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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Aug 24. 2023

독박 육아 끝판왕

스웨덴의 여름

아이들의 기나긴 여름방학이 드디어 끝났다.


하얀 모니터 화면에 어떻게 글을 썼던지 막막한 느낌이 들 정도로 컴퓨터 앞에 앉은 내 모습이 어색하다.

뭐든 쓰고 싶단 생각으로 앉았지만 무얼 써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분명 6월엔 초등 2명과 유럽여행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몇 편 써야겠단 생각을 했었는데

텅 빈 머릿속에 그 생각이 치고 들어오기 전에 먼전 떠오른 건

긴 여름방학 독박 육아의 고달픔이었다.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아이들과 온전한 여름방학을 보내본 적이 없다.

아니 그 둘이 태어난 이후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몇 개월을 제외하곤

이렇게 친밀하다 못해 지긋지긋하게 함께 붙어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두 달을 꼬박 셋이서 한 몸처럼 지냈다.

방학 시작과 끝에 있는 여름캠프라는 명목으로 운동하러 간 며칠간의 스케줄을 제외하곤

셋이 함께 일어나고

셋이 함께 밥 먹고

셋이 함께 여행 가고

셋이 함께 싸우고

셋이 함께 웃고

육아라고 하기엔 많이 컸지만 11살과 9살,

둘을 데리고 스웨덴에서

독박 육아란 이런 거구나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을 먹이는 일, 공부 키시는 일, 여행 모두 함께해야 했다.

말로만 듣던 독박 육아의 끝판왕이 여기 있었다.


방학 동안 누군가를 만나면 제일 많이 한 말이 "학원이 없는 게 이런 건 줄 몰랐다."였다.

피아노를 쳐도 뚱땅뚱땅 집에서

그림을  그려도 밥 먹는 식탁 위에서 그렸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십 대들의 하루 세 끼를 차리는 게 힘겨워 꼴딱 고개를 넘을 즈음엔

아마 이때쯤엔 여행을 가는 게 나을 거 같아 하며 미리 계획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가장 좋았던 건 밥을 안 하는 거였다.

이 얼마나 엄마들의 전형적인 넋두리인가.


나는 그동안 애를 키웠다고 할 수 없는 거였어.

두가지 다 어영부영하느라 힘들었지만 진정한 육아는 해보지 못한 거였어.

물론 아가들의 육아가 훨씬 힘들겠지만

꽤나 자란 자식 돌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는 걸

절절히 깨달은 여름이었다.


스웨덴의 여름은 아침은 시원하고 낮은 더웠다.

하지만 오후 4시쯤이면 소나기가 한번 퍼부어주는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여느 해보다 날이 좋지 않고 비가 훨씬 많이 왔다고는 하지만

여름이면 푹푹 찌는 더위에 진이 빠지고

열대야에 며칠씩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에 체력의 한계를 경험해야만

아침저녁으로 시원해지는 한국의 여름에 비하면

스웨덴의 여름은 지내기에 좋은 날씨였다.

사실 날씨 하나! 좋았다.


왜 모두들 아이를 데리고 여름에 한국에 돌아가지? 하던 나의 궁금증은 그렇게 경험으로 해결되었다.

학원도, 할머니도, 아파트 놀이터만 나가도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없는 이곳은

셋이 하나가 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매일이 웃다가 잔소리하다가 화내는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또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있었고

와중에 엄마랍시고 정신 차리려고 힘쓰는 내가 있었다.


내가 사실은 돈을 벌고 있지?

배달 음식도 없지

아파트 단지 안에 흔한 분식집도 없지

예체능도 엄마랑 해야지

한국 지난 학기 공부도 엄마랑 해야지

영어도 안 까먹게 엄마랑 해야지


무급으로 일하던  시간을 시급을 따져보면 결코 작지 않을 거 같았다.

누가 주부에게 보상을 주는가, 누가 나에게 월급을 주는가, 난 월급을 받아 마땅하다. 땅땅땅


물론 부부가 둘 다 고생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내가 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누군가 알아주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긴 방학이 끝이 났다.


다시 날 위해 무언가를 할 시간을 낼 수 있다.

매일 생활에 치여 밤이면 나만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인스타와 유튜브를 전전하던 나 말고

기록하기 위해 무언가를 쓰는 나를 다시 만나야지.


안녕 오랜만이야.

돌아온 걸 축하해.

다시 같이 뭐든 해보자.

두 달 동안 고생 많았어.


상냥한 인사를 건네며 나를 만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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