

거룩하다. 

                        

[3정동(情動: emotion)

정동 실마리

①〘의식 체류처에 따른 정동의 이름

필자는 정취와 함께 감정의 2가지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며 생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감정인 정동은 이미 앞 장에서 초든 바와 같이 각 의식 체류처에 따라 생리적 정동인 정초(情楚) • 심리적 정동인 정념(情念) • 윤리적 정동인 정륜(情倫) 성리적(性理的) 정동인 정조(情操)로 구분한다. 


특히 생물과 무생물에 미치는 감정의 한계는 정동(情動)까지이다. 곧 정동은 의지를 지닌 생물에게만 지향된다는 점에서 의식이 대상 일반에 미치는 정취와 다르다.     


정동은 사회생활, 특히 자기 제시 활동에서 많이 일어난다. 수용자는 제시자의 용재를 수용하면서 제시의 내용이 그의 수용 의도인 정세 파악ㆍ완상ㆍ탐구ㆍ학습 등에 어떠한 역할을 하며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관한 의식은 ―정황에 따라서 다소간 억제되거나 과장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수용자를 반응케 하고 반응에 의한 감정은 수용자의 겉에까지 나타나게 된다. 표정이란 이와 같은 감정이 특히 얼굴에 반영됨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감정은 얼굴뿐만이 아니라 그의 태도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언사를 포함한 여러 형태의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제시자는 수용자의 이 반응들을 파악하여 자기의 제시 결과가 수용자에게 어떻게 평가ㆍ반영되었는가를 인식하게 된다. 곧 그의 제시의 “결과”를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직접 교류〙인 경우를 가리키며 직류적〘간접 교류〙라면 제시자는 그의 제시 의도의 성과를 파악하는데 다소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며 또는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파악하게 되면 제시자에게도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제시 결과에 대한 반응이 나타날 것임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동의 구분과 특성                    

정감(情感)과 정애(情愛

정감과 정애의 구별

제시자와 수용자 쌍방에 다 같이 나타나는 이 심리적 반응이 바로 심리적 정동인 [정념(情念)]이다. 그리고 정념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제시 본성에 따르는〘용질〙의〘우열성〙에 관계되는 자존적 감정이다.


〘제시자〙나〘수용자〙는 그들의 용질을 서로 비교 평가하여 나타나는 결과 그 자체에 대해서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 자체에 대해 반응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상대방과의 비교 평가에 의해 밝혀지는 우열의 결과에 대한 [반응{감정}]과 함께 그러한 우열의 결과를 야기시킨 [대상]들 ┈여기에는 우열의 경쟁자인〘맞잡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포함된 [우리 편]┈ 에 대한 반응이 함께 유발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 두 가지 감정은 내용이 비슷하기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서 일상에서도 이를 잘 구별하지 않는데 이는 이들을 구별해 표현하는 용어가 없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가 있다. 정동을 꼼꼼히 관찰해 보면 반응자 자신의 내적 감정만이 아니라 결과를 일으킨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분명히 따로 발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자기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정감(情感)]이고 정감을 불러일으키게 한 대상에 관해 느끼는 감정이 [정애(情愛)]이다. 정애는 다시 자기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과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구별할 수도 있다.   

        

대상과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정동

예컨대 시누이와 올캐의 다툼/ 시어미와 며느리의 다툼 경기하는 선수들의 승패 뒤의 정감과 정애                    

정감과 정애는 비록 발현의 정도가 희미해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혼동될 수도 있지만 모든 정동, 곧 심리적 정동인 [정념(情念)]은 물론 생리적 정동 [정초(情楚)] 및 윤리적[도덕적] 정동인 정조(情操) 등에 다 갖춰져 있다.      


정감과 정애는 의식의 대상과 그 대상이 놓여있는 처지에 따라 여러 가지 상태를 낳는다. 

의식의 대상에는 제시 용재의 우열에 따르는 맞잡이에 따라, 또 방관 관계나 상관관계의 의지적 경쟁이나 적대성에 따라, 또 그 관계자들이 놓여있는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정감과 정애가 일어난다.   

  

[생리적 정동]인 정초(情楚

긍정적인 정초와 부정적인 정초

정초(情楚) 곧 생리적 정동은 생리적 의미 감정이다. 의미 감정이란 생명체의 존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세에 관한 반응이므로 정초는 존망에 관한 정세의 의식에 따라 생긴 정세의 판단으로 인한 의미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이다.      


따라서 존망에 긍효로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의식되는 [긍정적인 정초]와 반대로 존망에 반효로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의식되는 [부정적인 정초]로 구분할 수 있다.   

   

[긍정적인 정초]

[편안함] : 심신에 위험이 닥칠 걱정이 없어서 마음이 놓이는 정초 

[안전함] : 편안함과 비슷한 정초 

[쾌적함] : 편안함에 쾌락함까지 더해진 상태의 정초 

[시원함] : 거치적거리던 앞일의 맊힌 곳이 뜻대로 풀어지지 않아 답답하게 느껴지던 형편이 해결되어 일어나는 정후      


[부정적인 정초]

[두려움]: 무서움에 관한 막연한 예상의 정감적 정초. 

두려움과 무서움은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필자는 무서운 사물을 예상하고 느끼는 자기의 내적 감정을 두려움으로 본다. 


곧 무서움의 정감이고 무서움이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물 그 자체가 눈앞에 당장 나타나 존망이나 실패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대상에 대해 느끼는 정감이고 두려움이란 무서운 대상에 관한 정애로서의 정초라고 생각한다.   

   

[불안]: 자신의 몸과 마음의 안전성이나 안정성을 믿지 못해 생기는 부정적 정후. 

생존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생활에서 일어나는 불안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불안장애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을 통칭한다. 불안과 공포는 당면한 위험에 대한 경고 신호로써 정상적인 정서 반응이지만, 지나칠 경우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더 어렵게 하고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증상을 유발한다. 


불안으로 교감신경이 흥분되어 두통, 심장 박동 증가, 호흡수 증가, 위장관계 이상 증상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 불편감을 초래하고 불안이나 걱정, 혹은 신체 증상이 직장 생활, 대인관계, 학업과 같은 일상 활동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 불안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불안장애에는 다양한 진단이 포함되며, 각각 특징적인 정의와 진단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불안장애에 해당하는 질환으로는 공황장애(panic disorder), 광장공포증(agoraphobia),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 특정 공포증(specific phobia), 분리불안 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 등이 포함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불안장애 [anxiety disorder]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공황 공포증 등 비합리적 감정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공포, 근친상간에 대한 욕망과 공포가 내적 갈등을 유발하고, 이에 대한 경고의 신호로서 공포증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학습 이론에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포반응 행동을 보고 배우거나, 부모가 위험하다고 경고한 것이 학습되어 공포증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소공포증 [acrophobia]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아픔: 감각 

쓰라림: 감각 

배고픔:      


정초(情楚)의 정감┈ ()와 통(아픔)

생리적 정념이 육체적 존망에 관계되는 감정임은 이미 초든 바와 같다. 그런데 그것은 육체에 관한 것이지 육체에 [의한 것]은 아니다. 곧 육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육체가 주체인 것은 아니다. 다만 육체에 의한 것인 한 이에 포함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생리적 정념에는 당연히 육체에 직접적으로 육박해 오는 자극, 곧 감각을 통해서 지각되는 정념뿐만이 아니라 생리적 의식이 그러하듯이 육체적 존망에 관한 의식에 의해서 촉발되는 감정까지 포함된다. 열등감이나 치욕감, 명예심과 자부심 등에 관한 기쁨과 슬픔 등은 육체적 존망의 의식과는 무관한 심리적 정동이지만 공포(무서움과 두려움), 통증 등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육체적 존망을 예고하고 있는 생리적 정동이다. 


그것들은 분명히 육체적 존망에 대한 의식에서 촉발되기 때문이다. 

이 감정들 가운데 육체적 존망을 야기하는 대상에 관한 감정을 [생리적 정애]이라 부르며 대상에의 지향 없이 단지 육체적 존망 자체만을 의식하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생리적 정감]이라고 부른다. 생리적 의식에 직접적 의식과 간접적 의식이 있는 것과[ ← 3 : Ⅲ] 대응하여 생리적 정감에도 직접적 정감과 간접적 정감이 있다.      

직접적 정감은 육체에 의해 직접적으로 의식되는 감각적 정감을 가리킨다. 


쾌감은 생리적 정감의 긍정적 측면이고 아픔[통(痛)]은 그 부정적 측면이다. 쾌와 통은 우선 신체적인 감각으로서 주어진다. 곧 쾌ㆍ통(快ㆍ痛)은 직접적 생리적 의식에 의해 촉발되는 [결과적] 감정이다. 


그래서 쾌통을 의식하는 감관은 시각이나 청각 등의 간접적 고등 감각 기관이 아니라 자극이 육체에 근접하는 순간으로부터 이를 감지할 수 있는 후각ㆍ미각ㆍ촉각 등에 의한다. 본성적으로 쾌감은 생명체에게 육체적으로 [존(存: 생존함)]의 방향에 다가가고 있다는 의식에서, 통감(痛感)은 [망(亡: 사망함)]의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의식에서 촉발된다.


생리적 간접적 정초로서의정감

간접적 정감은 육체에 직접적으로서가 아니라 간접적 의식 ┈시각 · 청각 또는 신체에 육박해 오는 위기나 호기(好機)의 육감이 공간적 거리를 두고 촉발되는 감정이다.


자기 내적 감정인 정감과 대상에 관한 감정인 정애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분명히 그 의미와 느낌이 다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를 구별해서 사용할 낱말이 없어서 그 현상 자체까지도 혼동하기 쉽다. 생리적 정감과 정애가 특히 그러한데 쾌통의 직접적 정감이 정애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주 뚜렷하지만, 간접적 정감으로서의 [두려움과 무서움(공포: 恐怖)]은 정감인가 정애인가를 판별하기가 매우 어려운 바이다. 


왜냐면 육체적인 [망(亡)]의 의식에 의해 촉발되는 공포는 때로는 자기가 그러한 상황을 의식하기 때문에 스스로 촉발되는 내적 감정, 곧 정감으로 여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태를 일으킨 대상에 쏠리는 감정, 곧 정애를 가리키는 일임도 능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에 해당하는 우리의 낱말로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있는데 이 두 낱말도 정감과 정애의 두 의미를 거의 같은 정도로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다만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볼 때 무서움이 정애의 의미에 좀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을 뿐이다. 어찌 되었건 모두 그 정세와 대상이 육체적 망(亡)인 죽음을 의식하게 하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생리적 정념임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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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정동 정념은 다음 장에 윤리적 정동인 정조는 [3-2] [정조(情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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