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15일차, 아르바이트 이틀차. 나는 이 일도 못해먹겠다.
사실 출근길에서부터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오늘은 6월 6일 현충일, 공휴일인 것이다. 길거리에는 낮부터 사람들이 득실득실했다. 오늘 사람 많을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자, 심호흡을 한번 하고, 힘차게 가게 문을 열었다. 사장님께서는 이미 오픈 준비를 마치고 첫 손님을 받고 계셨다. 바쁘게 앞치마를 매고 홀로 향했다.
어제 실수했던 샷 뽑기를 다시 해 보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잠들기 전까지 시뮬레이션을 수차례 돌린 덕에 샷은 무사히 뽑힐 수 있었다. 어제 배웠던 딸기라떼도 집에서 나머지 공부를 열심히 해 갔기 때문에 실수 없이 잘 해냈다. 다만, 그 뒤부터가 문제였다. 사장님은 새로운 메뉴가 들어올 때마다 단 한 번만 구두로 설명해 주고, 그 다음번부터는 스스로 메뉴를 완성시키길 바랐다. 메론소다, 크림소다 같은 메뉴는 비교적 간단해서 한 번 들은 것으로 바로바로 메뉴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가게에는 복잡한 메뉴가 너무 많았다. 아메리카노만 해도 수동 머신이어서 하루 만에 익숙해지느라 애를 먹었는데, 핸드드립은 이보다 더했다. 부어야 하는 원두 양, 물의 온도, 침출 시간이 각각 정확히 정해져 있고 서빙할 때에도 자리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드리는 퍼포먼스(?)가 필요했는데, 이미 외워야 할 숫자부터 너무 많았고 학습 후 적용이 익숙한 나는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일을 바로바로 해낼 수 없었다. 설상가상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사람이 몰리면서 주문, 결제, 메뉴 준비, 매장 정리를 한꺼번에 해야 하게 되고, 나는 매장을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했는데, 자리를 치우고 돌아온 사이 사장님은 옆에서 사람이 핸드드립을 내리고 있으면 핸드드립 잔에 얼음 좀 미리미리 채워 놓을 수 없냐 그랬다. 그것부터가 잔소리의 시작이었다.
사장님은 모든 교육을 '지적'으로 했다. 두 명이서 디저트와 커피 한 잔을 시킨 손님이 있었다. 그대로 주문을 받았더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그랬다. 1인 1 메뉴에 디저트는 포함이 안 된다는 것이다. 몰랐냐길래 끄덕였더니, 메뉴판을 가져와 보란다. 귀퉁이에 작은 글씨로 1 메뉴에 디저트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쓰여 있었다. 나는 메뉴판을 살펴볼 시간도 없이 매장에 투입되었었는데, 일단 메뉴판을 제대로 정독하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니 일단 죄송하다 말씀드린 후 결제 취소를 해 드렸다.
사장님의 지적은 계속됐다. 나는 "용도에 맞게 잔을 잘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기에 아메리카노 잔과 하이볼 잔을 구분해 정리해 두었는데, 알고 보니 모양은 같지만 1cm 정도 높이가 다른 하이볼 잔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같은 위치에 두었다며 하부장에 글씨까지 써 놓은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나를 혼냈다. '하이볼', '아메리카노'라는 글자만 적혀 있었던 걸 아는 나는 조금 울컥했지만 참았다. 샷을 뽑아도 너무 느리다, 아까 옆에서 봤는데 아직도 기억을 못 하냐, 어제 배운 게 없네 등등의 말들로 나는 대체 출근 이틀차에게 어디까지 바라는 거지 싶어 점점 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사장님은 하이볼 두 잔을 만들어 둔 뒤 "하이볼 하는 거 잘 봐요" 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빙할 때 지켜야 되는 규칙도 하도 많다 보니 하이볼 서빙 나가는 걸 잘 보라는 뜻인 줄 알고 나는 잠깐 기다렸다. 하지만 주방에서 사장님이 계속 안 나오길래 혹시 잊으셨나 하고 하이볼 서빙 나가야 되는 거냐 여쭈었더니, 사장님은 아직도 안 나가고 뭐 했냐고 그랬다. 얼음 다 녹았겠다면서. 기다리라고 하신 줄 알았어요, 내 억울함은 공중으로 분해되었고 사장님은 그때 한숨을 쉬면서 나한테 그랬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당신을 뽑은 내 잘못이지.
나는 그 말을 들은 후 퓨즈가 끊어진 것처럼 넋을 잃어버렸다. 휴게 시간이 되어 옆 카페로 피신해 자몽에이드를 한 잔 시키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10분 지났나 하고 시계를 보니 28분을 지나고 있었다. 회복할 시간도 없이 다시 가게로 복귀했고, 여전히 사장님 입장에서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결국 주방으로 불려 가 한소리 또 들었다. 이렇게 이쪽 일머리 없어서는 자영업 못하지. 나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주입되다 보니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이따 퇴근하기 전에 레시피북을 보내 주겠다 그랬다. 그리고, 레시피북만 들고 튀어도 상관없다 그랬다. 그냥 눈치껏 나가 달란 소리로 들렸다.
발이 너무 아팠다. 부엌이 너무 더워서 땀이 뻘뻘 흘렀고 열사병 걸린 것처럼 열감이 사그라들질 않았다. 택시를 타고 갈까, 고민하다가 택시비와 오늘 내가 한 시간 동안 당했던 수모가 맞먹는다는 것을 깨닫고 꾸역꾸역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매장에서 틈틈이 필기하던 필기 노트를 두고 왔다는 게 떠올랐다. 왠지 오늘이 이 매장으로 출근하는 마지막 날일 것 같다는 생각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매장으로 갔다. 바에 손을 뻗어 노트를 가져오니, 사장님은 웃으면서 그랬다. 정신머리, 정신머리. 나는 웃는 사람 앞에서는 자꾸 그냥 웃게 된다. 집에 와서야 곱씹어 보며 울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전 직장 리더를 만났던 날이 있었다. 그때 리더는 개발자 말고 다른 일을 해 보고 싶다는 나에게, "무엇이 되었든 좋으니 다른 일로 만 원을 벌어 보는 경험을 꼭 해 보아라"라고 했었다. 만 원이면 이곳에서는 한 시간을 일한 값인데, 한 시간 동안 나는 몇 번 혼났을까, 세어 보다가 그만 또 눈물이 주룩 흘렀다. 지시가 아닌 협업에 익숙했던 나는, 비난이 곧 교육인 이 환경에 스스로를 내던지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해지는 것에 너무 익숙하지 않았다는 걸. 개발자로 7년을 일하면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모욕을 열 시간 동안 당하고 나니 사실은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나의 직업이 천직이었던 건가, 싶기도 했다. 내 발로 나온 회사를 다시 떠올리게 되는 일이 참 괴로웠다. 이틀 만에 나는 그 가게에서 얼마큼 잘해야 했던 걸까. 다들 잘하는데 나만 그렇게 유독 못했던 걸까. 다시 도전이 두려워졌는데, 나는 이제 또 이 퇴사 생활을 어떻게 버텨야 되나. 유난히 쓸쓸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