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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도형
May 08. 2021
아차산 유정
송화가루 날리는 사월
초로의 소경은 용한 점쟁이로 이름났다
그는 찾아오는 모든 이의 신수와 길흉화복을 알아맞혔다
아이의 수명과 출세를 예언했고
노처녀의 혼인 짝을 짚어냈다
중병 든 이의 원인을 가늠했고
행불자의 생사 여부를 일러주었다
방 노인은
어려서 홍역을 심하게 앓았다
강가
마을에서
같은
돌림병을 앓았던
아이들이
여럿 죽어나갔다
뒷산 진달래 언덕에 돌무덤 몇 개가 그렇게 생겨났다
한
사내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났으나
환하던 세상을 영영 잃고 말았다
다행히도 한쪽 귀는 먹지 않았다
그는
새까만 세상을 오직 한 귀에 의지하여
두 손 두 발로 더듬어내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작은 벌레소리, 이웃집 젊은 부부의 속삭임,
동구 밖 나그네의 지팡이 끄는 소리, 앞산 위로 지나가는 바람소리까지 들려왔다
또 시간이 흐르자
귀와 코와 촉으로
사람들의
성정과
과거와 앞날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더듬이라 놀리던 동네 사람들은
귀신 들린 아이라고 피했다
어렸지만 들리는 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어미의 신신당부를 믿고 따랐다
그는
홀어머니를 여의고 나서야
마을 사람들의 신수를 봐주고
보리 한 줌, 수수 한 되를 얻어냈다
그저 몇 마디 밖에는 하지 않았지만
소문은 인근 지방으로 널리 퍼져갔다
강 건너 말투가 다른 지방의 남정네와 아낙들도 찾아와서 운명을 점쳤다
간
혹 벼슬길과 나라의 흥망을 묻는 이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는 이상하게도 살기가 느껴졌다
어느 날
방
노인은
밤하늘의 별 기운을
고르다가
지상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날 궁에서
어떤
사람이 찾아와 옷을 갈아입혔고
노인은
난생
처음으로
가마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영문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출세했다고
요란스레 떠들었지만
노인은 이제 뒷동산에 묻힌 아비, 어미 곁으로
가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궁전의 큰 마룻바닥에 부복하니
위엄 있는 이의 나지막한 음성을 따라
다른 이가 큰소리로 복창했다
네가 용하게 사람과 나라의 길흉을
그리도 잘 맞춘다 하니
내 그대의 능력을 시험해보겠노라
네 앞의 궤짝에는 무엇이 들었느냐?
방
노인의 귀에는 작은 동물의 가녀린 숨소리가 들렸다
... 서생원이옵니다
주변으로 조용한 술렁임이 일어났다
으흠, 그러면 몇 마리가 들었느냐?
이번에는 묻는 목소리가 더 크고 엄숙해졌다
... 모두 네 마리 옵니다
여봐라, 뚜껑을 열고 확인하도록 하여라
결국
궤짝에는 큰 쥐 한 마리만 들어있음이 확인되었고
노인은 흉흉하게 민심을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참수형을 선고받아
인근의 산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한 관원이 혹시나 해서 배부른 쥐를
칼로 열어보니
태어나지 못한 새끼가 셋이나 들어있었다
급히 상관에 알리고 윗전에 보고하니
과연 명불허전이라며 참수형을 중지시켰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어
점쟁이는
더 이상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에 긴 얘기를 않던
방
노인은 망나니에게
잠시 기다려보시게란 말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천지신명께 다음 생에는
대명천지를 허락해주시길 빌 뿐이었다
아차, 실수로 아까운 이를 놓쳤구나~
위엄 있는 이의 장탄식이 그대로 산 이름으로 굳어졌다
노인을 아는 모든 이들도 긴
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아차산 큰 바위 틈새로 기어이 소나무가 자라났다
청록파 시인의 윤사월 송화가루가 또 바람에 날린다
슬쩍 가지를 흔들어보니 노란 안개가 한가득 피어난다
안개는 송화 대궁을 떠나 공중에서 맴을 돌더니 바람을 타고 골짜기 너머로 흘러간다
문설주에 귀를 대고 세상을 엿듣던 눈먼 처녀
나무 기둥으로 증폭되어 들려오는
아비의 밭 가는 소리
어미의 물질 소리
앞산 등성이의 노루 우는 소리
대처로 떠난 오라버니의
풀피리
소리
원목 데크로 만든 둘레길을 버리고
돌과
나무뿌리가
드러난 흙길로 접어든다
시간도 가늠할 수 없고 종착지도 알 수 없는 길
그러나 마냥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은
진달래 꽃 진 곳에
다시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마음마저
향기따라
정처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이가 성을 가진 친구 덕에 아차산의 여러 모습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차산에서 바리본 한강변. 과거 삼국이 서로 차지하고자했던 전략적 요충지. 과연 그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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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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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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