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형적인 흙수저에 가진 바 재능도 많지 않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는 지하 쪽방에서 4 식구가 함께 잠을 잤고 새벽에 오줌을 맞은 적도 있었다. 나에게 '부'는 먼 단어였다. 사는 게 팍팍해서였을까? 돈을 많이 번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했고 넉넉하게 사는 게 어떤 건지 느끼지 못했다. 어릴 적 내가 바란 것은 놀림받지 않는 직업을 가진 부모님과 겨울에 따뜻한 집에 사는 것뿐이었다.
부모님의 생활수준에 맞춰 내 삶이 재단되었다. 제대로 문화생활이나 여가를 즐겨본 적도 없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아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고 그저 지방대학교에 입학한 것에 감지덕지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위는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군대 제대하고 얼마 후 내 삶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비록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살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 고민의 시간을 보내던 중 내가 바라던 삶을 하나씩 적어봤다. 지방대 2학년 복학을 앞둔 시점에 내가 바랐던 삶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꿈같은 일들이었다. 그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지만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런 막연한 꿈에 의지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1. 대기업 입사
2. 50살 되기 전에 아파트 사기
3. 소나타를 사서 타고 다니기
대기업에 입사하는 허무맹랑한 꿈을 꿨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적어도 중소기업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방 국립대를 다니는 내 입장에서 대기업은 꿈같은 일이었지만 그 꿈을 위해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아파트에 살아보는 것도 꿈이었다. 겨울에 두꺼운 양말을 신지 않고도 맨발로 집안을 걸어 다닐 수 있는 따뜻한 집에 살고 싶었다. 부모님은 평생 차 없이 사셨다. 나에게 차가 없는 삶은 디폴트였다. 나이가 들어 돈을 많이 모으면 막연히 차를 사서 타고 다니는 꿈도 꾸었다.
복학 후 대기업 입사만을 생각하며 학점과 토익 점수를 위해 공부했다. 안 돌아가는 머리로 억지로 앉아있었고, 노는 시간 없이 매일 도서관에서 살았다. 매일 공부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에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했고 방학 때는 토익 학원을 가는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를 했다. 4학년이 되었을 때는 취업 스터디를 위한 모임에 가입해서 6개월 이상 면접 준비를 하며 대기업 입사를 준비했다.
대기업에 합격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준비한 시간의 보답이었는지 다행히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꿈같은 얘기였지만 회사에 합격 후는 대기업 직원으로 살았다. 그렇게 노력했던 날들이 아늑한 과거의 일이 될 때쯤 그 옛날 마음속에 품었던 또 다른 꿈이 생각났다.
집을 사고 싶었다. 집을 산다는 것은 나에게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보다 더 멋진 이야기다. 나만의 보금자리를 갖고 싶었다. 그때부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알아보던 중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고 대출을 내어 집을 계약했다. 30살 때 이야기다.
꿈은 계속 발전한다.
부산의 23평짜리 아파트를 산 후 내 꿈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더 좋은 집에 이사 가고 싶었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해운대를 지나면서 막연히 해운대 고급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대기업 입사와 아파트 매수는 방법이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 요건을 갖추고 면접 준비를 하면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다. 소형 아파트도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 대출 포함해서 집을 사는 것이 힘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해운대 고급 아파트는 내 형편에 살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거의 8억에 해당하는 고급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방법을 찾으니 길이 보였다. 미분양된 회사 매물의 집을 전세 형태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 매물이 나오는 시점에 계약을 했다. 그 결과 꿈꿨던 해운대 고급 아파트에 살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해운대 고급 아파트에서 바라본 풍경
꿈꾸는 이에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회가 온다는 것을 느꼈다. 행운인지 운명인지 모를 그런 느낌을 알고 난 후 원룸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주에 대해 알아봤다. 주변에 건물을 가진 사람을 만나 실제 여러 가지를 물어봤고 관련 책도 여러 권 읽었다. 그렇게 건물을 사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던 중 건물을 중개하는 부동산 직원을 알아내어 그분과 여러 건물을 보러 다녔다. 내 형편에 맞는 건물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고 몇 달 후 나는 건물주가 되었다.
내 소유의 건물
세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내가 군대 제대 후 대기업의 꿈을 꿨을 때는 내 꿈을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의 내 모습과 대기업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매일 공부하며 등록금 이상의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그 시간 동안 오직 대기업에 입사하는 꿈만 꾸며 노력했다.
첫 번째 집을 사기 전까지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구두쇠라고 놀릴 정도로 절약했고 허투루 돈을 쓰지 않았다. 정해진 적금의 돈을 맞추기 위해 부모님과 동생에게 가끔 돈을 빌린 뒤 다음 달에 갚고는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첫 번째 집을 샀다.
해운대 고급 아파트에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부동산에 수십 번 방문했고, 관련 정보를 계속 수집했다. 그렇게 알아본 정보를 바탕으로 잠시나마 해운대 고급 아파트에도 살아볼 수 있었다.
건물주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건물주란 막연히 자본주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에 포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건물도 있다는 것을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그 후 부동산 직원의 도움으로 나에게 맞는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학교와 달리 세상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내가 간절히 원하면 어느새 그것을 향한 방법이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내 꿈과 목표를 위해 더듬이를 세워서 내가 그 방법을 찾아낸 것인지? 아니면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운명처럼 나에게 다가온 건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행운들이 자꾸만 생긴다.
인생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듣고 웃었다. 너무 터무니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지하 단칸방에 살았던 지질한 내가 이만큼이라도 사는 것은 어쩌면 꿈꾸고 바랬던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루기 전에 간절히 바라고 꿈꿨던 내 꿈이 지금은 평범한 일상이 된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다.
군대 제대 후 내가 꿨던 꿈들은 이미 이뤄졌다. 최근 몇 년 간은 꿈을 이룬 것에 만족하며 조금은 나태하게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새로운 꿈을 꾸려한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간절히 바라며 하루를 산다면 그 꿈은 결국 이뤄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