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너나 나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타누키 차차 Mar 18. 2018

여자는 어딘가 붉게 칠해져야 마음이 놓인다

뭐 그렇게 다를 게 있을까요 우리 인생?


어렸을 때

엄마는 이상하리만큼 빨간색 립스틱이 많았다.


나의 할머니, 그러니까 그녀의 시어머니가

쥐 잡아먹은 것 같다고 핀잔을 줘도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녀의 입술은 발갛게 물이 들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빨간색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무채색의 나날들을 

열 손톱 위 곱게 펴 발라진

빨간 매니큐어로 위로할 때  


망설이다 큰 맘먹고 산 빨간색 구두가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을 때


자존감이 바닥인 순간에도 

빨간색 립스틱 하나로 괜스레 당당해질 때  


하늘 아래 같은 빨강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렇게 내가 여자가 되었을 때  


조금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토록 빨간색을 포기하지 않던 그녀의 마음을. 


여자는 어딘가 붉게 칠해져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걸. 


엄마도 그때는 여자였다는 걸.    



    

'어머니는 말했다. 여자는 어딘가 붉게 칠해져야 마음이 놓인다고'  너무나 제 얘기 같아서 가장 좋아했던 일본 카피를 인용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