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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비어 Aug 22. 2022

독일에서 시작된 두 번째 공대 생활 3

유학일기 #10

그리고 찾아온 역병

19년도 겨울학기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첫 학기가 끝나갈 때쯤 그놈의 역병 코로나가 찾아왔다. 초반에는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2년이  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국도 같았지만 그다음 학기부터 모든 수업은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었고 학교 갈 일조차 없어졌다. 나는 그나마 큰 문제가 없었으나 졸업을 앞둔 경우나 실험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경우에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학교는 생각보다 학생들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그래서 코로나가 우리 탓이야?”라는 맘 편한 결론으로 1년에 한 번 열리는 실험들은 과감히 삭제해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겨우 하나의 실험 때문에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독일에서 학교 시스템은 무조건 알아서 잘 챙겨서 따라가야 한다는 교훈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냥 들어야 할 수업만 많았고 대부분이 인터넷 강의로 열렸기에 참여만 잘하고 시험만 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나고 나선 학교에서도 조치가 이루어져 최소한의 참가를 통해 실험과목들도 이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앞서 다른 글에서 언급했지만 이 시기에 나름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어서 내가 바쁜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서 코로나로 수혜 아닌 수혜도 약간 입을 수 있었다.


좌절의 시험 ‘맥즙 공학’

학교 생활을 하며 나에게 가장 어려운 과목은 Brau2라는 과목이었다. 양조 전공과목인데 Brau1, 2, 3로 나뉘는 과목 중 두 번째 과목이었다. 상세히 말하자면 Brau2는 ‘맥즙 공학’이라는 주제로 양조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맥즙에 관한 모든 과학적, 공학적 내용을 아우르는 과목이다.

이 과목은 한 달 내도록 공부해서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을 때 불합격을 했다. 과연 내가 이 과목을 합격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고 한번 떨어지면 다음 학기에 쳐야 하니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난 이 과목을 세 번이나 쳤다. 물론 다른 시험들과 병행하니 상관없긴 하지만 시험에 계속 질질 끌려다니니 스트레스가 많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첫 번째 시험은 공부를 하지 않고 전 학기에 미리 당겨 들어서 시험을 쳐봤다. 난 대부분의 과목을 그런 식으로 쳤는데, 다음 학기의 시험을 미리 쳐보고 나만의 족보를 만들어서 다음 학기에 공부하는 방식으로 학교 공부를 해왔다. 그래서 Brau2 과목도 먼저 쳐서 경험해보고 다음 학기에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쳤었다. 하지만 낮은 점수로 탈락했다.

(썸네일 사진도 두번째 시험을 탈락한 날 답답해서 산책을 하던 사진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교수님을 찾아가서 답안지 확인을 해보니 생각보다 너무나 디테일한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적당히 적으면 절대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출제되는 것에 비해 내용이 너무나 방대했다. 답안지를 보고 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수백 장의 빽빽한 ppt 자료에서 딱 한 장에 작은 한 칸에 나온 내용을 적어야 하는 그러한 디테일한 문제들이 많았다.


벽이 느껴졌다. 이 벽은 몇 년 전 독일어 시험에서 본, 마치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 같았다. 대체 저걸 어떻게 외워서 적는단 말인가? 이걸 합격하는 애들은 대체 누구인가?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불합격했던 날에는 여기서 이걸 못 붙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지에 대한 걱정에 잠들기가 힘들었다. 나름 학교 생활하면서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Brau2의 두 번째 시험을 날려먹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드디어 좌절의 극복

사람은 바쁘게 살 수록 더 많은 것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다음 학기가 시작되고 정신을 추스른 후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기로 했다. 게다가 이 시기부터는 하고 있던 일도 코로나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고 남은 공부나 잘 하자는 생각이었다. 해당 학기에는 더 많은 시험들과 실험들이 있었는데 그래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공부를 하니 지난 학기 때 보다 이해도도 많이 올라갔다.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다 보니 이전에 완벽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서 허술한 것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부족함이 확실히 느껴졌다. 지난 시험에서는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다고 하면 이 학기에서는 정말 나의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봐도 이 학기가 나의 양조 쪽 학문으론 가장 많이 배운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Brau2 결과 발표날 심장이 벌렁거리며 결과를 확인했다. 그때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올 때였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다행히 나쁘지 않은 점수로 합격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불합격한다고 세상이 뒤집어질 정도의 시험은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여유가 없어서 더 간절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이 학기에 시험들을 거의 다 합격해서 다음 학기에 수업 2과목과 졸업논문만 남는 상태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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