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덕목 11. 감정(2) - 잘 울기

울어서 해결되는 것도 있더라.

by chalna

고장 난 눈물 밸브, A/S 요망.




어른의 덕목 11. 감정(2) - 잘 울기




너 어릴 때 얼마나 울보였는 줄 아니? 업어주지 않으면 그치지도 않았어.

아직도 엄마가 종종 하는 말이다.

그렇게 말랑하고 촉촉한 어린이였던 나는

생각보다 강인하고 건조한 어른으로 자라났다.

잘 안 울게 되었다는 뜻이다.





캔디처럼 울지 않겠다- 다짐한 것도 아니다.

그냥 눈물이 안 났다.

가족이 다쳤을 때도, 내가 다쳤을 때도 울기는커녕 덤덤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 이제 눈물타임입니다' 하는 장면을 만나도

아이고 노렸네- 하며 조소했다.

한해 보담아 키운 제자들을 졸업시킬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보여 원성을 샀고

직장에서 억울하게 오해를 사서 해명해야 했을 때도

화를 낼지언정 눈물이 나진 않았다.





뭘 울어. 울 일도 많다. 했던 게 내 생각.

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는데 에너지나 쓰고 머리나 아프지.

솔직히 자주 우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래? 싶었다.

피곤했다.






그러니 최근의 이 변화는 나에게 몹시 당황스러운 것이다.

눈물샘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돌릴 수 있는 녀석인 줄 알았지 나는.



진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는 거다.

드라마 보다가 별스럽지도 않은 장면에서 글썽(주인공이 남편을 만나 집에 가는 장면이었다.).

가족들이랑 이야기하다가 울컥(너 울어? 왜 울어? 하는 소리나 들었다.)

운전하며 노래 듣다가 엉엉엉...(발랄하기 짝이 없는 k-pop이었음을 고백한다.)



혼자 있을 때만 눈물이 났으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생후 몇십여 년 만에 고장 난 내 눈물샘은 TPO를 가리지 않았다.

동료분들과 이야기하다가 와르르 울고

학생들이랑 대화하다가도 후드득- 떨어질 뻔한 것을 겨우 삼켰다.



그러니 요즘 나는 언제 비를 쏟을지 모르는 꾸무룩한 하늘과도 같은 거다.

재난 경보. 예측이 어려운 스콜 동반.




나도 내가 왜 우는지를 몰랐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답답하지나 않지.

사실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은 매일 있는 거고

어느 날은 좋았다가 어느 날은 나빴다가 하는 건데.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상을 살면서, 이렇게 까지 쏟아낼 뭔가가 있다고? 나한테?





엊그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와 양치질을 할 때였다.

갑자기 왈칵, 울음이 터졌다.

조용히 흐르는 예쁜 눈물 말고, 진짜 좀 지저분하게 꺼이꺼이 터지는 울음.

칫솔을 입안에 넣어둔 채로, 으허헝 하는 이상한 소리까지 내면서 한참을 울었다.

다 울고 나서 콧물을 흥- 풀고, 거울로 벌게진 눈가를 보는데 어이가 없어서 웃겼다.

뭐 하는 건데 너?




아직도 내가 왜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아이같이 울고 나니까 시원했다.

뭔가 툭 터지면서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 느낌.


꾸역꾸역 담아두었던 지나간 상처들이나 감정들이 있었던가보다.

나는 다 컸고, 씩씩하고, 그러니 괜찮다 - 하는 되새김으로 지나쳤던.

사실은 나도 돌아보기 싫었던 상처와 흠결들이 있었던 모양이지.

그게 위태위태해서 자꾸만 터지려고 하고 흐르려고 했던 건가 봐.



그저 우는 것으로 그 사이사이를 씻어 내리고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참 다행이지.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하나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진 못해도

다 울만한 이유가 있으니 울게 만드는 거였다.

울어서 해결될 수도 있는 거였네.




그렇게 꺼이꺼이 울고 눈도 퉁퉁 부었는데 밥이 너무 맛있어서 어이가 없었다.

좀 운다고 내 입맛에 이상 없는 거 보니

더 자주 울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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