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렇게 다를 게 있을까요 우리 인생?
어렸을 때
엄마는 이상하리만큼 빨간색 립스틱이 많았다.
나의 할머니, 그러니까 그녀의 시어머니가
쥐 잡아먹은 것 같다고 핀잔을 줘도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녀의 입술은 발갛게 물이 들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빨간색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무채색의 나날들을
열 손톱 위 곱게 펴 발라진
빨간 매니큐어로 위로할 때
망설이다 큰 맘먹고 산 빨간색 구두가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을 때
자존감이 바닥인 순간에도
빨간색 립스틱 하나로 괜스레 당당해질 때
하늘 아래 같은 빨강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렇게 내가 여자가 되었을 때
조금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토록 빨간색을 포기하지 않던 그녀의 마음을.
여자는 어딘가 붉게 칠해져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걸.
엄마도 그때는 여자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