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긴 연애 때, 검증도 제대로 안 된 내 계산 방식대로 정의 내린 후 그에게 애정 어린 엄포를 놓았던 말이다. 남편 나이는 내 나이보다 5살이 많은데 연애 당시 인터넷을 끄적여 남녀 평균 기대수명을 살펴보니 여자가 남자보다 평균 5살 정도를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슨, 내 남편은 평균이라는 수치를 놓고 봤을 때 나보다 5살 빨리 저세상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동갑도 아니고 5살의 나이 차이가 있으니 그가 10살은 더 힘내서 살아줘야 나와 비슷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참고로, 이 글을 쓰며 통계청 자료를 확인해 보니, 현재 기대수명 평균나이 83.6세로 남자는 80.6세이고 여자는 86.6세이다.)
혼자 있을 때 이런저런 상상하기 좋아하는 나는 그를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로 자연스레 약속하게 된 즈음부터 결혼 초까지 일어나지도 않은 우리의 생애 끝지점에 대해서도 종종 떠올렸다. 사실 생각해 보면 지금도 종종 떠올리는 건 마찬가지긴 한데 일단은 그가 나보다 더 오래 남겨지는 건 사실 왠지 모르게 안 내킨다.
"그를 혼자 둘 수 없었습니다. 벌 받겠습니다." 오래전 방영한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주인공의 대삿말처럼.
그가 떠난 후 그의 뒤를 따라가는 상상도 해봤다. 어느 날은 그 상상의 끝이 휴지 몇 장 꺼내 붉어진 눈시울을 틀어막는 용도로 써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내가 드라마를 너무 봤네 하며 절레절레 웃음 터져 나오기도 했다. 사실 혼자 상상하며 머릿속으로 북 치고 장구 치는 이런 나의 상상은 너무 창피해서 차마 남편에겐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왠지 이제는 풋풋한 20대 연애 세포 터지는 첫 줄의 멘트는 더 이상 튀어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어렸네. 어렸어.' 싶은 게 한창 연애 때나 하는 너무 오글거리는 멘트 같아 그 시절 떠올리며 한 번씩 피식하고 웃고만 넘어간다.
"이거 운전하고 가면서 하나씩 집어 먹어.
빈통으로 갖고 와야 해!"
출근 준비하는 남편에게 냉장고 안에 있는 토마토 챙겨주며 연애 때와는 다른 방식의 애정 어린 엄포를 내어본다. "이거 토마토 너무 많아."라고 말하는 그에게 "아니여~ 가면서 이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지, 왜~에~"라고말하며 기어이 넉넉한 양을 통에 담아 그에게 쥐어주는 것으로 나의 애정을 그에게 보낸다.
1월 초 새해 첫 주, 동네 괜찮은 종합건강검진센터에서 둘이 손잡고 나란히 건강검진을 받는 것으로 올해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 새 시간이 흘러 동네 벚꽃필 준비가 한창이다. 아무리 바빠더라도, 다 제쳐 놓고라도 우선은, 일단은, 기여코, 건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