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뒤도 없이 돌아서 한국을 떠난 후 도착한 호주의 작은 도시 브리즈번에서 1년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 특성상 1년간 취업해서 일을 해도 되고 여행을 해도 되고 어학연수를 할 수도 있었다.
20대 초반에 첫 사회생활을 하며 겨우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모았던 돈으로 1년의 생활을 해야 했기에 나는 반드시 일을 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벌어야만 했다.
영어라고는 인사말 한마디도 떨려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내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언어 공부였다.
한국에서 이미 어학원 등록까지는 해두고 갔었기 때문에 도착 직후 3개월 간의 일정은 정해져 있었다.
최대한 돈을 아끼며 3개월간 언어 공부를 하고 어학원 수업이 끝나면 몇 달간 일하며 돈을 모아 한국에 들어가기 전 한두 달 정도 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것이 내 목표이자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3개월간 생활하는 동안에도 돈을 잘 아껴 써야 했고 거의 매일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정해진 상태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나름 즐거웠다.
외국이라는 곳은 처음 가보는 것이었고, 그것도 짧은 여행이 아닌 1년간의 생활을 위해 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고 걱정이 됐었지만 생각보다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과는 다른 풍경과 낯선 도시의 모습, 생김새가 다른 외국 사람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는 점이 오히려 나를 짓누르던 기억과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특히 어학원에 가면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매일이 새롭고 신기한 느낌이었다.
학생들의 언어 수준에 맞추어 클래스가 나뉘어 있었지만 매주 새로운 사람이 들어가고 나가는 곳에서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새롭고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남자와의 만남과 스킨십이 여전히 불편하고 어려웠던 나에게 세계 각국의 문화는 낯설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남녀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대학 생활과 1년간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자들과 같이 지낸 적이 있다고는 해도 남자라는 존재는 나에게는 늘 불편하고 거리감 있는 존재였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튀어나온 뒤로는 모든 남자들이 불편하고 싫어지기까지 했었다.
사회생활을 위해 적당한 관계는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남자라는 존재에 대한 불편함을 숨겨야 하는 것 때문에 더 딱딱하고 친절하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던 나였다.
하지만, 만나면 악수와 포옹을 하는 것이 인사인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고 심지어 나중에는 가볍게 볼에 뽀뽀를 하는 것이 인사라며 알려주는 이탈리아 친구와는 그 인사 때문에 매일을 싸우면서도 매일 새롭게 인사법을 교육받는 친구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단순히 언어뿐만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워가며 교류하는 것에 흥미로워했고 언제나 서로를 알아가고 배려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한국인 친구들 역시 서양인 친구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법을 알려 주기도 하고 한국어로 인사말을 알려 주기도 했었다.
나 역시 이탈리안 친구에게 한국식 인사법과 인사말을 교육시키고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지만, 오늘 한국식 인사를 하면 내일은 이탈리아식 인사를 하거나 아침에 한국식 인사를 하면 저녁에는 이탈리아식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친구의 지론이었다.
그냥 차라리 서로 인사를 하지 말자는 내 말에도 매일 같이 일부러 더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던 그 친구는 아마도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유난히 스킨십에 대해 불편해하고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내가 재미있어 더욱더 나와의 인사법에 대해 집요하게 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내가 불편해하는 행동을 매일같이 서슴없이 하던 친구였지만 그 친구가 싫거나 한국에서처럼 남자로서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나에게 이성으로서의 어떤 불편한 행동이나 감정을 보였다면 당연히 혐오스러울 만큼 거부감을 나타냈겠지만, 그 친구의 말처럼 본인의 나라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에 사심 없이 그저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보다 7살이 많았던 그 친구는 조금씩 더 가까워질수록 여자와 남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늘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처음엔 나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이 있는 건가 아니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가끔은 장난을 치거나 우스꽝 스러운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는 그 친구가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가끔은 그런 모습에 실소가 터지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과 정신없이 웃기도 했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친구가 나에게 ‘네가 웃는 모습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감정을 숨기는 것 같은 모습이 안타깝고 그 나이에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면서 진심 어린 조언과 위로를 해주는 친구 때문에 하마터면 그 앞에서 눈물을 쏟을 뻔했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한국말로 ‘나는 오빠. 멋있어?’ 하며 장난을 치는 바람에 눈물이 쏙 들어가긴 했지만, 그저 한두 달 지내고 마는 어학원에서 만난 딱딱하고 차가운 동양 여자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위로를 건네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서로 부족한 영어 실력임에도 손짓과 발짓을 동원해서라도 나에게 그 말을 전하는 그 사람에게서 나를 여자로 생각하거나 어떻게 해보려는 느낌보다는 그 사람의 말처럼 오빠로서 인생 선배로서 전하는 진심이 느껴졌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남자라는 사실보다는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한 사람이라는 것이 더 먼저 보이기 시작했고, 그 친구가 원하는 이탈리아식 인사를 하는 것도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친구들과도 친구 사이에서의 가벼운 스킨십은 불편함 없이 편해지기 시작했고, 그 외에 다른 남자인 친구들도 남자와 여자의 구분보다는 그저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인식하며 편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보다 늦게 같은 클래스에 들어온 일본인 친구 역시 남자라는 것보다는 친구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할 수 있게 해 줬다.
일본인들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늘 배려가 몸에 배어 있었고, 영어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지만 늘 간단한 단어로도 나에게 칭찬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 친구의 간단한 칭찬과 고마움은 늘 내가 중요한 사람이고, 대단하고 친절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해 주었다.
수업 특성상 파트너와 함께 진행되는 내용이 많았는데 우연찮게 그 친구와 내가 거의 항상 파트너가 되었고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친구는 늘 나에게 ‘네 덕분이다. 네가 잘해서 그렇다. 네가 도와줘서 할 수 있었다.’는 등의 표현을 해주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친구가 더 많이 하고 더 잘하는 것이 많았음에도 늘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고 잘한다고 칭찬했었다.
그 친구와 수업을 같이 듣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늘 수업내용 외는 별로 말도 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와 처음 파트너가 되어 수업을 할 때도 나는 수업 내용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별거 아닌 일에도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 친구에게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간단한 인사와 고마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 외에도 편하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차분하고 조용한 친구의 성격처럼 그 친구와 대화하는 것이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 그 친구의 성격 덕분에 그 친구 역시 남자라는 사실보다는 편안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 친구가 좋아하는 다른 클래스의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하며 내가 도와주겠다는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누기도 할 만큼 편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편하게 인사와 대화를 나누던 어느 날 그 친구가 갑자기 ‘그래, 넌 친절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 라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였다.
그 친구는 대화를 하다가 별거 아닌 듯 혼잣말처럼 했지만 나는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처음의 내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탈리아 친구의 조언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며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사람인지 잘 알았기 때문에 그 친구의 말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인간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배려해준 그 친구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다른 한국인 친구들이나 여자 친구들도 고마운 순간이 많았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남자에게 유난히 불편함이 드러났던 나에게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진심 어린 인간적인 마음으로 다가와 주고 위로해 줬던 두 친구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어느새 나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아닌 사람과 사람 자체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 모습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차츰 외국에서의 생활을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적응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한국에서의 기억은 점차 사라지는 듯했고 호주에서의 생활에 집중하고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