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행사의 꽃
찬바람이 불고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김장철이 돌아왔다. 난 김장하는 날이 힘들지만 좋아하는 편이다. 단순히 1년 치 김치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날에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수육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돈 주고 식당에서 사 먹는 수육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치를 만들며 나온 김치 속에 갓 삶아낸 고기와 함께 먹고, 아직 양념이 스며들기 전의 살짝 절여진 배추에 싸 먹는 맛은 그날이 아니면 맛볼 수 없다. 손은 맵고 허리는 아프지만, 이 한 끼 때문에 겨울이 기다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대가족이 모여 김장을 하는 풍경을 보기 어렵다. 김치는 사 먹는 게 더 맛있고 합리적인 시대다. 클릭 몇 번이면 유명 김치가 집 앞으로 배달되고, 굳이 며칠씩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김장은 ‘필수 노동’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전통’이 되었다.
김치의 기원이 분명하지 않듯, 김장 문화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오래전부터 우리에겐 ‘품앗이’라는 공동체 문화가 있었다.
조선시대 마을 사람들은 농사일이나 큰일이 있을 때 서로의 집을 돌며 일을 도왔다. 김장처럼 많은 손이 필요한 일은 혼자 하기보다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조선 왕실에서도 김장은 큰 행사였다. 왕실에서는 최상급 재료만을 사용했고, 김치를 위한 전용 밭을 따로 두어 채소를 길렀다. 기록에 따르면 왕세자빈까지 김장 준비에 관여할 정도였으니, 김장이 단순한 음식 준비를 넘어 국가적 연례행사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김장은 마을 전체의 연중 최대 행사였다. 집집마다 김장 날짜를 맞추고, 오늘은 우리 집, 내일은 옆집으로 이동하며 며칠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가정에서 소비하는 김치의 양이 줄었고, 김장을 할 필요성도 점점 사라졌다.
서구식 식문화의 유입, 도시화, 아파트 중심의 주거 환경은 이웃 간의 관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김장은 ‘함께하는 문화’에서 ‘각자의 선택’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일부 가정에서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김치는 어디에 묻어두지?”
주택이 대부분이던 시절에는 마당에 장독을 묻는 것이 당연했다. 땅속의 일정한 온도와 습도는 김치를 천천히, 깊게 익게 했다. 하지만 아파트로 이주하면서 그 공간은 사라졌다. 초기에는 베란다나 화단에 김장독을 묻기도 했지만, 위생 문제와 도난 우려로 곧 금지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김치냉장고다. 1990년대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김치냉장고는 당시 주부들에게 ‘꿈의 가전’이었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장독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사계절 내내 김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특정 음식 하나를 위해 만들어진 전용 냉장고는 찾기 힘들다. 김치냉장고는 그 자체로 김치가 우리 식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지금은 김치뿐 아니라 육류, 곡류, 와인 등 다양한 식재료를 보관하는 용도로 활용되며 또 하나의 생활 가전으로 자리 잡았다.
김장을 하는 집은 줄었지만,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는 가정이 있다. 김치의 종류는 비슷해 보여도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젓갈의 비율, 고춧가루의 매운맛, 배추를 절이는 시간까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 미세한 차이가 ‘우리 집 김치 맛’을 만든다.
사 먹는 김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간이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다시 그 자식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 주는 맛의 기억이다. 단순한 음식 준비가 아니라 한 해를 정리하고 겨울을 맞이하는 의식에 가깝다.
그래서 여전히 겨울이 오면 김장이 떠오른다. 힘들지만 싫지 않고, 번거롭지만 포기하기 어렵다. 김장날 김치 냄새가 집 안에 가득 차고, 김치 양념 묻은 손으로 먹는 따뜻한 수육 한 점이 있기에 겨울을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