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TV <세문전 독서클럽>
회사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들과 열띤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정치, 종교, 사랑, 결혼, 자산,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의문이 떠오를 때면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문제들을 헤쳐나가는지 궁금해진다. 그때 민음사 TV에서 새롭게 시작한 <세계문학 전집 독서클럽>시리즈를 보게 되었고, 우리 회사나 여기나 똑같구나.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는구나, 하고 공감이 가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을 배우기도 했다. 현재까지 총 3편이 나왔는데, 각각 '사랑', '불안', '자의식'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기에 간단하게 감상문을 적어보고자 한다.
1
사랑
<오만과 편견>: 사랑이란 무엇일까
1)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2) 오만과 편견에서 나와 닮은 캐릭터는
3) 나는 '오만 파'인가 '편견 파'인가.
4) 나는 '성숙해지는 연애'가 더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미숙해지는 연애'가 더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5) 결혼은 사랑인가 현실인가.
6) 결혼에 있어서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문전 독서클럽을 보면서 너무 공감 갔던 지점은, 우리 회사에서 늘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논쟁과 토론이 이 영상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이었다.ㅎㅎ 아마 요즘 인터넷 속이나, 현실 속이나 가장 화두가 되는 주제가 '결혼'일 것이다. 미디어에서 하도 한국의 출산율이 심각하다는 말을 내보내더니, 이번엔 출산율? 그럼 결혼은? 하고 통계를 찾아보니 30대 연령 중 결혼한 비중이 50%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국가가 이번엔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줄기차게 내보내고 있다. 점점 결혼을 하려고 하는 비중과 출산을 하고자 하는 비중을 왜 줄어드는 것일까. 민감하지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 주제가 <오만과 편견>이라는 고전소설을 파헤치면서 하나씩 드러난다.
우선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속에 순수함이 사라졌다는 걸 느낀다. 사랑하면 떠올릴 수 있는 풋풋함과 순수함을 간직하고자 노력하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회사에서도 항상 이 이야기가 화두가 되는데, 사랑을 논하면 뒤따라 오는 것이 '경제적 능력'이다. 이 고리의 연쇄를 끊고 싶어도 수많은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언제나 여건을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이젠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 경쟁구도가 우리 삶에서 언제까지 발목을 잡는 것이고, 언제까지 부추기는 건지 속이 쓰려지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청년 세대들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이런 고리에 대한 반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부터 좋은 성적, 좋은 대학에 대한 압박이 이제는 좋은 결혼, 좋은 미래에 대한 레일로 끝없이 이어지는 것에 지치기도 하고, 언제까지 완벽성에 갇혀지내야 하는 거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결혼 후 시작이라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좋은 부모,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가족, 멋진 집과 자산, 시댁과 친정에 대한 배려, 등등에 대한 압박이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다. 그 체크리스트를 모두 완성해야 한다는 미래에서 벗어나 자유를 선택한 게 요즘 청년들인 게 아닐까. 자유를 잃을 것에 대한 불안, 그리고 책임감을 완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 현시대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민음사 티비 속 편집자들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여러 가지로 말하기 시작한다. "계속 도전을 받는 기분인 것 같아요. 성숙한 나를 만나는 적극적인 참여 과정인 거죠. 나는 여기까지는 되는 사람이지만 여기까지는 안 되는구나, 하면서 계속 서로와 나를 시험해 보는, 그래서 세계와 나의 접점, 관계성을 획득해 간 것 같거든요."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결혼과 사랑은 현실과 판타지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현실적이거나, 너무 환상적이면 사랑을 잃고 마는 게 아닐까. 현실이라는 지점은 부와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자산은 영원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이만한 자산이 있더라도 예기치 않았던 사건에 의해 자산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고, 자산보다 더 큰 상실감이 두 사람에게 찾아올 수도 있다. 그때 끼어들어야 할 현실은 책임감이다. 믿음과 의지, 책임감, 헤쳐나갈 수 있는 정신력, 해결 능력 같은 게 더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듬직한 사람', '현명한 사람'일 것이다.
얼마 전, 회사에서 두 동료가 나눈 이야기가 흥미로워 나도 참전을 하게 되었다. 이제 곧 결혼을 앞둔 90년대 생 남성 동료 C 님이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딩크족으로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미 아내와도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었고, 물고기와 고양이를 키우면서 살아가기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여기에 우리의 금쪽이 81년생 남성 B팀장님이 참전을 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해! 나도 안 그랬는데 아이 얼굴 보면 좋고~ 이게 나중에 나이 들 때는 어떡하려고~ 그러지 않으면 결혼을 왜 해~"라며 말을 쏟아냈다. 그러자 C님은 "아이 팀장님이랑 우리랑 달라요~ 일단 저희는 생존이 먼저라니까요. 저희도 제대로 자리 잡는 게 먼저인데 아이를 낳는 게 먼저가 되지 않아요."라고 하면 "어휴 그래~ 맞아~ 알아서 해야지 내가 또 뭐..."라고 물러서시는 것 같더니 "아니 그래도 생각해 봐!"라며 외쳤다. 두 사람을 절대로 의견을 굽히지 않아 약간이 설전이 일었다. 나도 지켜보다가 "아 팀장님도 마흔 살에 결혼했으면서~!!! 왜 맨날 우리한테 결혼하라 그래요! 팀장님 맨날 힘들다는 이야기만하면서! 에베베"라고 외치며 참전했다ㅋㅋㅋㅋㅋㅋㅋ 그러자 곧바로 "챔 팀장! 내가 맨날 맨날 소개팅하라고 했지!! 친구들 소개팅 받으라고 했지! 많이 만나야 한다고!! 내가 해준다니까!"라며 외치셔서 세기의 금쪽이 대결은 확산 되었다.
매번 이렇게 세기의 금쪽이 대결이 펼쳐진다. 한 쪽에서는 '이래라, 살아보니 이게 맞다!'라고 외치면 다른 쪽에서는 "싫은데용용구리구리~~"라며 절대 굽히지 않는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말들 저변에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깔려있어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면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동안 옥신각신하다가 꼭 마지막엔 지는 척일지몰라도, 져주시기 때문이다. "그래그래 챔팀장 마음이 중요하지.“ 하면서 말이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꼭 결혼을 늦게 한 사람이, 아직 아이가 없는 사람이,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에게 훈수를 쉽게 두는 것일까.(아마 B 팀장님에게도 내가 막내 조카이자 금쪽이일 것이다ㅎㅎ) 정작 자신도 현실에 허우적거려 무엇이 정답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닌 시대에서 우리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선택하면 안 되는 것일까? 왜 자꾸 그것이 문제인 것 마냥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일까. 누군가가 떠밀어서 한 선택이 결코 자신의 행복이 될 수 없는걸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두 동료의 설전은 신기하게도 '운명'과 '진심'으로 끝맺음이 되었다. 앞서서 '부동산', '주식', '교육비', '자금', '출산율', '우리나라 망했다.'로 이어가던 단어들이 마지막에 이르렀을 땐 "운명을 믿으세요? 그래도 전 운명을 믿어요. 아내랑 어떻게 이렇게 잘 맞을 수 있냐고 맨날 그래요."라는 말과 "그래, 그래도 가난할 때부터 같이 힘듦이나 역경을 다 헤쳐나가면 끈끈해지지. 그 의리는 절대 못 꺾지."라며 끝이 난 것이다. 갑작스러운 평화협정에 나는 어리둥절하면서 두 사람의 내면을 엿보게 되어 깜짝 놀랐다. 그렇게 두 남자 동료가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음에도, 결국 마음속에서 두 사람이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운명과 진정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매번 내게 '남자 보는 눈'과 '시장 논리'를 이야기했던 팀장님도 결국 '진정한 사랑'이라는 개념에서 눈을 감았다. 그건 녹록지 않다며, 그게 있을 것이냐며 매번 다그치는 말들이 결국 자신들의 바람이 너무나도 작아질까 봐, 현실 앞에서 그런 단어를 꺼내는 것이 우습게 보이고 상처를 받을까 봐 아끼고 또 아꼈던 것아닐까. (진실은 모른다)
그만큼 사랑을 지켜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걸 알기에 모두가 선택을 조심스러워한다. 나의 미래와 상대방의 미래를 위해. 하지만 민음사 영상에 나왔던 말처럼 모든 사랑은 '미숙한 사랑'에서 시작해서 '성숙한 사랑'으로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내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고, 상처받고, 다시 인지하고 나아가는 게 우리가 오만과 편견에 나왔던 인물과 우리에게 품고 있는 바람 아닐까. 현실과 지적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나름의 보금자리를 꾸며나가는 것.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라도, 그것이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2
불안
<체호프 단편선>: 불안에 대하여
1) 내가 불안해하는 순간은?
2) 내가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3) 진부함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진부함이 주는 불안의 원인
4) 나만의 불안 해소법은?
두 번째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언제 불안을 느끼는가. 사실 개인적으로는 불안도가 크지 않은 편이다. 그렇기에 담대한 도전을 서슴없이 한다. 스카이 다이빙이라던지, 번지점프하던지, 귀신의 집도 잘 들어가고, 혼자서 며칠씩 해외여행을 간다든지,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지고, 일상 속에서도 '내가 불안하다.'라고 느낀 적은 손에 꼽는다. 그럼에도 불안을 언제 느끼냐하면, 불확실함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 내 자유를 잃게 될 순간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영상에서 각자가 느끼는 불안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중 계획에 대한 말이 가장 공감이 갔다.
"전 일할 때 불안도가 높은 스타일이거든요.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없을 때가 불안해요. 일정 체크하고 노티를 이렇게 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덜 불안한 거예요." 이 말을 듣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겹쳐 보였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그리고 하나하나 내가 확인을 해봐야 하는 것. 사실 이 부분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영상에 나온 편집자님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지만, 낮음에도 종종 밀려오는 불안감에 다이어리와 계획표를 짜곤 했었다. 그 시절이 40% 정도의 불안감이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15% 정도가 된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모든 일든은 결코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삶이라는 건 원래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직업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직업에 덕을 본 셈이다. 페스티벌이나 공연을 기획하면서 이런 큰 이벤트는 결코 작은 거 하나 내 통제 아래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펑크가 나면, 그걸 그 순간에 수습해야 했기에 계획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간의 순발력과 대처능력 역시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가장 크게 도움이 되는 건 차분함과 침착함이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 그리고 심호흡 한 번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 이걸 회사 동료이자 선배들이 내게 알려주었다.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알려주되, 실수는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영상에서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말은 불안을 다른 말로 치환하면 사랑이라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그 사람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한 편집자님은 "내가 00씨가 맨날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쓰고 막 길을 걸어가는 거야. 그러면 차들이 빵빵거려도 못 들을 수 있잖아. 그래서 내가 조심하라고 길에서 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요. 어른인데, 엄마처럼. 그런데 순간 아 내가 너무 이 사람을 아껴서 그러는구나, 란 생각이 들더라고요."라고 덧붙이는 것이다. 불안은 사랑과 비례해서 커지는 게 아닐까. 내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면 일상과 삶을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것일 테고, 논문을 몇 번을 고치는 이유는 내가 그 학문을 사랑해서 그러는 것일 테고, 일 처리에 있어서 강박적으로 들여다본다면 그 일을 너무 잘 해내고 싶어서, 사랑해서 그러는 것일 테다.
그 말을 들으니 어쩌면 내가 불안함을 느끼는 것과, 견디는 것은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불안함을 알면서도 기꺼이 견딜 정도로 선택한 그 사랑의 크기'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자유도를 잃을까 봐 걱정을 하는 것만큼 나는 삶에 있어서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도 주말에 훌쩍 국내 여행을 간다거나,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 그런 것들을 정말로 사랑한다. 그 크기 또한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클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럼에도 내 자유를 기꺼이 어느 정도 반납하고 인내하는 것, 내가 예측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인내한다면 그만큼 무언가를 사랑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만큼 예측되지 않는 미래, 언제, 어디서, 몇 시에, 무엇을 할지 약속받지 못하는 상황을 싫어한다. 누군가와 여행을 가거나 약속을 잡아야 한다면 구체적으로 잡아야 그 외의 시간에 내 자유가 생기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와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백을 만드는 것.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그들을 위해 한구석에 여백을 만들어둔다면 내가 그들을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리라.
이번 포스팅에 동료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더 꺼내보자면, B팀장님은 나보다 불안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남들 '눈치'에 대한 불안도가 높으시다. 이 이야기 역시 우리끼리 끊임없이 나누는데 항상 B팀장님은 "왜 나는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지? 하 그냥 일적인 이야기만 해도 되는데 나는 꼭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또 그걸 신경 쓰니까 나도 모르게 반영하는 것 같아. 피곤하고 예민한 성격이야 정말."이라며 자책을 하기도 하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내가 상대방은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냥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시라고 하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선택을 하신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쩌면 B 팀장님은 나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른 면에서 더 깊이 애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개인과의 깊은 생각을 공유하는 걸 애정한다면 B 팀장님은 군집, 거대한 집단과의 교류를 애정하는 것이다. 불안은 내가 무엇을 사랑한다는 걸 고백하는 행위와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