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교감 일기 11화

교감, 책으로 버틴다!

by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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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책을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첫 해에는 걸음마 수준이었다. 두 번째 해에는 100권을 목표로 두고 실천했다. 세 번째 해에 드디어 100권을 넘어 200권 목표를 눈앞에 두었고 네 번째 해에 그야말로 200권을 달성했다. 그렇게 해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나는 자투리 시간을 거의 독서에 쏟았다. 걸어가면서 책을 읽을 때도 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읽었고,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신호등에 대기할 때에도 읽었다.


책을 읽고 기록을 하면서 나타난 현상은 자신감이었다. 교직과 관련된 전문 서적도 읽었지만 대부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기에 다양한 분야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특히 교감이라는 직위에서 교사들에게 뭔가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는 역할이 책이었다. 책 읽는 교감, 서평 쓰는 교감, 책 선물해 주는 교감 등 책을 매개로 선생님들을 만나고 글을 쓰고 책을 보면서 쉼을 얻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야말로 교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책이 주는 힘인 것 같다. 책은 좁은 시야를 틔워 준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알려 준다. 갇힌 생각을 깨뜨려준다. 꼭 필요한 정보를 만나게 해 준다. 깊이 있는 지식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교직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게 하는 자신감을 얻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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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독서가였다!


세종대왕, 정조, 이순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맞다. 모두가 지독한 독서가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세종대왕은 같은 책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고 아버지 태종이 아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책을 치워버린 적도 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해온다. 정조다 마찬가지다. 왕권 강화를 위해 본인이 할 수 있었던 점은 오직 '독서'밖에 없었다. 규장각을 통해 정책을 이끌 인재를 키워냈고 그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왕 스스로가 학문탐구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순신은 어떤가? 무인의 길을 걸었지만 중국에서 기록된 병법에 통달할 정도로 독서했다. 난중일기에도 이순신의 독서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쟁 중에도 그는 책을 읽었다. 나폴레옹도 전쟁 중에 책을 읽었다고 전해 온다. 명장 이순신은 청소년부터 학문을 닦고 책을 읽었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독서의 힘이 거북선이 생각나게 했다!


거북선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전까지 조선 땅에는 큰 전쟁이 없었다. 모두가 안일하게 생각했고 바다를 지키는 수군의 장비들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전란의 기운이 감돌자 동네 형이었던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사로 파격승진을 한 이순신은 심상치 않은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고 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병법과 전쟁서를 읽어왔던 그는 거북선이 사용되었던 점을 알고 바로 건조에 착수한다! 완공은 바로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이었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이순신은 기록의 달인이었다!


기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전쟁 중에도 일기를 남겼고 전투 성과를 왕에게 보고하는 장계에 부하들의 공적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해 올려 보낸다. 부하들의 사기 진작과 공과실을 분명히 하겠다는 원칙적인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을 따르는 이들도 그의 철저한 기록 습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 중에 적의 머리만 챙기겠다는 알량한 이기심을 버리고 한 명이라도 조선의 포로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전투집중력을 잃지 아니하였다. 심지어 노비의 이름까지도 기록에 남겼다. 조선을 통틀어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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