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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원진 Aug 21. 2024

네덜란드 2번째 얼굴 (2)

네덜란드인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동시에 몰래 자랑스러워하는 추악한 얼굴

스테르담 여행 이틀째, 「암스테르담 역사박물관」에서 네덜란드의 두 번째 얼굴과 마주쳤다. 숨겨져 어른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네덜란드가 숨기고 싶어 하는, 동시에 뒤에서 몰래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어두운 역사가 그것이다. 소위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가 식민제국주의 건설과 노예무역에 종사한 시기와 일치한다. 

    

노예무역 또는 강제 납치와 인신매매 사업 

17세기부터 무려 250년간이나 네덜란드는 대서양 노예무역에 관여했다. ‘노예무역’이라고 마치 정상적인 무역인 듯 하지만, 본질은 강제로 사람을 납치해서 돈을 받고 팔아먹는 파렴치한 인신매매였다. 자그마치 100만 명이나 되는 아프리카인을 납치해 노예로 팔았으며,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노예선의 주요 목적지 항구였다. 노예무역은 1770년대 네덜란드 GDP의 10%를 차지했을 정도라고 한다

납치와 인신매매는 파렴치하고도 반인륜적인 범죄로, 오늘날 중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식민제국주의 시절. 네덜란드는 물론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납치과 인신매매에 진심이었다.

17세기 전성기와 현대에 누리는 네덜란드의 부와 번영의 뿌리 하나가 이런 데 있었던 것이다.           



노예선 – 「미국민중사」가 고발한 노예선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Howard Zinn)은 1980년에 「미국민중사」를 출간했다.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민중사」에서 저자는 노예선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가슴에는 빨갛게 달군 인두로 프랑스나 영국, 네덜란드 회사 마크를 찍는다……. 

그러고 나서 노예선에 차곡차곡 실리는데, 어둡고 축축하고 더러운 배 밑바닥에 줄줄이 사슬로 묶인 채 관 하나 만한 공간에서 자신의 배설물이 풍기는 악취에 숨이 막힌다.     

때로는 칸막이 위아래 사이의 간격이 약 45센티미터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 불행한 인간들은 어깨 폭보다도 낮은 공간에서 돌아누울 수도, 아니 옆으로 누울 수도 없었다. 게다가 목과 다리는 대개 바닥에 사슬로 묶여 있었다그런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비참함과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너무도 큰 나머지……”     


여러 해 전에 읽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인용한 그림, 도해도, 기록 등이 너무도 구체적이고 상세했기 때문이다. 처참했던 현장의 실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하워드 진은 이렇게 잔인했던 노예제의 동기가 끝없는 이윤을 향한 광란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엄청난 이윤 때문이었다종종 한 번의 항해로 투자액의 두 배를 벌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50%, 100% 배당을 미끼로 투자를 유혹하는 세력이 종종 출몰한다. 혹시라도 인신매매사업이 아닐지 살펴보아야 한다. 


암스테르담 ‘도시 여행 버스’

오후에는 시티투어버스 여행을 했다. 버스로 시내를 둘러보면서 도시의 곳곳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20유로를 냈다. 버스에 오른 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정된 2시간 30분 중 꽉 막힌 시내 도로에서 1시간을 허비했다. 그러고는 다이아몬드 가공공장으로 끌고 갔다. ‘쇼핑’ 관광을 위해 20유로를 지불한 셈이었다. 과연 네덜란드인들의 상술여행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수법은 감탄할 만했다. 결과적으로 돈 잃고 시간 낭비만 했다. 


사전에 프로그램을 상세하게 살펴보지 않은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차라리 평소 하던 대로 도보여행을 했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자전거 돌려줘!”

암스테르담에는 대략 80만 명 인구에 자전거도 80만 대가 있다. 지금도 2차 대전 때 독일군이 징발해 간 자전거를 돌려달라고 한다. 내 자전거 돌려줘!”

“암스테르담의 수로는 총 70마일 길이이고 수심은 3미터 정도다. 수로의 물은 스위스 알프스산에서 온다. 예전에는 겨울에 물이 얼어 스케이트를 탔던 시절도 있었다지구 온난화로 더 이상 물은 얼지 않고눈도 내리지 않는다.”

이날 시티투어버스 가이드로부터 들은 내용이다.      



네덜란드는 색깔이 뚜렷하다. 여행지로서 호불호가 극단으로 갈리기도 한다.     

버려진 땅, 늪지를 개간하고 바다를 메워 간척지를 만든 위대한 개척정신을 보여주었다. 

박해받는 종교 난민, 정치 난민에게 관용을 베풀어 이주를 허용하기도 했다. 

반면에, 과도한 상술과 인색함으로 여행자를 괴롭힌다. 도대체 먼 나라에서 찾아온 외국 손님을 위한 배려나 호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 반다제도 주민 14,000명을 잔혹하게 학살하기도 했다. 향신료 무역 독점권을 강탈하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짓이었다.

3일 여행에서 네덜란드의 좋은 것나쁜 것추한 것 모두 본 것 같다.


참고 

-「네덜란드 노예무역 – 노예제도와 기억. www.slaveandremembrance.org」

-「미국민중사 – 하워드 진. 유강은 옮김. 도서출판 이후」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 역사 - 위키백과」     


시내에 위치한 풍차
암스테르담 시내 도로
암스테르담 거리
담락광장
수로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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