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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y 05. 2020

어린이날 조카 선물을 준비하며

중요한 건 언제나 사랑

영화 <솔드 아웃> 스틸컷

아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를 그린 영화가 있다. 대략 25년 전 개봉한 이 영화는 무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터미네이터 같은 아빠도 자식이 원하는 것을 구하기가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 이 영화는 한국에서 '솔드아웃'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린 가족오락영화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겐 유독 뇌리에 남은 크리스마스 영화로 기억된다. 당시 갓 어린이를 벗어난 중학생이었던 나는 영화를 보면서 저 아빠가 뭘 그리 잘못했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식 앞에서는 늘 죄인이 되는 부모. 더 해주지 못해 안달인 부모는 한국에도 많다. 미국의 크리스마스처럼 한국에서는 어린이날만 되면 각종 선물 리스트가 검색어를 도배한다. 올해는 닌텐도 동물의 숲 에디션 때문에 마트 앞에 1,000명이 줄을 섰다고 한다. 일 년에 딱 하루 있는 날이니 아이들의 기대가 큰 것도, 그동안의 미안함을 선물로나마 대신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어린이날의 의미가 물질로 대체되는 것 같아 어딘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런데. 사실 나 역시 주말 동안 조카들의 선물을 열심히 골랐다. 7살 10살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이 얼마나 신날까 생각하면 되도록 만족할만한 선물을 하고 싶어 진다.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더라도, 선물을 받고 뛸 듯이 좋아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면 그냥 쉽게 넘어갈 수가 없다. 조카와 자식은 물론 다르겠지만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는 것만큼 어른들에게 힘이 되는 일이 또 있을까. 마음이 사르르 녹는 건 선물을 받은 아이들 뿐이 아니다. 터미네이터처럼 어렵게 선물을 구한 어른 역시 아이들의 웃음에 마음이 녹는다. 닌텐도를 구하려 마트 앞에 줄을 선 1,000여 명의 어른들을 쉽사리 비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내가 부모가 아니라는 점. 성대한 파티가 끝나면 공허함이 더 크게 몰려오듯, 매해 어린이날이 되면 설렘과 허무가 함께 들이닥친다. 조카들이 어린이를 벗어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해 한해 지나가 버리면 어떡하지.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신나게 쇼핑몰을 누비는 아이들과 그 뒤를 피곤한 표정으로 뒤쫓는 부모들의 모습마저 부러워 보이면 사실 답이 없다. 조카들 덕분에 짧은 순간 마주한 기쁨을 가슴에 품고 그저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그나마 가까이에서 챙겨줄 수 있는 조카가 있어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 최근에는 그 형태가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은 형태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와 그 속의 사랑이다. 아직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모습으로 가정을 꾸리지 못했지만, 그날이 왔을 때 온전한 사랑을 주려면 지금의 내 가족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을 안다. 내 남편과 친정 식구, 시댁 식구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조카들까지. 내가 속한 이 가정에 충실해야 내가 책임지게 될 아이에게도 충실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알고 소중하게 대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5월은 푸르고 어린이들은 자란다. 그리고 자라나는 그 어린이들 덕분에 어른들도 계속 자란다.

영화 <솔드 아웃>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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