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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Jan 22. 2021

나는 어떻게 추모될까?

[창고살롱] 세 번째 스토리 살롱 <시선으로부터>


창고살롱에서 책·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스토리 살롱이 벌써 세 번째예요. 이번에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만났어요.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비며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여성 예술인 심시선. 그리고 그 일가의 이야기인데요. 심시선의 가족들이 평소 하지 않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매력적인 캐릭터와 섬세한 묘사가 실제인 것 같은 착각과 바람에 빠지게 만드는 작품이죠.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게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한데요. 여행을 떠나는 인원만 무려 12명.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더 많답니다^^) 살롱에 참여한 레퍼런서 모두 책 첫 장에 있는 심시선 가계도를 들춰보며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인물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와 매력을 가진 터라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요. 창고살롱지기 현진은 김수현 작가 드마라를 보는 것 같았다고도 했어요.


김금희의 <복자에게>나 강화길의 <음복> 등 다른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떠올랐다는 레퍼런서도 있었고 하와이 여행과 기승전기록(!)을 자극하는 책인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네요.




창고살롱에서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수많은 등장인물, 하와이에서 펼쳐진 독특하고 색다른 추모식, 그리고 혈연을 뛰어넘어 연결된 다양한 관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 나눠봤어요.


<시선으로부터> 인물 관계도 ©창고살롱


1.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인물들 - 가장 공감 가는 혹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인물


등장인물이 많았지만 팀별로 주로 꼽은 인물이 다른 게 인상적이었어요. 화요 살롱에서는 화수와 지수 그리고 경아, 목요 살롱에서는 시선과 우윤에 대한 얘길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도 각기 꼽은 이유가 달랐죠. 지희님과 은애님의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었어요.


"사람이 제일 신나는 모험이었다." 130p

새로운 일터를 탐색 중인 지희님은 우윤이 묘사한 지수에 강하게 공감하고 이끌렸어요. 지수처럼 사람을 통해 다른 세계를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요. 지희님은 이미 모험을 시작하신 것 같아요.


"업계의 대충 희망이 되고 싶었다." 264p

육아휴직 중인 은애님은 복직을 앞두고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서 앞서간 선배가 없어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요. 책에서 경아는 큰언니 명혜의 은퇴에 이어 회사 운영을 결심해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면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힘을 얻겠지 싶어서”라면서요. 이런 경아를 보며 '대충 희망'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는 은애님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어요.



2. 기이한 제사상 : 시선의 조각들 - 가장 인상적인 제사 아이템


인상 깊었던 제사상 아이템으로 도넛, 팬케이크, 커피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요. 그중 우윤의 '가장 멋진 파도의 거품'에 대해 많이 얘기했어요. 어렸을 적 많이 아팠던 우윤이 끝까지 도전해 서핑에 성공한 이야기, 그 의지와 과정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죠.


"처음 우윤을 무시하던 서핑 강사 앤디가 노력 끝에 성공한 우윤에게 '나의 가장 멋진 수강생. 포기하지 않았다고. 다음에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네 이야기를 할 거야'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아요. 지난 레퍼런서  살롱에서 인성님이 나눠주신 얘기와도 연결되는데요. 대단한 뭔가를 당장 이루거나 높은 직위 같은 게 있어야만 남들에게 감동을 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맡은 바를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따뜻한 응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윤의 ‘파도 거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 지은님


"저는 우윤이 파도 자체가 아니라 파도의 거품을 제사상에 올린 게 인상적이었어요. 우윤이 부모님을 떠난 게 슬프면서도 되게 인상적이었거든요. 자신을 계속 걱정하고 집착하는 부모에게 오히려 거기서 벗어날 기회를 준 것 같았어요. 인생이 파도처럼 큰 걱정거리인 것 같지만 사실은 거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 수지님


각 인물의 제사상 아이템 ©창고살롱


3. '관계'와 '연결'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혈연을 뛰어넘는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는데요. 심시선 가족의 관계는 그저 가족이라 서라기보다는 더 단단한 연결이 있어 보였어요.


"가족들이 심시선을 계속 기억하고 진심으로 추모할 수 있는 건 가족을 넘어선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심시선이 이들을 단지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가족을 넘어선 관계가 형성된 것 같고요." - 인성 님


'추모'와 '관계'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가족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는데요.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할머니와의 추억을 나눠준 볼리님 덕분에 다른 레퍼런서들도 가족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요. 머리로는 쿨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마음같이 안 되는 어려운 부모-자식, 부부 관계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기도 했답니다.


심시선의 귀국과 작품 활동을 물심양면 도운 여성 동료 민애방에 대한 관심도 높았는데요.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영아님은 최근 ~전에, ~에 앞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전치사 ‘avant'을 배우며 민애방을 생각했다고 했어요. 애방은 프랑스에 살던 한국인으로 나오는데 그의 이름을 ‘avant'에서 따온 것 같다면서요. 모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워했어요. (정세랑 작가님, 맞나요?ㅎㅎ)


화요 스토리 살롱팀 ©창고살롱



'어떻게 추모받고 싶은가요?' 글쓰기 과제


이번 살롱에서는 전과 다르게 글쓰기 과제가 있었는데요. 살롱에 이어 자신의 생각을 한번 더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색다른 추모 방식이 인상적인 소설이니 ‘내가 하고 싶은 혹은 내가 받고 싶은 추모’에 대해 써보기로 했는데요. 부담이 될까 300자 내외로 분량을 제한한 것이 무색하게 다들 성심을 다해 글을 써주셔서 감사했어요.


은진님은 가족들이 자신을 추모하는 장면을 상상해봤고요. 

지솔이 캘린더를 보다가 생각했다. ‘이번 달 말일이 엄마 기일이네. 이번엔 어떤 원두로 커피를 내리지? 작년엔 코케 허니였으니 이번엔 다른 걸로 해야 되는데.’ 은진은 신맛이 나는 커피를 좋아했었다. 아마 지솔은 올해도 신맛이 나는 원두 중 하나로 고를 것이다. 매년 은진의 기일 저녁에는 가족들의 차 마시는 시간이 있다. 지솔은  오미자차, 아내 수영은 커피, 딸 우주는 주스, 그리고 빈자리엔 지솔이 정성스럽게 내린 핸드드립 커피 한 잔. 그리고 지솔은 은진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것이다. 제일 웃겼던 일을 더 웃기게. 우주는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 얘기를 들으며 깔깔거리고, 수영은 은진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이것이 지솔이 은진을 추모하는 방식이고, 은진이 원했던 추모의 방식이다.


보현(볼리) 님은 추모사를 직접 써보기도 했어요.

그녀의 글에서는 애틋한 사람들의 삶을 다정하게 보여줬습니다. 저의 엄마이자 소설가 박보현님이 떠난 지 10년째 되는 해에 평소 그녀의 일상의 말을 담은 책이 나왔다니 마음이 뭉클합니다. 오늘은 그녀의 책에서 요즘 가장 와 닿는 문장을 한 명씩 읽으면서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까지도 놓지 않았던 바닐라 라테를 곁들이면서 그녀답게, 그리고 우리답게 추모를 해보도록 해요. 


대부분 거창한 형식보다는 소박하게라도 진심으로 자신을 추모해주길 바랐는데요. 그 추모 방법마저도 남은 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 추모(追慕)의 사전적 의미를 곱씹어 본 지은님은 "정해진 기일에 정해진 방식으로 기계처럼 추모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따금 날 떠올려주길. 아니, 내가 떠오르기를"이라고 써주셨고요. 수경 님은 "살아있는 이의 일상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추모해주기를 바란다"며 "좋아했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좋아했던 노래를 함께 흥얼거렸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은애님도 "나의 부재가 그저 남은 가족들이 서로 만나는 구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추모를 핑계로 모여 식사를 하든, 여행을 가든 그 방식은 남은 사람들이 편한 대로 정했으면 좋겠다"고 남겨주셨고요. 두란 님은 "나를 좋아해 준 남은 사람들이 내가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도전했으면 좋겠다"면서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효경(젤라)님과 지영(박작가)님은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추모받고 싶은 방법을 남겨주셨는데요. 효경(젤라)님은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자신의 기일에 "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보며 행복해질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마치 엄마가 맛있는 밥을 사주고 엄마와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죠. 엄마의 사랑을 아이가 오롯이 누리는 날이길 바라는 마음에 마음이 뭉클했어요.


지영(박작가)님은 "살아생전 기록한 글을 묶은 책을 자투리 시간에 읽으며 자투리 시간만큼만 자신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했는데요. "어느 날 문득 책이 보이면 살짝 펼쳐 읽다 '아, 생각보다 우리 엄마 되게 찌질했네?'하며 피식 웃어 주는 정도로 추모해 주었으면 좋겠다"고요. 처음엔 쿨하다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내 일기를 보는 상상을 하니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목요 스토리 살롱팀 ©창고살롱


읽는 사람은 죽기 전에 천 번의 삶을 산다


정세랑 작가가 최근 TV에 출연해 언급한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명대사예요. <시선으로부터>에 다양한 인물이 나와서인지 이 대사가 더 마음에 와 닿았어요.


소설을 통해 다양한 삶에 이입하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데요. 창고살롱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어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는 레퍼런서도 몇 분 있었는데요. 이번 스토리 살롱 덕분에 모처럼 소설을 읽고 재미있게 얘기 나눴다고 하시더라고요. (10년 만에 소설을 읽었다는 멤버도!)


다음 스토리 살롱은 살롱지기 혜영이 진저티프로젝트 출판팀에서 기획하고 만든 책 <롤모델보다 레퍼런스>인데요. 창고살롱의 '레퍼런서'를 아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책이라 기다려지네요.



정리 / 편집 : 창고살롱 레퍼런서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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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스토리 살롱 후기 


첫 번째 스토리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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