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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고살롱 Dec 15. 2021

나의 우주를 만든 수많은 관계들

[스토리 살롱] 최은영 소설 <밝은 밤>

창고살롱 시즌3 세 번째 스토리 살롱 작품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었어요. 


서른두 살 지연은 이혼 후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도시 ‘희령'으로 떠나요. 그곳에서 지연은 이십 년 만에 할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자신과 꼭 닮은 증조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서사와 연결돼요. 


모계를 중심으로 한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 시즌1 스토리 살롱 작품 <시선으로부터>(정세랑)가 떠오르기도 하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근현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시즌2 스토리 살롱 작품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박완서)가 자연스레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가계도를 그리며 봤다"는 분이 있을 정도로 4대에 걸쳐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몰입력 있는 묘사 덕분에 캐릭터 한 명 한 명 푹 빠져 들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어요. ‘창고살롱’ 덕분에 한국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는 분, 엉엉 울면서 봤다는 분도 많았어요. 



최은영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에 대해 “자기 자신을 좀 다정하게 바라봐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면서 “지연이도 결국은 자기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기억하고 그것을 통해서 또 자기를 이해했으면 좋겠다"(<독서신문> 인터뷰)는 바람을 전했는데요. 살롱지기 현진은 “이번 시즌 주제가 ‘멈추면 알게 되는 것들'인데 레퍼런서 멤버들도 이 책을 통해 잠시 멈춰서 나를 구성하는 관계, 나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며 책 선정 이유를 설명했어요. 



창고살롱에서는 줌 모임인 스토리 살롱을 앞두고 사전/사후 과제가 있는데요. 사전 과제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혹은 장면과 그 이유에 대해, 사후 과제에서는 스토리 살롱에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쓰기 과제를 해요. 


창고살롱 전용 슬랙에 올라온 사전/사후 과제와 스토리 살롱에서 나눈 대화를 정리해 봤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 혹은 관계는?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 혹은 관계는?  
    지금의 나를 만든, 나를 구성하는 관계는?


달이 은은하고 따뜻하게 떠오른 밤. 살롱지기들이 사전 기획회의에서 준비한 ‘구조화된 질문'과 함께 소그룹으로 대화를 나눴는데요. 이번에는 레퍼런서 은진님이 도움지기로 함께 해주셨어요(감사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 혹은 관계에 대해서는 주인공 지연의 증조모인 ‘삼천'과 우정을 쌓았던 ‘새비 아주머니'의 관계를 언급해 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레퍼런서 혜선님은 새비에게 ‘서럽다고 말하지 말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말하라'고 했던 삼천의 말을 인용하면서 “저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한 인생이다 싶었다"며 “나에게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서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했고요.

레퍼런서 려진님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버리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 내가 거쳐온 시간 속 수많은 나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 근데 어디 그게 쉽나요?”라면서 “혼자서는 그게 벅찰 때, 내가 돌봐주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 봐주는 동무는 얼마나 소중한지요"라는 감상을 남겨주셨어요.


창고살롱의 단골 주제인 ‘엄마-딸 관계'에 주목한 분들도 있었어요. 작품 속에서 지연과 엄마는 자꾸만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게 되는데요. 레퍼런서 은애님은 책을 읽으며 ‘엄마가 그때 나를 좀 다르게 대해줬다면…’ 아쉬움이 들었던 기억을 소환하며 엄마와의 관계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이야기했어요.


“그 덕에 제가 엄마가 된 이후로는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을 거의 ‘-했구나~?’로 읽어주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아요. 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려고 노력하다보니 스스로의 감정도 품어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레퍼런서 은애님


두란님은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좋다, 행복하다, 만족스럽다, 같은 표현을 하면 증조모는 부정 탄다고 경고했다”는 문장에서 “너무 기대하지 말고, 좋은 일도 너무 크게 좋아하지 마"라고 자주 말하던 엄마를 떠올리기도 했어요. 두란님은 “나는 지금은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항상 불안했다"면서 “한때는 ‘일희일비 하지 말자'를 마음에 새겼다면 지금의 나는 일희일비 하기로 했다"고 현재의 삶의 태도를 전했어요. 


“뛸듯이 기뻐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더이상 밉지 않을 때까지 미워하고, 작은 것 하나까지도 좋아하기로.” -레퍼런서 두란님


써니님은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 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라는 책 속 문장을 인용하면서 자신 역시 “엄마 이런 선택을, 이런 말을 하게 하는 것들을 헤아려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어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낀다며 “미선이 그랬듯이, 지연이 그랬듯이 엄마에게 거리를 두는 게 저도 저를 지키는 방법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어요.


소설 속 지연은 엄마 미선과 이십 년 넘게 연락을 끊고 지낸 할머니로부터 생각지 못했던 위로를 얻는데요. ‘엄마와의 관계가 어려운 K-도터'를 위한 소모임 살롱 준비 중인 레퍼런서 지안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어요. 


“어째서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가장 상처받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째서 타인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새비 아주머니와 증조모처럼요. 할머니와 명숙 할머니로부터… 좀 복잡하지만 할머니와 희자처럼, 혹은 지연이 가장 힘들 때 아주 오랫동안 못 본 할머니로부터 위안을 얻는 것처럼 말이죠. 지연은 미선과 화해할 수 있을까요?” -레퍼런서 지안님 


지연의 할머니 영옥와 명숙 할머니의 우정도 인상 깊은데요. 리사님은 “붉은 양장의 로빈슨 크루소 제일 앞장에 뾰족한 정자로 쓰여 있던 명숙 할머니의 편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이 부분이 왜 가장 마음에 남았을까 생각해보니 주인공의 할머니(영옥)와 가장 남에 가까운 인물이어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온 인물 중 가장 외롭고 기댈 곳 없던 인물이라서가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어요.


“정이 줘본 적이 없어 어찌 정을 줘야 할지 몰랐던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 그래도 영옥에게 평생 먹고 살 기술을 무심한 듯 가르쳐 준 사람. 때로 진정한 위로는 거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레퍼런서 리사님


화자인 지연에게 공감한 분들도 있었어요. 지연은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에게 모진 모습을 보여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며 살았다고요. 


‘필요한 건 모두 내 안에 있어'라는 주제로 시즌3 첫 번째 레퍼런서 살롱을 진행했던 찬이님은 “완벽주의, 성취 지향적인 성격.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성격을 묘사한 부분에서 너무 제가 하는 이야기 같아서 공감했다"고 남겼어요.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중략...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밝은 밤> 중에서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와 연결된, 나를 통과한 여러 인연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두 번째 질문인 ‘지금의 나를 만든, 나를 구성하는 관계'에 대해서는 남편, 엄마, 아빠 등 가족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 직장 동료, 친구, 이웃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어요.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사후 글쓰기 과제를 했는데요. 레퍼런서 은진님은 어두워지는 해변에서 지연의 엄마, 미선을 불러주고 찾아주던 증조모를 보면서 여동생의 딸인 조카 생각이 났다고 했어요. 


“자식한테는 욕심도 자꾸 생기고, 불안한 마음도 있어서 마음껏 수용해주기가 쉽지 않은데 이모와 조카 정도의 거리라면 그걸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 조카에게 뭐든 다 들어주는 사람, 수용해주는 사람, 부모에게 못하는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이모가 되어 주고 싶어요. 조카가 저를 떠올리면서 '내게 누군가가 있다'는 마음이 들면 참 좋겠네요.” -레퍼런서 은진님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타인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싶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혜진님은 “아픈 사람들, 힘든 사람들, 무너져 있는 사람들이 확대되어 보이고 자꾸만 마음이 간다"면서 “삶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문제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어깨를 내어주고 싶다"고 전했고요. 


순간님은 “아이를 낳고 나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공감 능력이 자랐던 것 같다"면서 “앞으로 내가 만나는 많은 인연에게도 조건 없는 지지를 건네고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또 누군가에게 기댈 어깨를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이라고 남겨줬어요. 


기업에서 인사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효정님은 지금까지의 일 경험을 살려 “다른 사람들의 커리어 확장 혹은 새로운 일을 찾아주는 ‘이음새'로서 어깨를 내어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고 했고요. 


“힘들 때 가족에게조차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 했다"는 박정은님은 “혼자 이겨내려고 버티면서 깨달은 것은 ‘있는 그대로,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여주자 였다’”며 다음과 같이 다짐했어요.


“옳고 그름의 판단을 얹는 것이 아닌, 그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를 해주고 용기가 필요하면 용기를 주고 그냥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면 들어주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글 쓰는 이 순간에 다시금 다짐하게 되네요. 누군가가 나의 귀가 필요하다면 내어주고 나의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면 내어주는 사람이 되자 라고 말이에요.” -레퍼런서 박정은님 


“늘 조력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레퍼런서 종은님은 최근 창고살롱 소모임으로도 선보였던 ‘그림책 테라피' 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어요.  


“그림책 테라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은 이유가 가장 큰데요.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면 어느덧 술술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꺼내 보이면서 스스로 치유를 시작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거든요. 사람들에게 그림책이라는 조약돌을 던지면서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퍼런서 종은님


레퍼런서 르네홍님은 ‘나'에게 먼저 어깨를 내어주고 싶다고 말했어요. 


“돌아보면 나를 가장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였던 것 같아요. 나의 좋은 점보다는 못난 점, 부족한 점만 생각했고, 누가 나를 칭찬하는 말을 해도 잘 못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나를 의심하고, 나를 책망하고 비판하고. 이제라도 내가 나를 보듬고 나에게 가장 큰 지원군이 되도록 제 마음을 단단히 키워보고 싶습니다.” -르네홍님 


<밝은 밤>에서 지연은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돼요. 자신이 품고 있는 무한한 우주를 발견한 지연은 희령을 떠나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죠.  


스토리 살롱에서 서로의 고유한 서사와 경험을 나누면서 레퍼런서 멤버들 각자의 우주를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요. 시즌3 스토리 살롱에서 함께 읽고 본 <숲속의 자본주의자><노매드랜드><밝은 밤> 세 편의 작품이 레퍼런서 멤버들에게 멈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단단한 힘을 얻는 시간이 됐기를 바랍니다. 



편집/정리 : 창고살롱지기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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