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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비어 Oct 24. 2022

알프스에서의 실습

유학 일기 #11

독일의 무시무시한 겨울이 오던 11월, 알프스 산맥의 중간쯤 뻗어 나온 곳에 위치한 독일의 작은 마을 앞에서 두 번째 양조장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양조학과는 첫 두 학기에 알아서 회사를 찾아서 실습을 해야 하고 졸업하기 전에 추가로 실습을 한번 더해야 한다. 일자리는 알아서 찾아야 한다. 실습이라면 학교에 연관되어있는 양조장이나 회사의 일자리가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시스템은 없다. 그리고 정해진 기간내에 실습을 했다는 증명을 학과 사무실에 제출하지 못하면 퇴학을 당한다. 이해가 안 갔던 것은, 모든 학기에 중요한 수업이 있는데 추가 실습은 언제 해야 한단 말인가. 역시나 친절하지 않은 과정이다. 이상적으로는 방학에 할 수 있겠지만 방학이 끝나자마자 시험을 치기 때문에 방학은 시험기간이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딱 맞춰 일할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7학기 차에 시험을 두 과목 남겨두고 실습을 시작했다. 휴학을 하면 시험을 칠 수 없었기 때문에 학기 중간 실습을 하고 시험 직전에 미뤄놨던 공부를 했다. 그래도 지금은 커리큘럼이 바뀌어 추가 실습기간은 없어졌다고 한다.   


양조장 찾기

내가 원하는 기간의 일자리를 못 구하면 계획했던 일정들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어디든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었다. 우선 관심 있었던 양조장들부터 집에서 가까운 순으로 지원했다. 당연하게도 답장조차 받기는 힘들었고 초조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도 정성스레 썼던 이력서 덕분인지 Hoppebräu(호페 브로이)라는 한 양조장에서 답변이 왔고 양조장 사장이자 브라우 마이스터(브루마스터)인 사람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바로 약속을 잡고 그다음 주에 바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날 양조장을 찾아가는데 한시간 이상을 운전해도 양조장이 나오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은 뮌헨에서 동북쪽인 Freising이라는 도시인데 양조장은 뮌헨에서도 남쪽으로 많이 내려가야하는 곳으로, 스위스처럼 엄청 높고 멋진 산맥은 아니니지만 알프스에서 뻗어나온 산맥의 끝자락이었다. 거리는 무려 집에서 90km였다. 과연 내가 편도 90km를 매일 운전하며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양조장에 도착하니 완전한 새로운 설비로 지어져 있는 양조장이 날 반겼다. 거리 문제가 있어도 이 정도 설비의 양조장에서 일한다면 나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면접이 시작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마이스터는 나의 이력을 신기해했고 몇 마디 나눈 후, 다음 주부터 일을 바로 시작하자고 했다. 드디어 걱정했던 나의 큰 과제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실습기간 동안 문제없이 일하면 학교에서 해야 하는 것은 거의 다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실습 시작

나의 두 번째 양조장에서의 실습이 시작되었다. 첫 양조장 파울라너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간을 투자하며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었다면, 이번 실습은 그래도 어느 정도 배운 상태에서 한번 적용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실습은 최대한 이 양조장의 모든 것을 뽑아가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하루하루 전투적으로 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원래 성향상 에너지가 올라와있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이 시기에는 힘은 들었지만 매일 에너지틱하게 보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옥의 출퇴근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당연히 출퇴근이었다. 대중교통이 있었다면 그래도 좀 쉬면서 갈 수 있었겠지만 양조장까지 갈 수 있는 대중교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운전이 필수였다. 양조장은 7시까지 출근해야 했고 시간에 맞춰 가려면 5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기상시간이야 문제가 없지만 한 시간 십 분 정도의 편도 운전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은 운전이 할만했으나 마지막 20분 정도 국도에서 운전이 신경이 많이 쓰였다. 도로도 좁았을 뿐만아니라 겨울의 유럽은 해가 4시쯤 져서 깜깜해 지기 때문에 하루에 8시간에서 9시간밖에 일을 안 했지만 출퇴근 시에는 항상 해가 져있었다. 하루에 180km의 운전은 항상 정신 집중이 필요했다. 초반에는 출근을 하고 나면 기운이 빠졌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한 달 정도 일하니 적응은 되었던 것 같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폭설이 잦게 내렸다. 알프스 산자락 아래의 동네라 겨울엔 눈이 너무 많이 왔고 외근 때는 곤욕이었다. 운행중 폭설로 도로 중간에 고립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구름이 걷히고 한 번씩 볼 수 있었던 알프스는 장관이었다.

국도를 달리던 중 폭설 때문에 도로에 고립되어 제설차량을 기다렸다.


양조장 앞마당에서 보였던 알프스



물론 실습생이었으니 잡일도 많이 하고 몸도 힘들었지만 양조 쪽으로는 파울라너의 경험만큼, 아니면 더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이 양조장은 클래식한 맥주의 대명사인 바이에른 지방에서 그렇게 많지 않은 크래프트 양조장이었고, 기본은 잘 지키는데 창의적인 시도도 많이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양조설비의 임대를 해줘서 바이에른의 힙했던 양조장들이 집시 브루잉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집시 브루잉을 하는 양조장들의 노하우도 볼 수 있었다. 일 마지막 날 고마웠던 동료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마이스터의 나이가 나보다 어렸다는 사실을 알고 대 충격을 받으며 현타가 살짝 왔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시간도 올 것이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무리를 했다. (독일에선 보통 서로 나이를 안물어봐서 몰랐었는데 사장이 젊어 보이긴 했지만 나보다 다섯살은 많을 줄 알았다.)

그 후 남았던 시험도 운좋게 다 통과하고 뮌헨공대의 마지막 과정은 논문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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