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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고살롱 Dec 13. 2021

떠나고 싶은 나, 못 떠나는 나, 안 떠나는 나

[스토리 살롱] 길 위에서 찾는 다음 삶의 방향... 영화 <노매드랜드>


창고살롱 시즌3 두 번째 스토리 살롱에서는 영화 <노매드랜드>를 보고 만났어요. 일과 삶에서 '상실'을 경험한 주인공 펀이 길 위에서 다음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영화죠.


시즌3 주제는 '멈추면, 알게 되는 것들'인데요. 첫 번째 스토리 살롱에서 함께 읽은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에 이어 다른 삶의 속도와 방식을 통해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창고살롱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은 세계 경제 위기 여파로 한 기업에 의존하던 도시 전체가 쇠락하며 일자리를 잃어요. 배우자까지 세상을 뜨자 일과 삶이 있던 터전을 떠나 작은 밴에서 낯선 삶을 시작하는데요. 떠밀리듯 시작한 새로운 여정이지만 길 위의 삶을 선택한 노매드(Nomad)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다음 삶의 방향을 찾아가요.


이번 스토리 살롱에서는 다음엔 어디로 갈지, 오늘은 어디서 잠을 청할지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이어가는 펀의 여정을 함께 보고 얘기 나눴는데요. 구조화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살롱지기들이 두 가지 질문을 준비했어요.


1. 편은 왜 계속해서 떠날까요?

2. 떠나고 싶다면, 떠나지 못 한다면, 떠나고 싶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화에서 펀의 동네 이웃, 언니, 연인 등 주변 인물들은 계속해서 펀에게 함께 머물 것을 제안해요. 하지만 펀은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떠남'을 선택하죠. 무엇이 계속 펀을 떠나게 하는지, 왜 펀은 계속해서 떠남을 선택하는지 함께 얘기 나눠 보고 싶었는데요.


"도와주려는 이들을 왜 외면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을 통해 '떠남'을 선택하는 펀의 심경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끼기도 했어요. "난 홈리스가 아니야, 그저 하우스리스이지. 둘은 다르잖아."라는 펀의 대사를 통해 '길 위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도 했고요.


또 우리는 펀의 여정에 나의 삶을 투영해 보기도 했는데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떠나고 싶은가? 혹은 떠나고 싶지 않은가? 나에게 '떠남'은 무엇인지 등 질문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나눠보았죠. 같은 영화를 봤지만 #떠남 #머무름 #선택 #자유 #독립 #애도 등 다양한 키워드로 영화의 문맥을 읽고, 자신에게 투영해 진솔하고 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창고살롱


살롱 후 과제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써보기로 했는데요. 글쓰기 과제를 통해 '떠남'에 대한 멤버들의 바람과 꿈, 그리고 새롭고도 묵직한 관점을 접할 수 있었어요.


레퍼런서 정은님과 효정님은 언젠가는 떠나고 싶은 꿈을 나눠줬는데요.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언어 장벽, 혼자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용기 내지 못했던 정은님. "40대에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기도, 아이와 함께 외국에 나가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고 바람을 남겼어요.


효정님은 대학시절 경제적 여건으로 어학연수를 가지 못했던 아쉬움에 "은퇴 후 꼭 어학연수를 가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먹는 것에 아낌없는 나라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고 해 웃음을 주기도 했는데요. 레퍼런서 멤버들은 댓글로 두 분의 '떠남'을 응원했어요.


레퍼런서 려진님과 주영님은 물리적인 떠남을 넘어 '나로부터의 떠남과 머무름'에 대해 나눴어요.


"'과거의 나를 떠나보낼 수 있어야 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과거에 매몰되어 혹은 살던 대로나 습관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뜻도 있었고요. '지금의 나'도 곧 '과거의 나'가 될 것이니, '완성형의 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좀 자유로워져도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나를 고정불변의 것으로 생각하니, 쉽게 '이게 나다'라고 내보이거나, '나는 이래'라고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 레퍼런서 려진님


"예전엔 나 자신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면 현재는 지금의 나에게 머무르며 친해지고 싶어요. 발전해야 하고 성과를 내고 생산성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퇴사를 하고 조급함을 누르고 나에게 편한 것을 취하며 지내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의 나로 머무르며 나와 많이 친해지고 싶어요." - 레퍼런서 주영님

©창고살롱


"일터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영선님과 "회사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는 종은님. 다른 선택처럼 보였지만 내가 원하는 일과 삶을 찾고 싶다는 바람은 같았어요.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지만 아이들도 중요했던 영선님은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일과 육아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때 괴로워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내 일에도, 아이의 일에도 힘을 빼고 균형을 이루며 살 때 같이 크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일을 너무 완벽하게 하려 않고, 주말에 나만의 시간을 챙기는 영선님. 영선님은 "일과 삶을 지속하는 여러 방법이 있으니 나와 아이 그리고 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나가면 꼭 일터를 떠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종은님은 영화를 보며 종은님의 지난 '떠남'을 돌아봤어요. 이사, 유학, 이직, 여행 등 새로운 곳으로 떠날 때마다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긍정 에너지가 샘솟았는데요. "이런 떠남이 '도피'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언젠가 회사를 떠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만큼은 절대로 도피성으로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버리자'가 아니라 '진짜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살겠어'라며 미련 없이 떠날 날을 기대해 본다"고 말했죠.


펀의 여정을 '애도의 과정',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해석한 멤버들도 있었어요.


레퍼런서 써니님은 "펀의 여정 전반이 애도의 과정인 것 같다"는 레퍼런서 멤버들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어요. 몇 해 전, 가까운 사람들을 사고로 잃었던 써니님은 갑작스러운 상실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요. "천천히 일상을 회복하긴 했지만 오히려 내가 떠나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 같다"며 영화 마지막,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쉬움 없이 떠남을 선택하는 펀의 마음을 궁금해했어요.


레퍼런서 은애님은 "펀의 여정을 '자아를 찾는 여정'이라고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떤 조직이나 무리에서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그곳에서의 마지막을 자주 상상해요.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이 지금 충실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고 또 떠날 때마다 점점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이 분명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계속 변화를 갈망해왔던 건 내게 더 잘 맞는 것을 계속 탐색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영화 표현처럼 삶은 연속적인 여정이기 때문에 내 삶의 극히 일부분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흔들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다른 사람의 여정을 잘 알지 못하고 스냅샷만 보고서 판단하지 않도록 자신도 조심해야겠다"고도 덧붙였어요.


©창고살롱


물리적인 떠남에 부담이 생긴 환경에서 어떻게 떠남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도 있었는데요.


"물리적 장소를 바꾸거나, 전공을 바꾸는 등 더 나아지기 위해 '떠남'을 이어왔는데요. 가정이 생긴 후 전보다 '떠남'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항상 조급한 편이었지만 이번엔 이런 신중한 시간들을 좀 더 즐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떠남 자체에서 답을 찾기보다는, 결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는 게 생각보다 즐거워요." - 레퍼런서 지안님


"떠남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발견'이 아닐까 생각해 봤는데요. 그렇다면 '떠남'은 '발견'의 한 방법이지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요. 결혼과 육아, 경제적 이유와 직장 등 여러 제약으로 몸은 지금 이 자리에 있지만 마음과 정신이 자유롭다면 물리적 떠남이 없더라도 발견은 계속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길 위에 이미 올라있다면 떠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 레퍼런서 혜선님


"며칠 전 아이에게 '엄만 꿈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고 어색하고 낯설었어요. '내가 이 나이에 꿈이란 걸 꿔도 되는지', '어떤 꿈을 꿔야 하는지'... 꼭 꿈이 자아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바라고, 나아갈 방향성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해요. 물리적인 머무름 안에서도 노마드의 삶처럼 자아를 찾아 끊임없이 흘러가는 그런 내가 되길 바라요." - 레퍼런서 천은님


리사님은 "떠남과 정착은 이분법적인 게 아니라 그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는데요. "스펙트럼 안에서 내 삶의 색을 내가 정할 수 있는 자유가 핵심인 것 같다"고요. 실제로 7년간 노마드처럼 살다 아이 학교 때문에 정착한지 5년 된 리사님. "당연스레 정착했지만 모 아니면 도라는 사고에서 나온 결론이었던 것 같다"며 "아이에게 다양한 모양새의 삶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떠날래? 머물래? 아닌 너는 어떤 색깔의 삶을 살래?라는 질문을 아이와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로 했다"고 해요.


창고살롱 시즌3 스토리 살롱은 더 내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레퍼런서 멤버분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 시즌보다 더 작은 규모로 소그룹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요. <노매드랜드> 스토리 살롱은 레퍼런서 성애님, 은애님, 홍하언니님 세 분이 도움지기를 맡아주셨어요. 다시 한번 감사해요.


©창고살롱


영화 <노매드랜드>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제시카 브루더가 3년 간 노마드들과 함께 생활하며 심층 취재한 책 <노마드랜드>를 원작으로 만든 픽션 영화예요. 영화의 주인공 펀은 만들어진 인물이지만 린다, 스왱키, 밥 등은 실제 인물이자 본인이 본인을 연기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 흥미로워요.


원작 책 <노마드랜드>는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됐는데요. 창고살롱에서 영화를 함께 봤다는 소식을 들은 출판사 앨리에서 창고살롱 멤버들에게 책을 보내주셨어요. 창고살롱은 책도 함께 읽고 미처 다 하지 못한 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 책 <노마드랜드 북번개 소모임 살롱을 열기로 했고요. 시즌2에서 책 <노마드랜드>와 영화 <노매드랜드>를 추천해 주셨던 레퍼런서 이민정님이 소모임 살롱을 진행해 주시기로 했는데요. 스토리 살롱에 이어 어떤 이야기를 더 나눌지 기대되네요.


창고살롱 시즌3 마지막 스토리 살롱은 최은영 소설 <밝은 밤>을 함께 읽었어요. 4대에 걸친 여성 서사를 함께 읽고 나를 구성하고 있는 '관계'에 대해 얘기 나눠봤는데요. 다음 <밝은 밤> 스토리 살롱 후기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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