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인들인 숨기고 싶어 하는, 뒤에서 자랑스러워하는 추악한얼굴
암스테르담 여행 이틀째, 「암스테르담 역사박물관」에서 네덜란드의 두 번째 얼굴과 마주쳤다. 정확하게는 숨겨져 어른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네덜란드가 숨기고 싶어 하는, 동시에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어두운 역사가 그것이다. 소위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가 식민제국주의 건설과 노예무역에 종사한 시기와 일치한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얀 코엔이 도드라져 보인다.
역사박물관에서 언뜻 보기에 생뚱맞아 보이는 전시관과 마주쳤다. 기사의 투구와 갑옷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었다. ‘네덜란드인은 전쟁과 거리가 먼 나라 아니었나? 단 한 차례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들어가 본적인 없는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나?’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막연한 생각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 시간에 물론 영란전쟁에 대해 대충 들어보기는 했다. 문제는 시험이 끝나고 머릿속에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
최근에 새로운 시각으로 여행기를 다시 쓰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사 속에 깊이 숨겨져 있던 네덜란드의 두 번째 얼굴이 그것이다.
네덜란드에는 전쟁이 끊임이 없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호전적인 세력이 득실거리는 유럽 땅에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네덜란드 공화국(1581-1798) 기간에만도 포르투갈과 전쟁(1601-1661), 스페인과 80년 독립전쟁(1566-1648), 오스트리아 전쟁(1740-1748) 등 굵직굵직한 전쟁을 치렀다. 한편, 영국과는 바다에서의 패권을 쟁취하고 식민지 개척을 위해 4차례나 해전을 치르기도 했다. 1652-1654년 1차 영란전쟁을 시작으로 1780-1784 4차 해상전쟁까지 이어갔다.
위키 백과에는 다음과 같이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설명하고 있다. “17세기에 암스테르담(네덜란드)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때 서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발트해, 카리브해, 북미, 아프리카, 그리고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인도, 스리랑카, 브라질까지 배들이 항해했다. 전 세계 무역 네트워크의 기반을 형성했다.” 여기서 ‘전 세계 무역 네트워크’라는 말은 ‘식민 제국주의 건설’로 대체해야 할 듯하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명색은 주식회사라고 하는데 실상이 기괴하다.
동인도 회사는 ‘정부로부터 위임을 받아’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던 거점지들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정부로부터 받았고,「네덜란드 동인도회사」배들은 대포로 무장한 상태로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을 수행’할 권한까지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위임받았다는 것이다.
동인도 회사 책임자 중 한 명은 “우리는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 무역을 진행할 수 없으며, 무역을 진행하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라고 했다. 동인도 회사의 정체를 암시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대 무역이란 차라리 ‘폭력과 무력을 사용한 약탈 또는 노략질’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것 같다.
얀 피터스준 코엔(Jan Pieterszoon Coen)이라는 인물이 두드러져 보인다. 17세기 초 임원이었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총독을 두 번 역임했다. ‘총독’이라니 일반 회사에 무슨 총독이란 직급이 있나 의문이다. 얀 코엔은 동인도회사가 인도네시아 일대에서 식민지 개척에 길을 열어준 것으로, 오랫동안 네덜란드에서 국민영웅(?)으로 추앙받았다고 한다.
얀 코엔과 네덜란드 군인들은 현재의 인도네시아에서 잔혹한 폭력을 사용했다.
그 목적은 향신료인 육두구, 메이스, 정향에 대한 무역 독점권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육두구는 유럽에서 금보다도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이전까지 반다제도 상인들은 영국, 포르투갈과 ‘비교적 공정하게’ 교역을 해왔다. 무역 독점권을 탈취하기 위해 1621년 얀 코엔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반다제도에서 약 14,000명을 학살했다. 15,000명 주민 중에서 겨우 1,00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네덜란드에 있는 동인도 회사 투자자들에게 높은 가격과 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에서는 “네덜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민족”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얀 코엔의 활약 덕분(?)에 네덜란드는 이후 150년 가까이 육두구 무역에 관한 독점권을 유지했다.
다만, 심판은 먼 데 있지 않았다. 그는 네덜란드 군인들에게, “절망하지 말고, 적을 아끼지 말라. 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마타람 술탄국의 공격을 받은 후 살해당했을 때 그 잘난 신은 그와 함께 하지 않았다. 그의 ‘신’은 잠을 자고 있었거나 아니면 외출 중이었던 것 같다. 그를 지배하고 있던 것은 실상 악령이었거나 사탄마귀이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얀 코엔은 42세의 나이에 독살당하고 참수되어 사라졌지만, 네덜란드는 350년간이나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했다.(*1)
네덜란드인들은 과거 식민지에서 자행한 잔혹행위를 직면하기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2019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 시민의 50%가 네덜란드 식민지배 역사를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답했다 한다. 이에 반하여, 불과 6%만이 부끄럽다고 답했다.(*2)
더욱 어이없게도, 50% 이상의 네덜란드인들이 과거 네덜란드의 식민지배가 식민지 국가에 유익하거나 무해했다고 답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지 않은가? 군국주의 망령이 아직도 살아 지배하고 있는 일본과 일본인들과 다른 게 없다.
식민지배가 그렇게 유익했다고 생각한다니, 네덜란드가 앞으로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아보는 건 어떨까? 한 350년 동안. 과거 네덜란드 식민 정부가 했던 것처럼, 주민들에게 수입의 75%를 세금으로 부과한다. 이를 거역하는 사람은 처형하거나 투옥한다.
참고
*1. 「얀 피에터스준 코엔(쿤) - 정윤희 (한 인니문화연구원 부원장). 한인뉴스 2020. 5월호」
*2. 「네덜란드인들은 역사의 피해자가 아니고 역사의 악당들이었다는 것에 불편해한다 – Olivia Tasevski 외교정책(Foreign Policy) 2020. 8.10일」
** 위키백과 - 얀 피터스존 코엔 / 암스테르담 역사 / 네덜란드 독립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