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 번뇌장 그리고 보장
매주 지도하고 있는 유럽인을 위한 줌 선명상에도 선무도에 완전히 매료된 유럽인이 있습니다. 그 유럽인 학생 말로는 선무도를 가르쳐주는 스님도 좌선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술은 몸을 이용해서 집중력을 키우고,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무술 수행자와 선 명상 수행자의 지식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쿵푸는 불교의 선(禪) 명상에서 유래했습니다. 선의 가르침을 처음으로 중국으로 가져간 달마대사는 좌선을 어려워하는 스님들을 위하여 쿵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쿵푸를 통해서 수행자는 기혈의 순환을 증진시키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렇게 좌선을 더 수월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좌선은 쿵푸의 가장 궁극적이며 고수준의 수행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학생들에게 우선 앉는 방법부터 가르칩니다. 좌선이라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정지시키는 방법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요가 또는 태극권과 같이 움직임[動禪]이 많은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사실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작이 있는 수련을 하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장 좌선법부터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좌선법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고수준의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일단 선을 통달하면, 그때 선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불교에서 이를 일컬어 “선은 서서 할 수 있고(立禪), 걸으면서(行禪), 누워서(臥禪), 앉아서(坐禪)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건 어떤 상황에서든 정념(正念)을 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그것도 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왜 이런걸 다 선 명상이라고 할까요? 간단히 말해서 선정(禪定, Dhyana Samadhi)이란 염불하든지, 주력 수행念呪을 하든, 호흡으로 하든, 뭘 하든 상관없이 잡념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선정은 삼매로도 불리며, 명상하면서 경험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평소 우리의 마음은 잡념(Errand thoughts)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잡념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뭘 하든 잡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입니다. 뭔가를 하려는데 왜 불쑥불쑥 잡념이 생길까요? 불교에서 이런 것을 바로 업장(業障, Karmic obstruction)이라고 부릅니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저항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명상하려고 앉았는데, 누군가 법당에 들어와서 시끄럽게 합니다. 이런 건 외부적 장애이고,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에 업장으로 여깁니다. 둘째는 번뇌장(煩惱障, Affliction obstruction)입니다. 예를 들어 명상하고자 앉았는데, 갑자기 “아, 정말 쑤신다! 아픈 건 정말 지긋지긋해”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누구도 아프거나 쑤시고 불편한 느낌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이런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번뇌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보장(報障, Retribution obstruction)이 있습니다. 이런 세 가지 장애로 잡념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 외부적 장애를 받고 내면적 장애, 즉 번뇌가 일어납니다. 기분이 안 좋은 겁니다. 그리고 보장이란 업보에서 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다른 이들을 방해했기 때문에, 그들이 방해하기 위해서 다시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이렇게 망상은 세 가지 주요 원인으로 일어납니다.
정념을 하든, 하지 않든 또는 염불을 해도 망상은 일어납니다. 좋은 자세로 앉아서 열심히 명상해도 망상은 계속 일어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좌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을 왜 수행이라고 부를까요? 선 명상의 과정이 바로 이런 잡념과 망상에 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망상을 좇아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선의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양배추를 하나 사려고 슈퍼마켓에 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앞으로 휙 치고 들어와서, 제일 상태가 좋아 보이는 양배추를 집어가 버립니다. 그런데도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게 바로 명상입니다. 번뇌가 내면에서 일어나는데 겉으로 편안한 시늉을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번뇌를 알아차리고 더 많은 망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스리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명상하고자 한다면, 앉을 때마다 망상을 관찰해야 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번뇌가 일도록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20년, 30년 또는 평생 명상해도, 아무리 뛰어난 스승을 모시고 배운다 해도 망상은 계속 일어납니다. 망상은 원래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반응하기 때문에 거기 연루돼버리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생각에 응하고, 더 많은 생각이 일어나게 합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꽉 쥐고, 진짜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약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