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구마 일기
느지막이 잠에서 깬다. 그리고 하품.
집이 유난히 조용하다. 아 참, 부모님은 여름휴가를 가셨지. 집이 비었다. 세 가족이 올망졸망 모여 지내던 이 좁은 집이 당분간은 온전히 나의 공간이라는 말이다. 먼저 보냈던 내 휴가는 흐지부지 사라졌다. 주말이 지나면 나의 일상은 언제나처럼 몰려들 테다. 그래도 집이 비었으니 아주 잠깐 동안 일상의 침입을 막아줄 나만의 집이 생긴 셈이고, 나는 이제부터 혼자만의 시간과 텅 빈 공간을 충분히 누리고자 할 뿐이다. 사흘, 딱 사흘이다.
어떻게 보낼까. 한참을 이불 속에서 뒹군다.
텅 빈 방에 혼자 누워있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 자취의 경험이 떠오른다. 옥탑방이었고, 항상 덥거나 추웠다. 옥탑으로 오르는 유일한 길인 철계단은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았고, 경사는 아찔할 정도로 급했다. 술이라도 먹는 날엔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고, 눈이나 비가 내린 날엔 마치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긴장감으로 겸손하게 올라야만 했던 계단. 내 작은 자취방은 그 계단 위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부엌과 연결된 원룸, 화장실 한 칸.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하고 샘솟았던 무한한 긍정. 밤이면 옆방의 코골이가 벽을 뚫고 와서 귓가를 두드렸고, 길게 누우면 머리와 다리가 각각 벽에 닿아 방의 넓이를 체감할 수 있었던 고시원을 벗어나 처음 구했던 나만의 공간이었으니까. (물론 진짜 집주인은 그 동네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지만.) 나의 경제적 한계도 기꺼이 긍정하며 꿈만은 무한히 꿀 수 있었던 곳. 옥상 위로 펼쳐진 높은 하늘로 언제든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보증금 300에 월세 30짜리 옥탑방. 좋아하는 숫자 3이 여러 번 겹쳐 왠지 행운이 깃들 것 같다고 막연히 기대했던 철부지 시절의 보금자리였다.
배고프다. 일단 밥부터 먹자.
슬기로운 자취생활의 주식은 야무지게 소분해 얼려 놓은 쌀밥과 엄마표 반찬, 혹은 계란을 풀어 후루룩 끓인 라면. 특식은 동네 식자재 마트에서 대량으로 산 깡깡 언 대패삼겹살이나 각종 냉동식품과 즉석식품들. 그런 음식들을 먹고살아도 급격히 살이 찌거나 건강이 악화되진 않았으니, 식품영양학계의 정설에 일침을 가할 수도 있었으려나. 가난한 자취생은 굶는 날이 많다는데, 나는 조금 예외였다. 물론 궁핍하고 가난했지만 (싸구려)의와 (부실한)식과 (낡은)주를 갖추고 제법 사람답게 살았었지.
든든히 밥을 먹고 해가 질 무렵이면 골목길의 소박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매일 저녁 조용한 골목길에 낯설지만 괜스레 정겨운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어느 집 낡은 대문 안쪽으로 사라지길 반복했다. 가로등은 은은하지만 충분히 안전하게 골목 곳곳에 불을 밝혔고, 사납게 생긴 고양이가 그 불빛 아래서 한가하게 발바닥을 핥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시간이 멈춘 듯 보이면서도 아주 미세하게 살아 움직이는 골목의 풍경과 새우깡 한 봉지를 안주 삼아 맥주 한잔 마시는 일이 잦았다. 집 안보다 집 밖이 더 좋았던 풍경 맛집이었다.
먹었으니 설거지를 하자. 빨래도 돌려야겠다.
설거지를 쌓아두면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를 날파리 손님들이 설쳐댔다. 게다가 싱크대가 좁아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한꺼번에 하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설거지를 미루지 않는 습관은 그런 사소한 불편에서 탄생했다. 부푼 배를 손으로 문질거리며 싱크대로 발걸음을 떼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웠고, 설거지를 끝내고 바닥에 널브러지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끼니와 다음 끼니 사이에서 온갖 번뇌와 인내와 쾌락이 들고났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먹고사는 일이 다 그랬던 거 같았다.
옥탑이라 햇볕이 강하게 들고 바람이 잘 통해 빨래가 금세 말랐다. 다행히 화장실에 옵션으로 딸린 통돌이 세탁기가 있었다. 낡고 오래된 세탁기라 빨래를 돌리면 보풀이 많이 생겼지만 입을 옷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빨래를 자주 해야 했다.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려 더 자주 세탁기를 돌렸는데, 장마철이면 빨래가 바짝 마르지 않아 옷에서 쾌쾌한 냄새가 났다. 그런 날엔 덜 말라도 냄새가 나지 않는 고오급(?) 섬유유연제로 어렵지 않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섬유유연제를 처음 썼을 때는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참 좋아졌구나!) 살림의 경험치가 쌓여 자취만렙에 가까워질수록 빨래 정도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세탁기가 알아서 해줬으니까. 다만 빨래를 널어놓는 일은 언제나 손이 많이 갔다. 경험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귀찮음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건조대에 엉성하게 빨래를 올려놓을 땐 엄마 생각이 자주 났다. 한 사람 몫의 빨래가 없어져 수고를 덜었을 텐데도 엄마는 내게 집에 자주 오라고 성화였다. 젠장, 그리고 이놈의 양말들은 꼭 하나씩 짝이 안 맞았다.
편하다. 평화롭다. 그런데 어쩐지...
낡은 나의 공간이 사람으로 채워지는 날은 늘 특별했다. 좁은 원룸은 시장에서 사 온 떡볶이나 직접 만든 파스타를 먹으며 지난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 되었고, 크리스마스에 빨래 건조대에 은은한 알전구를 걸어 놓고 와인을 홀짝이던 운치 있는 바가 되었고, 이미 술에 잔뜩 취한 친구들과 술을 잔뜩 사들고 들어와 속옷바람으로 널브러지던 곳이 되었다. 그 시절 대학생 자취방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내 방에도 꽤 많은 사람이 들고났는데, 든 자리는 항상 감당하기 어려웠고 난 자리는 언제나 허전했다. 대부분 하룻밤 정도를 지내고 돌아갔지만 가끔 장기투숙객들도 있었다. 서울에서 토익 학원을 다녔던 친구, 시험 기간 동안 밤을 새워서 공부하던 친구, 결혼 문제로 부모님과 다투고 집을 나온 친구까지. 문턱이 높지 않았던 내 방문 앞에 이런 글귀를 대문짝만 하게 써 붙였어도 괜찮았으려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너희들, 진짜 왔구나? 아멘...)
다세대 주택이라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이 여럿 있었다.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게 MZ세대의 미덕인지라 아쉽게도(?) 이웃은 이웃의 단계에서 머물렀을 뿐 이웃-사촌의 단계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내 옆방에는 티브이와 코골이 음성으로만 존재감을 어필하던 중년의 아저씨가 계셨고 ―이사 첫날 인사를 드린 이후엔 얼굴도 뵙지 못했다― 건물의 반지하 방에는 항상 대문 앞에 나와 비질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 한 분, 그 반지하 옆방에는 늘 술에 절어서 웃통을 벗고 계시던 다른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나의 이웃들은 평평한 땅에 안정적으로 발 디디지 못한 듯 보였고, 그래서 주로 하늘 높은 곳이나 땅 아래 낮은 곳에서 홀로 살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이 쓸쓸한 다세대 주택이었다. 나도 그곳에 모인 그들의 이웃 중 한 사람이었다. 어쩌다 마주치면 마른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서로에게 최선인 적당한 거리만을 내어주는 이웃.
몇 해가 지난 지금, 그곳은 다른 주인과 다양한 사람과 사랑과 쓸쓸함으로 채워지고 있을 테다. 그곳의 모습은 여전히 생생하고, 언젠가 그곳을 추억할 때면 기억해야 할 얼굴과 잊어야 할 이름이 오래도록 함께 떠오를 거다. 독립은 어쩌면 나의 한 시절을 공간으로 기억하는 방식이겠지.
필사적으로, 애써, 혼자를 즐기기.
잠깐의 회상이 끝나자 나는 다시 텅 빈 방으로 돌아온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먹고, 분위기 잡고 홀로 영화를 보며 맥주도 한 캔 마시기로 한다. (그런데 고른 영화는 고작 악마 숭배자가 나오는 오컬트 영화라니.) 혈기왕성한 학창시절처럼 은밀한 쾌락(?)도 즐길 수 있었을 테다. '나 혼자 산다'느니 하는 티브이 프로를 보며 요즘 다시 독립의 의지가 꿈틀거리던 터였다. 가난한 대학생이었지만 그때 참 재밌었지, 여전히 가난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좋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면서. 티브이에 나오는 것처럼 세련된 나의 공간을 상상했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무자비한 분리수거 더미나 3인 가족의 밀린 빨래나 쌓여있는 설거지가 없는― 그런 간섭의 부재와 무한한 자유를 꿈꿨다. 그런 삶이라면 충분히 행복할 테다. 행복하겠지. 행복해야 해.
그런데.
이틀이 지났다. 첫날처럼 무심하게 티브이 채널을 돌린다. 한 드라마에서 연인이 달콤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선 출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고 있다. 그리고 어떤 영화에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감당하는 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슬픔을 흘리고 있다. 그 순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지며 억눌렸던 묘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드러난다. 어쩌면 독립은 누군가의 부재, 내가 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만 남겨지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이제 혼자인 시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앞으로 몇 번의 이별 혹은 죽음을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나의 그리움과 상관없이 홀로 남겨질 수도 있을 거란 갑작스러운 슬픈 예감 때문일지도.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세상에 궁상도 이런 궁상이 없다. 혼자만의 시간도, 자유도 여전히 좋다. 다만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의 순간 이전까지는 살을 맞대고 눈을 맞추는 만남의 시간을 만끽해야 할 테다. 그래야 언젠가 이룰 나의 독립이 슬프지 않겠다. 그러니 함께하는 시간과 함께 있는 오늘의 공간을 마음껏 사랑하기. 그런 다짐을 한다.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혼자서 며칠을 굶주렸을 아들내미를 위해 먹거리를 한가득 사서 돌아오신 부모님이 눈물겹게 반갑다. 꼬리 치며 달려가 안기고 싶지만 다 큰 아들놈이 그러기엔 괜스레 쑥스럽고, 대신 약간은 무심한 척 인사를 건넨다. 잘 다녀오셨어요? 잘 다녀오셨단다. 그 인사가 너무 달달하다. 그러니까 지금 내게 독립은 개뿔이고, 대한 독립은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