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다. 러시아워를 피해 좀 늦게 차를 탔지만 여전히 승객들이 많았다. 객차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바로 옆의 두 젊은 여성은 친밀한 대화 투로 미루어보아 서로 친구인 것 같았다.
- 수술받았던 환자가 이상이 생겨 다시 찾아왔는데 열어보니 거즈가 속에 뒤엉켜 있는 거야.
- 헉, 그래서?
- 그냥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다시 조치를 취했다고 했지.
자기들끼리의 소곤거리는 얘기라고는 하지만 바로 옆의 주변 사람들에게는모두들릴만한 톤의 대화였다.
종종 의료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하긴 했으나 의료 종사인으로 보이는 이의 육성을 직접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의 대화투는 그러한 사고가 자주는 아니지만 으레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듯했다.
예전에 수술용 가위가 엑스레이선 사진에 찍힌 환자 기사를 접하곤 놀람과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처럼 가까이서 직접 듣는 것은 너무나 느낌이 달랐다.
거대 시스템의 비밀스러운 행태가 종사자들의 암묵 속에 유지되는 모습이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이들의 대화를 분명 들었을 텐데 나만 혼자 놀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 양 옆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아무도 들었다는 기색없이 핸드폰을 보며 자신들만의 세계에 몰두했다.
그 순간 이 모든 침묵에 우리 모두가 직간접적인 동조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로서의 첫 진료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응급실 생활은 군대의 야전 전투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충분한 휴식도 편히 식사할 시간도 부족하다.
인턴과 레지던트의 수면 질도 현저히 떨어지는데 이는 진료의 집중력을 저해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일이 되고만다.
관례적으로 유지되어온 응급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속히 개선되어야 한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들의 빈번한 크고 작은 실수들의 결과는 대개 환자들 몫이다.
의료 사고의 경우, 그 책임을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는데 애초부터 진료 기록에 대한 접근 자체가 난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진료 기록이 조작된 경우도 보도된다.
실전을 쌓으면서 부득불 생기는 의료 사고들은 응급실의 딜레마이다.
은폐된 의료진의 사건 사고들을 고발한 어느 tv 방송 프로그램.
인력과 비용을 더 투자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마무리 멘트에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 베드를 배정받기 전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검사받던 때 일이다. 흉부 엑스레이선 검사실 앞이었다. 비몽사몽의 의식 상태로 링거 주사대를 잡고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검사실 문이 열리는 기척에 간신히 눈을 떴다. 휠체어에는 초로의 남자가 각기 다른 색의 링거액 플라스틱 봉지를 세 개나 매달고 있었다. 간호사가 환자 의자를 밀고 나왔지만 보호자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옆자리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3,40대의 한 남자가 졸고 있었다. 흐려진 의식 속에서도 많이 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브이 화면에 자주 얼굴을 비추던개그맨이었다. 기운이 없어 남에게 말을 걸 처지가 아니었으나 아버지쯤 되는 환자가 정신이 반쯤 나간채 홀로 남겨졌기에 신호를 보냈다.
옆자리를 툭툭 쳤다.
- 저기요... 환자분이 나오신 것 같아요...
그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곤 휠체어를 밀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가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그가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는 것과 보통의 남자들 얼굴과는 달리 피부톤이 몹시 칙칙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아마도 불규칙적인 방송일로 기인한 신체상의 특징적인 변화일 것이다. 메이크업을 벗은 얼굴색은 스크린에서의 색조와는 너무나 대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