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드 Mar 30. 2024

병원 UXer의 '의료적 고민'

환자와 고객의 UX아젠다는 다르다

✅ 병원이 시키는대로 따라야 하는 환자경험 


Hotel과 Hospital은 '숙소'라는 뜻의 Hospitalla라는 라틴어 어원을 공유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둘다 예약하고, 잠자고, 밥을먹는 일종의 숙박 서비스를 제공 하는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각각 숙박을 제공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서비스의 내용과 방법은 매우 다르다. 호텔은 휴식을 위해 찾는곳이기 때문에, 고객이 불편함 없이 최고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모든것을 고객에게 맞추고 '고객 편의'를 극대화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반대로 병원은 치료를 위해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에, 병원은 빠른시간 내에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공하기 위해 '의료질'의 극대화에 모든 서비스역량을 집중한다. 즉 병원의 서비스 우선순위는 '고객 편의'가 아니라 '의료질'에 있다는 말이다.


병원 서비스에서는 의료질이 최상위 우선순위라는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의료질을 위해 서비스경험을 희생 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병원에서는 이 해석이 당연하게 여겨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 이용자인 환자 입장에서는 '호텔처럼 고객 편의가 기본이 되는 환경에서 높은 의료질을 제공받을 수는 없는걸까?...'라고 충분히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 '돈을 지불하시면 충분히 가능 합니다'라는 답을 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병원 수가 측면에서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무시할만한 문제가 아닌것 같다. 안좋은 고객 경험이 '의료효율'과 '의료질'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과정들이 수반된다. 우선 진료부터 하고 그다음 검사하고, 치료하고, 치료후에도 잘 관리해야 질병이 나을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이 치료의 과정은 병원이 일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질병이 치료되기 위해서는 환자가 참여해야 한다. 환자가 본인의 질병과 치료법에 대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해야 하고, 치료법을 의사결정 해야하고, 약물이나 운동처럼 치료법을 직접 수행해야한다.


만약 치료에 환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치료 효과는 낮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병원의 의료서비스는 '환자의 참여 유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병원 시키는대로 해야 치료가 잘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모두 알다시피 사람을 움직이는것만큼 어려운것도 없다. 도대체 환자는 왜 의료진이 얘기한대로 따르지 않는걸까? 물론 환자가 갈수록 똑똑해져서 의도적으로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환자들이 지시를 따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병원서비스의 구조적인 문제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치료는 환자에게 어렵고 복잡한 업무(User Task)이다.


1. User가 학습해야할 정보량이 많다.

<이미지: Unsplash>

병원만 가게되면 항상 긴장하게 된다. 일단 처음 외래에 가서 접수하면 그때부터 간호사가 랩을 하기 시작한다. ‘진료의뢰서 가져오셨죠? 오시기 전에 피검사 안하셨네요. 일단 앞에있는 신체계측기에서 혈압이랑 몸무게 측정하시구요, 원무과에 검사비 수납하시고, 1층 a구역 우측 구석에 있는 혈액검사실에서 검사받고, 여기로 돌아오세요. 그다음엔 .... ‘


이 쏟아지는 정보들을 듣고 나면 정신이 갑자기 멍해진다. 그리고나서 얘기한다. ’뭐라구요? 뭐부터 하라구요?....‘ 이건 입원할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진료를 받을때도 의사가 친절하게 진단 결과를 설명한다. 최대한 천천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시지만 진단명이나 중요하게 기억해야할 질병원인, 생활수칙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위해 받아적거나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많은 정보의 반은 잊어버리거나 잘못 기억하기도 한다. 이렇게 의사/간호 선생님에게 정보를 듣고, 소화해서,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학원이나 학교에서 학습을 하는 교육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교육/학습효과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이 과정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전달자가 듣는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전달하거나, 못알아듣게 설명한다면? 그리고 정보를 듣고 학습하는 사람이 기억을 못하거나, 오해하거나,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교육효과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그 학습하는 사람이 몸 컨디션이 안좋아서 인지력이 낮아진 상태라면? 10개의 정보를 전달한다면 그중 몇개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이렇게 치료 과정에서 환자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학습해야한다.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새로운 정보들을 기억하고, 판단하고, 활용해야한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2. User가 해야할 숙제(Task)가 복잡하다.

<이미지: Unsplash>

병원에서는 종종 스스로가 바보가 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1,2,3차 병원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무조건 집 근처에 있는 3차병원으로 직진 했다가 진료의뢰서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온 경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검사를 먼저 받아야 하는데 이걸 잊고 진료실 앞에서 멍하니 기다렸다가 다시 검사받으러 가야 하는경험, A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알고보니 B 진료실이었던 경험, 수납을 해야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이해 못해서 검사받으러 갔다가 수납하러 원무과로 가야하는 경험...병원 의료진들은 환자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너무도 간단하고 당연한걸 헤매고 못하는 환자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UX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사용자는 바보가 맞다. UX에서는 기본적으로 '사용자는 바보'라고 규정짓고 사용자가 실수 하도록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해서 성공할 수 밖에 없도록, 3살짜리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이용해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것을 UX디자인 결과물의 목표수준으로 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UX관점에서는 병원의 사용자가, 그것도 컨디션이 안좋아서 인지력이 낮아진 환자가 일반인도 이해하고 수행하기 어려운 이 복잡한 절차를 성공하라고 요구하는 자체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애초부터 사용자에게는 안해도 되는 Task는 없애고, 단순화 해서 최소한의 정말 단순한 행위만 요구해야 한다.병원의 치료 과정은 A다음 B, 그다음 C 형태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특징이 있다. 검사나 진료 없이 무조건 수술부터 할수는 없는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서비스는 사용자가 단계별로 차근차근 놓치거나 실패 없이 과업(TASK)를 달성하도록, 아니 성공할 수 밖에 없도록 서비스 과정과 환경을 치밀하게 전략과 설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계속 실패를 거듭하며 힘들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힘듦이 환자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피해는 결국 병원 직원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이용방법을 몰라서 헤매는 환자는 결국 주변 직원을 두리번거리면서 찾게된다. 그리고 그 직원은 거듭되는 질문들을 한참을 서서 답변해준다. 그리고 그 질문은 끝나지 않고 다른 환자들에게 똑같이 받게된다. 결국 병원 직원들은 그 수많은 질문들을 답하고, 도와주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3. 해야할 숙제가 많고 지루하다.

<이미지: Unsplash>

병원에서 환자는 의료진에게 잔소리를 상당히 많이 듣는다. '이러시면 안되요, 저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심지어 '계속 이러시면 큰일납니다' 라는 협박?도 듣게 된다. 병원은 수술후 면역력이 낮아진 환자가 감염에 노출되면 큰일이기 때문에, 또는 투약 시기를 놓치면 증상이 악화되거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규칙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회복 속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퇴원 후에도 해야할 숙제들과 하지 말아야할 규칙들은 더 늘어난다. 이 요구들은 환자가 평소에 하지 않던 Task들을 계속 신경써서 챙겨야 하고, 평소의 생활 패턴을 신경써서 바꿔야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환자에게는 일종의 스트레스 요소가 된다. 보통 숙제와 구속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특히 3차병원의 중증질환의 치료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오랜기간 반복적으로 병원에서 받은 그 숙제들을 끊임없이 잊지않고 제대로 수행해야하 그 효과가 나타난다. 잊지 않고 약을먹고,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하고, 중간 중간 검사를 받아야 하고... 쉽지 않은 생활을 오래도록 지속해야 질병이 치료된다.


즉, '치료'라는 Task는 환자가 병원에서 받은 숙제와 규제라는 스트레스를 오랜기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야하는 성공 할 수 있는 목표인 것이다. 결코 환자에게 쉽지 않은 과정이다. 애초부터 환자에게 '치료'의 과정이 좋은경험이 되기는 쉽지 않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쉽지 않은 '치료'라는 목표를 환자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달성하도록 만드는 전략과 솔루션을 찾는것 그것이 의료질을 추구하는 병원이 풀어야할 큰 숙제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문제를 의료계에서는 'Patient Engament'라고 부르고 있다.




✅ 플랫폼서비스와 닮은 병원UX

‘어떻게 환자들이 치료라는 고난이도의 업무(Task)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이미지:Unsplash>


병원의 입장에서 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생각했을때, 즉 UX가 갖게되는 서비스 공급자로서 환자가 치료를 잘 마치도록 하기 위한 의료적 관점의 UX의 고민은 아래 4가지 이다.


병원 관점의 UX Agenda

1. 어떻게 환자를 병원의 지시에 참여시킬까? (동기부여)

2. 어떻게 환자가 병원의 지시를 잘 알아듣도록 할까? (인지,이해)

3. 어떻게 환자가 병원의 지시를 효율적으로, 실수없이 수행하도록 할까? (사용성)

4. 어떻게 지시를 따르는 과정에서 중도 포기하지 않도록 할까? (리텐션)


vs


이와 반면에 서비스 수요자인 환자 입장에서 UX의 고민은 다르다.

환자 관점의 UX Agenda

1. 어떻게 치료 기간을 최소화 할까?

2. 어떻게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면서 치료 받을 수 있을까?

3. 어떻게 치료중 고통과 노력을 최소화 할 수 있을까?



내집을 공유하려는 사람과 숙박하려는 사람이 함께 만나는 공유 플랫폼 <이미지: 에어비앤비>


이는 마치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와 어떻게든 공부 시키려는 엄마의 관계처럼 복잡해 보인다. 의사는 환자가 말을 안들어서 답답하고 환자는 의사가 시키는게 많아서 답답한 이 상황에서, UX는 어느 한쪽만 만족시킬수는 없다. 치료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급자의 니즈도 함께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 두 사용자 사이에서 고민해야한다. 마치 에어비엔비에서 숙소 제공자와 수요자의 니즈를 절묘하게 매칭시켜서 비지니스를 만들어낸것처럼 말이다.

 





환자에게 치료의 과정 자체는 결코 좋은 경험이 될 수 없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고, 치료중 겪게 되는 통증과 정신적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치료 자체의 고통이 아니라 치료의 과정에서 겪게되는 환자의 불편,공포,무력함 같은 경험은 개선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사용자에게 요구하는것이 많은... 지켜야할것 많고 제약이 많은 병원서비스의 특징. 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과정이 강압적이거나 답답하게 느끼지 않도록 어떻게 할것인가, 어떻게 이 힘든과정을 생략하고,최소화해서 사용자를 자유롭게 할것인가? 즉, 규율속의 자유를 어떻게 만들것인가?의 고민이 병원 서비스에는 존재한다. 이것이 병원 서비스에서 UX가 풀어야할 큰 숙제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치 카카오뱅크, 토스, 간편로그인의 혁신처럼 말이다.

이전 06화 병원에서 '길찾기'가 어려운 UX적 이유 3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