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영업 살이

청이 부녀와의 조우

by 김도형



저녁 늦은 시간

지하철 객차의 자리가 한산해질 무렵

달리는 열차의 연결 통로 문이 열리자

허름한 옷차림의 한 여성이

아버지뻘로 보이는 눈먼 노인의 팔을 잡고

애를 쓰며 간신히 들어왔다



여인은 한 발을 끌듯이 걸었고

노인은 두 눈을 치껴뜨려 애쓰는 듯했다

그의 상체는 구부정하여 곧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남자는 한 손에 얇은 지팡이를 들었고

다른 손엔 지폐 몇 장이 든 파란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람 인자 형상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나무의 자벌레처럼 객차 복도를 천천히 지나갔다



그 여인과 남자는 승객 어느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동작은

도와달라는 말보다

더 큰 중압감을 만들어냈다



눈앞을

슬로 모션으로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부녀

바닥을 탁탁 치는 사내의 지팡이 소리가

객실 전체로 퍼져나갔고

그가 든 바구니의 한 뼘짜리 종이돈이

날카롭게 주변 사람들을 응시했다



시간이 주는 형벌



마주 보고 앉았던 승객은 조용히 눈을 감았지만

외면하지도 못한 두 눈은 최면에 걸린 듯

그들이 다른 칸으로 사라질 때까지 뒤를 쫓았다



적선을 했더라면 마음이 좀 가벼웠을까?

그것보다는 바구니에 손을 넣는 행위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하루 마지막 구걸행의 주인공들이

심판자처럼 떠나가자

비어 가는 객실엔

검은 밤의 적막감만 흘러들었다



객차에서 내려 잠시 서 있다가

문득 플랫폼 한쪽 끝을 바라보니

열차 복도를 지나갔던 청이 부녀와

또 다른 일행이 두 눈을 뜨고 모여 앉아

하루의 벌이를 한자리에 털어놓고

세어보고 있었다



멍한 느낌도 잠시

그제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제는

어쩌지 못하는 무거운 기분이 아닌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의 하루 영업살이를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차산 둘레길에 핀 철쭉. 선명한 빛깔에 감탄이. 중앙하단 맨 밑의 꽃엔 벌손님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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