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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Jun 27. 2020

당신은 쓸모있는 사람인가요?

두려움을 이겨내는 강력한 동기



크면 무엇이 되고 싶니?’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직업을 갖게 되는 그 순간까지 이런 질문들은 늘 받곤 합니다. 사실 타인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죠. 이 물음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은데, 내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는지 혹은 흥미가 생기는지 미리 알 수 있을까요? 


 학창시절 진로 상담을 하면 선생님들은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진로로 삼아야지' 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무엇이든지 대체로 다 그럭저럭 맞는 편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라고 하면 중간 이상은 항상 했으니까요. 그래서 딱히 '나만의 것'이라고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했던 플룻을 그만둔 이후부터는 더 그랬는데요. 선생님 말씀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잘하리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그 예로, 저는 뮤지컬을 매우 좋아했고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실력이 그만큼 되진 않았으니까요. (열정만은 브로드웨이급...)




 그래서 저는 장래희망을 어떤 직종에 국한시키지 않고, '쓸모있는 사람'으로 삼았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그것을 발판삼아 조금씩 저의 '쓸모'를 만들어가기로 했는데요. 물론 제 적성에 어느 정도 맞는 분야를 먼저 찾고 '쓸모'를 만들어야 하겠죠.  아무리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 이해하기 싫다는 표현이 더 맞겠습니다) 수학과 물리보다 국어와 미술을 더 좋아했던 저는 그 분야의 공부를 했고 그 곳에서 기회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어디에서나 '쓸모있는 사람'이 된다면 어디서든 쉽게 '내쳐지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느 조직에 들어가든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 안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질까봐 불안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잉여인간 같은 느낌이 들어 끊임없이 할 일을 찾고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숨가쁘게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마친 후 입사한 첫 직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공공기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1년 반 정도 근무 후 이직을 선택했습니다. 늘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하는 일을 좋아했던 제게는 조금 지루한 곳이었기 때문인데요. 그렇게 이직한 곳은 게임회사였습니다.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입사를 했죠.


 제가 잘 다니던 공공기관을 그만두고 게임회사 비정규직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모두 '음?'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한결같이 '아니 갑자기 왜? 안정적인 곳 두고? 하고 말입니다. 입사한 직무는 개발실 PM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 나라고 못할게 뭐 있어?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간 개발실은 평소 제가 좋아하는 게임류를 만드는 곳은 아니었지만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어'가 삶의 신조였던지라 일단 부딪쳐 보자! 싶었는데요.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들어간 회의실에서 난생 처음 듣는 개발 용어와 시스템들로 뇌정지가 왔었죠. 게임을 좋아하는 것과, 게임을 만드는 것엔 분명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회의 내용은 보두 한글로 말하고 있는데 저는 절반 이상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매일 회의시간에 녹음을 했고 그 녹음본을 출퇴근길에 두번씩 다시 들었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리했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동료나 팀장님들을 찾아다니며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모르는건 창피한 일이 아니니까요.(모르는걸 아는 척 하는게 창피한 일이 되곤 합니다) 


 그렇게 3개월을 꼬박 보내고 나니 더 이상 회의실에서 녹음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지만, 제겐 새로운 분야에 대한 '두려움'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비정규직 신분은 사람을 굉장히 작고 초조하게 만듭니다. 저는 조건부 비정규직 입사였는데요. 기간 동안 좋은 성과를 내고,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의 '쓸모'를 증명해내면 전환해 주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제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대학 수능만 치루면 끝인 줄 알았고, 대학 시절엔 취직만 하면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끝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회사를 나가는 그 순간까지, 어쩌면 죽는 그 순간까지 '증명의 시간'은 계속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주어진 업무 외에도 나만의 뉴스레터를 만들어 전 개발실 사람들에게 매주 1번씩 메일로 발송했습니다. 새로운 게임 이슈, 해외 게임 트렌드, 게임 관련 논문 분석 및 해외 기사 번역을 모아 짧게 2페이지 정도로 만들어 보냈는데요. 새로 나온 국내 게임을 분석하여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일상이었고, 휴가를 쓰는 것도 눈치를 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1년 반 넘는 시간을 비정규직으로 보낸 후, 저는 정규직이 되었습니다. 정규직이 되면서 나는 게임 UI/UX 기획으로 다시 직무를 시작했습니다. 비정규직 기간 동안 더욱 경쟁력 있는 '나만의 쓸모'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요. 그 고민 끝에 나의 전공과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업무분야를 찾고 다시 도전한 것입니다. 새로운 업무로 일을 시작한지 벌써 6년이 지났고, 그 사이 이직도 한 번 더 했습니다. 


 업무적으로는 이제 인정도 받고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저는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매일 투쟁합니다. 나의 퍼포먼스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어서 나를 쉽게 대체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꼭 화려하고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의 능력을 가늠해보고 방향을 정한 이후부터는 강력한 동기로 견뎌야 합니다. 자신이 꿈꾸는 모습을 그리며 엄청난 시간을 견디는 것이 더 강력한 결과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렇게 쓸모를 만들어 가야하죠. 


저는 재능과 적성이 어느 날 갑자기, 신대륙을 발견하듯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을 하루같이 버티는 인내에서 발견되곤 하죠. 사람들이 제게 '일은 적성에 맞아요?' 하고 물으면 저는 항상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맞추는 중이에요' 


 선천적인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직업' 이 되면 늘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말이죠. 지금 가는 길이 두렵더라도 견디며 나의 쓸모를 만들어 나가는 일, 그것은 재능을 뛰어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과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 눈에 띄지 않더라도 조금씩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꾸준한 것들이 끝까지 남더라구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오늘 하루도 자알- 버텨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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