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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Jul 17. 2020

목을 지키느라 목이 바빴다



목을 지키느라 목이 바빴다

 

비둘기가 음식물쓰레기 위에 앉았다

노란 봉투를 꽉 움켜잡고

날갯짓으로 중심 잡고

눈치를 살피다가

터진 비닐 옆구리 속으로 머리를

넣다 뺐다 넣다 뺐다 넣다 뺐다

빠져나온 닭의

어느새 둘러싼 비둘기의 목들

목뼈에 붙은 살은 고갯짓 몇 번에 흩어졌다 사라졌다

꾸륵꾸륵 울면서 목을 늘리고 몸을 늘리고

쫓아내고 쪼아대고 치대다가

목뼈는 반으로 부러졌다

뼈만 남은 목은 앙상했다

비둘기 부리엔 발가락에 묶인 실 같은

고춧가루가 묻어있었다


목을 지키느라 목이 바빴다

어쩐지 나와 다를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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