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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Apr 08. 2024

선 명상하면 생기는 세 가지 장애

업장, 번뇌장 그리고 보장

여러분은 무술 좋아하시나요? 예를 들어 중국 전통 무술인 쿵푸가 있습니다. 또는 태극권, 택견 등 여러 무술이 있습니다. 저는 사실 선 수행을 하면서 무술 수련에 대한 관심도 컸습니다. 무술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서 영화 스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들을 생각해보고 많은 감탄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술 수련의 궁극적인 목표도 단순한 신체단련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영상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쿵푸, 태극권, 우당, 택견도 사실 마음 수련의 일종입니다. 한국에서 살다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선무도에도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매주 지도하고 있는 유럽인을 위한 줌 선명상에도 선무도에 완전히 매료된 유럽인이 있습니다. 그 유럽인 학생 말로는 선무도를 가르쳐주는 스님도 좌선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술은 몸을 이용해서 집중력을 키우고,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무술 수행자와 선 명상 수행자의 지식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쿵후 또는 쿵푸(중국어: 功夫, 병음: gōngfu)는 중국 무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중국에서 ‘功夫’라는 낱말은 무술과 관련 없이 ‘숙달된 기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사실 역사적으로 쿵푸는 불교의 선(禪) 명상에서 유래했습니다. 선의 가르침을 처음으로 중국으로 가져간 달마대사는 좌선을 어려워하는 스님들을 위하여 쿵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쿵푸를 통해서 수행자는 기혈의 순환을 증진시키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렇게 좌선을 더 수월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좌선은 쿵푸의 가장 궁극적이며 고수준의 수행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학생들에게 우선 앉는 방법부터 가르칩니다. 좌선이라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정지시키는 방법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요가 또는 태극권과 같이 움직임[動禪]이 많은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사실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작이 있는 수련을 하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장 좌선법부터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좌선법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고수준의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일단 선을 통달하면, 그때 선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불교에서 이를 일컬어 “선은 서서 할 수 있고(立禪), 걸으면서(行禪), 누워서(臥禪), 앉아서(坐禪)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건 어떤 상황에서든 정념(正念)을 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그것도 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왜 이런걸 다 선 명상이라고 할까요? 간단히 말해서 선정(禪定, Dhyana Samadhi)이란 염불하든지, 주력 수행念呪을 하든, 호흡으로 하든, 뭘 하든 상관없이 잡념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선정은 삼매로도 불리며, 명상하면서 경험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평소 우리의 마음은 잡념(Errand thoughts)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잡념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뭘 하든 잡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입니다. 뭔가를 하려는데 왜 불쑥불쑥 잡념이 생길까요? 불교에서 이런 것을 바로 업장(業障, Karmic obstruction)이라고 부릅니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저항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명상하려고 앉았는데, 누군가 법당에 들어와서 시끄럽게 합니다. 이런 건 외부적 장애이고,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에 업장으로 여깁니다. 둘째는 번뇌장(煩惱障, Affliction obstruction)입니다. 예를 들어 명상하고자 앉았는데, 갑자기 “아, 정말 쑤신다! 아픈 건 정말 지긋지긋해”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누구도 아프거나 쑤시고 불편한 느낌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이런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번뇌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보장(報障, Retribution obstruction)이 있습니다. 이런 세 가지 장애로 잡념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 외부적 장애를 받고 내면적 장애, 즉 번뇌가 일어납니다. 기분이 안 좋은 겁니다. 그리고 보장이란 업보에서 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다른 이들을 방해했기 때문에, 그들이 방해하기 위해서 다시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이렇게 망상은 세 가지 주요 원인으로 일어납니다. 


정념을 하든, 하지 않든 또는 염불을 해도 망상은 일어납니다. 좋은 자세로 앉아서 열심히 명상해도 망상은 계속 일어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좌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을 왜 수행이라고 부를까요? 선 명상의 과정이 바로 이런 잡념과 망상에 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망상을 좇아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선의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양배추를 하나 사려고 슈퍼마켓에 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앞으로 휙 치고 들어와서, 제일 상태가 좋아 보이는 양배추를 집어가 버립니다. 그런데도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게 바로 명상입니다. 번뇌가 내면에서 일어나는데 겉으로 편안한 시늉을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번뇌를 알아차리고 더 많은 망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스리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명상하고자 한다면, 앉을 때마다 망상을 관찰해야 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번뇌가 일도록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20년, 30년 또는 평생 명상해도, 아무리 뛰어난 스승을 모시고 배운다 해도 망상은 계속 일어납니다. 망상은 원래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반응하기 때문에 거기 연루돼버리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생각에 응하고, 더 많은 생각이 일어나게 합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꽉 쥐고, 진짜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참선이든 명상이든 수행의 첫 단계는 마음을 정지시키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생각을 좇는 것부터 멈춰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중대한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지 그런 것도 상관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심지어 제일 중대한 일이라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그런 이유로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걷는 것을 모두 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건 마음을 관찰한다는 뜻입니다. 계속 보고 또 보면서 망상에 더는 반응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봐야 합니다. 여러분도 이 글을 읽으면서,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동의하고, 이해한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실전에서 배운 대로 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절에 다닌 지 벌써 2주나 됐는데, 열심히 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잡념이 많구나. 난 진짜 불가능해.’ 이런 생각이 이루고 싶은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에 더 많은 망상으로 응하게 됩니다. 알면서도 혼자 힘으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걸 보장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망상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서 계속 더 많은 생각을 일으킵니다. 구름처럼 불어나는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돼 버립니다.


부처님도 업보가 오면 자기 혼자 어찌할 수 없습니다. 업보가 오면 참고 견뎌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이런 문제를 다루기 위한 여러 도구가 있습니다. 그냥 인식하기만 해서는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선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명상해서 끝까지 다 도달하면,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이런 모든 마음의 반응에도 끝을 낼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망상에 반응하는 문제를 지능에 의지해서 다루려고 하면, 절대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목표가 명확해야 합니다. 참선과 수행의 목표는 타고난 부처님의 지혜, 즉 근본지(根本智, Inherent wisdom)를 여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됩니다. 부처님은 업보가 찾아왔을 때 망상이 일어나지도 않고 그냥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걸로 마음이 괴롭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우리의 목표도 이와 같습니다. 사실 우리도 앉아서 바르게 명상하면 어느 순간 일시적으로 세 가지 장애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영구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순간엔 마음이 멈추고, 고요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지혜도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명상은 우릴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보통 힘든 상황에 부딪히면 날 힘들게 하는 이를 혐오합니다. 우리는 싫은 것을 혐오하기 때문에 번뇌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 속에서 늘 명상하며 명료한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나면, 몸도 마음도 모두 경직되고 거기서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긴장을 풀어보십시오. 누군가 우리를 모욕하면, 그 모욕적인 소리는 이미 사라졌는데, 우리 마음은 그걸 꼭 쥐고 놓을 수 없습니다. 그걸 놓으셔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이나 걱정을 그냥 알아차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더 많은 생각이 일어나도록 방치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이 스스로 사그라질 때까지 그냥 두십시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습니다. 마음의 괴로움을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면 도와줄 수 있는 지혜로운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참고법문: 영화 선사의 법문(2017년 7월 15일) https://youtu.be/E1tblay3M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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