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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Apr 04. 2024

EP 17. "고소한 산미"

[소비자가 본 스페셜티 커피]



"고소한 산미"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게 어디 있냐 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구절이다.


하지만 최근 소개되고 있는 브라질 스페셜티 커피들이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 특유의 고소한 견과류의 느낌 위에 얹어진 시트러스 한 귤이나 라임 같은 향미와 산미가 얹어진 커피.


오늘은 브라질 커피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자.




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세계 커피 총생산량의 30~40%를 담당하고 있는 브라질이다.


고소한 너티 향미와 부드러운 질감이 매력적인 브라질 커피는 다른 원두와 블렌딩 하기에도 좋아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산지이다.


하지만 이런 브라질은 17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커피나무가 없었다고 다.


브라질 커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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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casabrasilcoffees.com


1700년대 초까지 중남미의 커피 재배는 유럽 국가들에 의해 관리되었다.


특히 당시 커피 재배를 주도했던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생두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감시했다고 다.


어느 날 이 두 국가가 식민지였던 기아나의 국경을 두고 대립하게 되었고, 이를 중재하기 위해 브라질 출신 대위인 팔레타를 초청한다.


팔레타 대위는 두 국가의 분쟁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기아나 총독 부인과 사랑에 빠지는데, 분쟁이 해결된 후 그가 브라질로 귀국할 때, 총독 부인이 꽃다발에 커피나무 묘목을 감춰서 그에게 선물한다.


팔레타 대위가 그것을 브라질로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최초의 브라질 커피가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요, 브라질의 주요 재배 품종은 레드 버번(Red Bourbon), 옐로우 버번(Yellow Bourbon)을 주로 생산하고, 뒤를 이어 카투아이(Catuai), 문도노보(Mondo Nove), 카티모르(Catimor) 마라고지페(Maragogype)등을 재배하고 있다.




출처: https://brazilcoffeenation.com.br/region/list


브라질은 위도 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있어서 기후의 변화가 적고, 그리고 안데스 산맥을 걸치고 있는 남아메리카 주요 산지들과는 달리 저지대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유통에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량 생산에 알맞은 지역적 특혜를 가지고 있다.


넓은 국토에 걸쳐 ‘테라로사’라고 불리는 적토층이 고루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연간 강수량이 1,000~1,500mm로 일정하기 때문에 커피 산업이 성장하기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브라질 커피 협회 웹사이트에서 커피 생산지역 지도를 보게 되면, 브라질의 주요 커피 경작지는 미나스제라이스Minas Gerais, 상파울루São Paulo, 에스피리토 산토Esprito Santos, 파라나Parana, 바이아Bahia,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론도니아Rondonia 지역이다.


이 중 "미나스제라이스"가 브라질 커피의 51%를 생산하며, 그래서 대규모 커피 농장들의 대부분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최근 스페셜티 커피의 흐름에 따라 싱글오리진 커피에서는 에스피리토 산토도 자주 이름을 보이고 있




브라질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75~80%는 아라비카이며 나머지는 로부스타다.


브라질의 생두의 커피등급은 뉴욕무역거래소(NYBOT: NewYork Board of Trading)의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


샘플 300g 안에 포함된 결점두의 종류와 개수에 따라 측정값을 확인하고, 측정값에 해당하는 등급을 부여한다.


다음으로 커핑을 통해 생두의 맛을 평가한 뒤 등급을 부여하는데, 가장 좋은 SS 에서부터 RZ까지 총 7단계의 등급으로 구분된다.


(SS는 Strictly Soft, RZ은 Rio Zone의 줄임말)

이후, 커피의 향미에 따라 다시 한번의 분류가 이뤄지게 되는데, 스페셜티 등급을 의미하는 Fine Cup 과 프리미엄, 커머셜 등급에 해당하는 Good Cup 두 가지 단계로 분류된다.


커피는 대부분 내추럴(커피체리째로 말린 것)로 가공하는데 이는 약 90%에 달하며, 나머지 10% 내외의 커피가 펄프드 내추럴(커피체리의 껍질을 벗겨내고 점액질 상태로 말린 것)과 세미워시드(커피체리 껍질을 벗겨내고 기계에 넣어 점액질을 제거해 말린 것), 그리고 일부 워시드(껍질을 벗겨내고 발효 후 씻어서 건조)로 가공된다.


규모가 방대한 농장들이 워낙 많고 농장이 평지에 위치해 있어서 커피 농사의 많은 부분에 기계를 사용한다.


경작과 수확 그리고 가공 과정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기계들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게 다.


그간 커피업계에는 커피 농사에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저급 커피 생산 방식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으나, 적절한 기계 생산은 효율을 높이고 과학적인 농사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일정한 품질을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브라질의 경우 경제 개발로 인해 산업화가 촉진되면서 인건비가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계 사용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커피 생산국에 비해 다양한 기계를 이용한 농법들이 개발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 대량생산으로 인한 저품질 커피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최근 20년간 여러 가지 품질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해 현재 전 세계 커피 시장에서 브라질 커피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대량의 물량을 찾는 소비자는 물론이고, 소량의 고품질 커피를 찾는 소비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결과를 이뤄냈다.




브라질에는 일반적으로 부유한 지주들이 운영하는 "파젠다"로 알려진 대규모 커피 농장이 있다.


이러한 농장에서는 첨단 기술과 기계를 사용하여 대규모로 커피를 생산하며, 수확을 돕기 위해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다.


이런 "파젠다" 중에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곳이 한 곳 있다.


2023 World Barista Champion인 Boram Um의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브라질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하는 한국인 농장에 대해서 소개한다.



브라질에는 5만여 명의 한인이 살고 있고, 이민 1세대는 6·25 전쟁(혹은 한국전쟁) 이후인 60년대 초, 정부의 이민장려정책으로 브라질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브라질은 사탕수수, 커피 등 농업 생산에 필요한 일손을 모두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했기 때문에 ‘농업 이민’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농업 노동의 한계를 느낀 한인들은 상파울루São Paulo로 거처를 옮기게 되는데, 처음에는 방문판매원으로 일하며 의류를 판매했다.


손재주가 좋고 속도도 빨라 의류 업계를 석권했고, 90년대 중반에는 한인촌이자 의류업의 중심지인 상파울루 봉헤치로Bom Retiro와 브라스Brás에서 브라질 전체 의류 생산에 60%를 담당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민 1세대는 의류업을 중심으로 브라질에 정착했지만, 현재 한인들은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그중 커피 재배를 제2의 업으로 삼은 두 농장 중 하나가 파젠다 엄(Fazenda UM)다. (다른 농장은 파젠다 상세바스치앙)





- 파젠다 엄(Fazenda UM)

멘티퀘이라 산맥Mantiqueira 남쪽, 상곤살루 두 사푸카이São Gonçalo do Sapucaí와 캄파냐Campanha에 위치한 ‘파젠다 엄Fazenda UM(포르투갈어로 ’엄 농장‘이라는 뜻)’은 500ha 중 100ha에서 커피를 재배하며 연간 96톤을 생산한다.

 

엄하용 대표가 2010년에 인수한 이 농장은 70년 이상 커피를 재배해왔던 곳이다.


그는 그 노하우를 살리고 더 좋은 커피를 찾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이 농장에서 스페셜티 커피는 전체 커피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전자 기계공장을 운영했던 엄 대표는 전직의 영향인지 독특하게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농장 일부를 대여해 구매자가 원하는 커피를 재배, 프로세싱하는 고객맞춤형 방식을 적용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격은 높게 책정되는데 주로 생산국에 대한 고정관념이 덜한 유럽에 수출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새로운 품종과 재배, 가공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엄 농장에는 게이샤처럼 뒷맛을 가지고 있다는 콜롬비아 우쉬우쉬Wush Wush부터 옐로우 버번, 옐로우 카투아이 등 23종의 품종을 재배되고 있다.

 

또한 재배 시 커피나무 근처에 향이 나는 나무 혹은 과일나무를 심어서 커피 향에 변화를 주기도 하는데 바나나 나무, 파파야 나무, 사탕수수 등 12종의 다양한 나무로 실험 중이다.


현재는 바나나밭 근처에 문도노보Mundo Novo 품종을 8만 그루 심었다.


엄 대표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숲 속 그늘에 심은 커피나무이다.


야생 커피가 자라는 환경과 비슷하게 조성해 그늘에서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수확시기가 늦어지고 생산량도 떨어지지만, 열매가 나무에 오래 달려있기에 영양분을 많이 받아 품질이 올라가게 다.


현재 15종, 총 5만 그루가 심겨있고, 땅이 비옥할 뿐만 아니라 유기농 재배 중이다.


엄 농장의 커피는 가능하면 천천히, 평균 30일 이상을 말리고, 이를 위해 그늘을 만들고 아프리칸 베드를 이층으로 만들었다.


약 16일 정도 말린 다음, 다시 파티오에서 수분 함량이 11~12%가 될 때까지 천천히 말린다.


파티오에서는 커피를 모래성처럼 쌓아 말리는 볼케이노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커피를 더 천천히 말릴 수 있고 물이 고이는 것도 피할 수 있다.


건조가 끝나면 백에 넣어 45일 동안 숙성시킨 후 파치먼트를 허스킹 Husking 한다. 


발효는 일관성이 보장되지 않고 지속성이 떨어져 선호하지 않지만 트렌드를 따라 2017년부터 발효전문가와 함께 30여 가지의 다양한 발효법을 실험 중이며, 맥주 발효법에서 차용해 홉이나 효모로 발효시키기도 하며 배럴 barrel에 귤 슬라이스나 사탕수수 진액을 함께 넣고 약 48시간 동안 무산소발효하기도 한다.




출처: spotify

브라질은 커피 생산국 1위이기도 하지만, 커피 소비국 2위이기도 다.


과거에는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에서는 대체로 커피를 소비하지 않았으나 현재 브라질은 미국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제2의 소비국이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6.2kg로 전 세계 14위에 해당하며, 에티오피아와 더불어 커피 생산국 중 커피를 대량 소비하는 보기 드문 국가다.


하루에 커피를 10잔도 넘게 마신다고 하는 브라질에서는 의외로 커피 전문점이 많지 않다고 다.


가정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 먹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어서 커피를 소량씩 자주 마시기 때문인데, 에스프레소 정도 분량의 달콤하고 진한 커피를 자주 마시고, 이런 형태의 커피와 문화를 통틀어 ‘cafezinho’(카페징요)라고 부른다.


적은 용량의 물에 설탕을 듬뿍 넣고 끓인 다음 진하게 드립을 내리면 ‘작은 커피’라는 뜻의 카페징요가 완성된다.


브라질에서는 카페징요를 매일 습관처럼 즐기며 손님에게 환대의 의미로 대접하기도 다.


또 이런 핸드드립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아이스커피보다 뜨겁게 내린 커피를 선호한다.


그래서 많은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판매하지 않게 되고, 더운 날씨에도 브라질 시내에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대용량 커피 전문점이 많고 아이스커피를 즐겨 마시는 한국과 다른 모습이다.




출처: ACE

마지막으로 브라질과 COE와 관련된 이야기를 준비했다.


브라질 스페셜티커피협회(BSCA Brazil Specialty Coffee Association)는 1991년에 12명의 농부들이 커피 품질을 향상하고자 조직한 비영리 기구이다.


브라질 내 커피 농부들에게 품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농법을 전수하고 또한 고품질 브라질 커피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필요한 협력을 도모한 결과, 전 세계 커피 바이어들에게도 새로운 품질의 브라질 커피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커피품평대회인 컵 오브 엑셀런스Cup of Excellence 프로그램이 1999년 브라질에서 시작된 것도 BSCA의 품질에 대한 강한 집념의 결과였다.


COE를 시작했던 브라질은 다른 곳과는 달리 커피 평가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으며, 올해 역시 다시 한번 변화를 주었다.


브라질 컵 오브 엑설런스 2023은 "내추럴을 강조"하는 드라이 프로세스(Dry Process) 카테고리, "워시드, 허니, 펄프드 내추럴, 세미워시드 등 체리의 펄프를 제거하는 모든 방법을 포함"하는 웻 프로세스(Wet Process) 카테고리, "물 이외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 독특한 처리를 통해 습식과 건식 공정을 모두 포함"하는 실험적(Experimental) 카테고리로 구성되었다.


기존에는 내추럴과 펄프드 내추럴로 구분을 지었고, 그 이후에는 전부 합쳐서 평가를 하다가, 23년에는 발효커피들을 구분하기 위한 카테고리를 다시 만들어서 COE를 진행했다.



가장 대중적인 맛을 가졌지만, 스페셜티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호불호가 생기는 브라질.


하지만 점점 더 신경을 많이 쓰며 산미와 다양한 캐릭터를 갖추는 산지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바로 드립으로 시키면 경험하긴 힘들지만, 올 하반기나 내년도에는 재밌는 브라질을 많이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한 유튜버의 대사로 마무리하겠다.




"산미가 고소하이!"




- EP 17. END.







*[소비자가 바라본 스페셜티 커피]는 매주 목요일 오후 9시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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