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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 레터를 받다

사회인으로의 첫걸음을 다시 시작하다

미국에 도착한지 벌써 5일차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한밤중에는 정신이 멀쩡해지고, 해가 뜨면 눈뜨기가 어려운 생활을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시차가 바뀌면 생체 시계가 하루에 1시간씩 점진적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그 말에 동감합니다. 저는 퇴직자이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 그 생체시계를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생활을 할 생각입니다.


오늘은 플레이오프 2차전이 있던 날로, 제가 30년 넘게 응원해 온 팀이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느냐 여부가 너무 중요한 경기였기에 새벽부터 아침까지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아쉽게 패하긴 했지만 상대팀이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기에, '이번에는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말아야 겠구나'라는 마음 가짐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늘 좋은 일만 있다면, 그것 또한 재미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와이프가 차려 준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역시나 졸음이 무겁게 밀려왔습니다. '그래, 1-2시간만 자면 다시 정신이 멀쩡해 질거야.'라고 생각하고 침대에 눕자 안락한 피곤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눕는 모습을 보자 우리 강아지도 내 옆에 와서 눕고 최적의 수면모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내면의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렇게 보장된 직장을 퇴직하고서, 앞으로 네 미래가 온전 할 것 같아?"

"네 가족은 어떻게 돌보려고 하는데? 이게 진정 네가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해?"


그리고는 잠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상하게 몸이 개운한 느낌이 들었지만, 한가지 너무나도 확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메일을 확인하면, 뭔가 특별한 소식이 있을거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였습니다. 거기에는 한달 전 지원하고 면접을 봤던 회사로부터 오퍼 레터가 있었습니다.


"오, 주여!"


과거를 떠올려보면 이런 경험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제가 퇴직한 대기업을 처음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던 19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2년 반의 고시생으로서의 생활을 접고 취업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같이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가 오늘 대기업 인사 담당자의 캠퍼스 투어가 있는 날이니 같이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우연치 않게 대기업 인사팀 간부와 즉석 면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른 바 진로 컨설팅 이었습니다.


"저는 얼마전 귀사에 지원을 했고, 필기시험을 쳤으며, 지금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깐 기다려 보게. 내가 바로 확인해 볼테니."


그리고 그 간부님은 인사팀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분과 약 1분간 통화를 하였습니다.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 분은 통화를 마치고 웃음을 머금고 말씀하셨습니다.


"축하하네! 합격이네!"


그리고 저는 대한민국에서 매출이 제일 큰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입사 할 할수 있었습니다. 입사 후에 그 인사팀 간부님을 찾아가 뵈었지만, 저를 딱히 인상 깊게 기억하시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설렜고 행복했습니다.


저는 지금 그때와 비슷한 새로운 출발선에 온 것 같습니다. 나의 앞에 어떤 힘든 여정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들을 생각하면 아직 설레고 즐거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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