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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Jun 03. 2019

월요일 새벽 4시 반

운동 고자 엄마의 마라톤 완주 기념 셀프 칭찬

모기 때문에 일찍 눈이 떠졌다.

시간을 확인한다는 것이 그만, 잠이 깨버렸다.

다시 자려고 하니, 새삼 이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게 오랜만에 브런치에 끄적여본다.



2019 MIZNO RELAY SEOUL 완주메달

어제는 2016년부터 연중행사로 매년 도전하는 마라톤을 완주한 날이다. 비록 12K 밖에 안 되지만 특별히 배운 적도 꾸준히 뛴 적도 없는 일반인이 매년 10K를 달리고 있는 것에 본인 스스로는 꽤 만족하고 있다. 

경기 한 달 전부터 두근두근대며 나름의 준비를 하지만 늘 흐지부지하다가 경기 당일이 되더라. 근데 웃긴 건 또 잘 달려진다는 거다. 매년 2회의 마라톤에 참여하는데,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새해 마라톤이기에 큰 준비도 두려움도 없다. 하지만 작년에 처음 도전한 10K 그리고 올해 12K 완주는 스스로에게 참 좋은 자극이 되어 주고 있다. 


어제 다녀온 '2019 MIZNO RELAY SEOUL'은 코스도 좋았고 여러모로 신선한 자극이 되었으며 즐겁게 잘 마쳤다. 어제 푹 쉬었는데도 오늘 아침 이렇게 여기저기 결리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상쾌하다. 성취감은 덤이다.


어제 오후 아이의 한 마디에, 갑자기 처음 마라톤을 했던 기억이 났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만 운동을 해오던 내가 우연한 기회에 마라톤을 접하고 나서, 새삼 바뀐 것들을 정리해본다.


평소 나는 걷는 것은 좋아하지만 달리는 것은 싫어했다. 등산도 하지만 즐기지는 못했고, 좋아하고 즐기는 스포츠가 없어 여행을 가서도 느끼는 게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는 수영도 클라이밍도 발레도 인라인도 태권도도 주짓수도 피겨스케이트도 관심을 보이는 스포츠는 뭐든 배우게 했다. 다행히 운동을 즐기는 아빠의 유전자 덕분인지 엄마인 나와는 살짝 달라 안심을 했었다. 


아마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는 스포츠를 하러 가면 벤치에서 앉아 기다리는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마라톤을 시작하고 나서는 조금 달라진 게 있다. 바로 꾸준히 달리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나는 여전히 아침시간밖에 낼 수 없어서 출근 전에 약간의 시간이라도 달리고 출근한다. 그게 비록 3K일 때도 있고 20분일 때도 있지만, 엄마는 매일 아침 운동을 한다. 특히 여행을 가서는 그게 어디든 혼자서 아침 운동 혹은 산책이나 조깅을 한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운동을 조금씩이라도 매일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지금은 매년 마라톤을 두 번씩 달리는 것을 보고 있다.


어제 아이가 나에게 했던 말은 이거다.

"엄마, 내가 조금 더 커서 마라톤 10K 달리면 이거(암밴드) 나 빌려주세요.  이렇게 하고 나도 달리고 싶어."

순간, 오늘 만났던 무수히 많은 20대 젊은 친구들이 생각났고 마라톤과 자연, 그리고 건강한 만남을 즐기던 그 미소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내가 바라던 것, 나는 몰라서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나와는 다르게 몸을 쓰며 땀을 흘리는 것을 어려서부터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분 좋은 생각이 들었다. 


2
우리 가족은 새해 첫날 아침 7시 반에 마라톤을 하러 출발한다. 잠도 덜 깬 상태로 눈곱만 떼고 옷을 껴입고 아빠에게 안겨 차에 오른다. 겨울이라 준비할 것도 많다. 한강 근처의 출발장소에 가면 추위도 걱정도 사라진다. 그저 새해의 첫 일과를 수행하러 온 기분이다. 2016년 처음 새해 마라톤을 해본 후, 그 상쾌한 기분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고작 4살이 되었던 작은 아이의 한 겨울 5K 완주는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 후로 매년 우리 집 새해 행사는 이 마라톤 참석이다. 다양한 코스가 있어서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진 않아 좀 아쉽긴 하다. 올해 4번째 새해 마라톤 메달을 받아 집에 걸어두니, 내년엔 일출을 보며 달릴 수 있는 다른 곳을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올해 마라톤을 마치고 난 후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눈뜨긴 어려운데 나오니까 좋아요."

우리 집 전통을 만들겠다며, 징징거리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나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시작도 안 해보고 생각만으로 포기한 일이 얼마나 많던가.

매년 풀코스 마라톤이나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는 분들이 보면 코웃음이 나올 글이긴 하다. 그래도 그토록 운동을  싫어했던 마흔을 넘긴 한 엄마가 아이와 함께 매년 마라톤을 해나가며 조금씩 도전해나가는 과정의 기록이니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여전히 미약하지만 나는 매년 도전을 하고 있고,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 


이 짧은 글은 얼마 전 다녀온 여행에서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한 말로 마무리한다.

"엄마랑 여행을 다니려면 체력을 키워야 돼. 많이 걷는데 따라갈 수 있어야 여행에 데리고 가신댔어. 저녁에 줄넘기 꼭 해야지."


이만, 운동 고자 엄마의 마라톤 완주 기념 셀프 칭찬 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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