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느닷없이 어떤 일이 떠올랐다.
수술하고 나서 3일인가 4일 만에 처음 일어난 날, 정말이지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피를 한 바가지 쏟았다. 욕실에서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나오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서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수술하고 고여있던 피가 흘러나온 거라고 했지만, 아픈 것을 피 흘리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무식한 사람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내가 큰 병이구나 하는 것을 받아들인 날이었던 것 같다.
항암치료를 할 때부터 다 끝난 후에도, 아마 지난 2월쯤까지 손가락 관절부터 관절마다 뼈가 아파서 앉았다 일어날 때 고장 난 구체 관절 인형처럼 하나씩 누가 뼈를 펴줘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일어날 때는 참 곤란했다. 뿌뜨뜩 깨질 것 같은데 한 번에 일어나야 했다. 동산에서 내려올 때는 정말이지 유리 관절이 된 듯 살살 내려왔다. 아침마다 온 관절이 아파 잠을 깼다. 절망감이 컸다. 아.. 나 이제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발도 붓고 피부도 예민해져서 운동화를 꺾어 신고 다녔다. 참 불량해 보였겠지.
언젠가부터 관절통이 사라졌다. 이제 요가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달리기도 하고 산에도 간다. 그 어느 때보다 잘 자고 어깨에 이십 년은 매달려 있던 피로가 사라졌다. ‘아무 데도 아프지 않고 컨디션이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십 년 만에 알게 되었다. 손발 끝이 조금씩 저리는 것은 잊고 살기로 했다. 없어지겠지.
오늘이 오기까지 가장 큰 역할은 한 것은 ‘정재 된 식생활과 될 대로 되라지’ 정신이다. 한 번도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 타인의 비뚤어진 감정이나 인생을 어떻게든 수정시키려 말도 안 되는 노력을 해왔고 나의 감정과 기운을 쏟았다. 누가 시켰냐고 묻는다면…. 참 공감력 떨어지고 싹수없는 질문이라고 쏘아붙일 것이다.
지난 일 년 내내 불안이 올라오든 말든 내 갈 길을 갔다. 매일 산에 오르고 재밌는 글 읽고 좋은 친구들 만나고, 까불며 다녔다. 그 와중에 좋은 인연들을 만났다. 나는 나를 위해 긍정적이다. 걱정은 하되 걱정에 매몰되지는 않으려 한다. 정말이지 빠짝 놀아도 하루가 아쉬운 때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퍼져 간다.
동산 하나 내려오면서 츠암 많이 느끼고 ‘깨닫는다’. 이것도 나의 캐릭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